고객을 변호인으로 만들어라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샤넬, 루이비통, 티파니, 구찌, 에르메스 그리고 불가리까지 명품 브랜드들의 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다. 2014년 DDP에서 열린 샤넬의 '장소의 정신' 전시회에 지드래곤이 참석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부터 최근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한 불가리의 '불가리 컬러' 전시회까지, 명품 브랜드들의 전시회 사랑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명품 브랜드들의 전시회를 보면 몇 가지 공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브랜드를 창조한 인물을 스토리텔링의 첫머리에 둔다. 전시회 입구는 인트로 공간으로서 브랜드를 만든 창업자나 디자이너의 스토리를 전개하여 브랜드의 역사적 태동을 강조한다.
둘째, 모든 전시 공간은 제품별로 방을 만들어 간선형 동선으로 연결한다. 간선형 동선이란 기획자의 의도대로 관람객의 동선을 일방으로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동선은 마치 영화처럼 '기-승-전-결'의 형태로 브랜드의 스토리를 나열함으로써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
셋째, 전시회에서 보이는 제품들은 더 이상 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전시회에서 루이비통은 가방을, 구찌는 옷을, 불가리는 보석을 보여주지만 매장에 늘어놓듯 전시하지 않는다. 가방과 옷과 보석이 강렬하게 떨어지는 조명과 주변의 오브제와 결합하여 하나의 창조적인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넷째, 모든 브랜드는 자신들의 제품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시회가 열리는 지역의 로컬 예술가들과 협업하여 브랜드 기반의 또 다른 예술품을 창조한다. 루이비통은 고유의 가죽 가방 제조 기술을 가지고 한국의 가야금과 거문고 케이스를 특수 제작하여 전시했고, 불가리는 불가리 특유의 컬러와 LG OLED 기술을 결합한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 구찌는 일본 교토에서 일본 전통 가옥과 의상을 매치한 전시회를 만들었다.
다섯째, 명품 브랜드들은 전시회에서 절대로 제품을 팔지 않는다. 이미 그 제품들은 전시를 통해 예술 작품의 경지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은 전시회의 마지막 공간에서 기념품을 팔지 않고 프랑스에서 온 루이비통의 장인이 직접 가방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이비통의 전시는 그렇게 장인의 에필로그로 마무리되었다.
여섯째, 전시회는 모두 온라인과 연결되어 새로운 브랜드의 세계로 이동한다. 그것이 AR이건 VR이건, 또는 인스타그램이건 게임이건 다차원의 가상 세계_메타버스와 연결되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넘나 든다.
명품 브랜드는 왜 이렇게 신경을 써가며 전시회를 만들까? 전시회 하나를 기획하고 개최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제품의 선별, 그리고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기 위한 지난한 작업과 비용이 소요된다. 명품 브랜드들이 이렇게 경쟁하듯 전시회를 만드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만약 그 이유를 리테일의 최근 트렌드인 판매에서 체험 공간으로의 변화로만 설명하기엔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체험만을 강조한다면 차라리 브랜드의 리테일 매장을 체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오히려 전시회는 체험을 뛰어넘어 구매 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바꾸고, 모든 방문객을 브랜드의 변호인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마케팅 수단이다.
필립 코틀러는 그의 역작 '마켓 4.0'에서 기업이 제품을 마케팅하는 최종 단계가 바로 구매 고객을 변호인(Advocate)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변호인이란 누구인가? 의뢰인의 입장을 대변하고 이익을 보호하는 사람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브랜드의 변호인이란 브랜드를 대변하고 보호하는 사람들로서, 소위 충성 고객을 말하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전시회를 만드는 이유는 바로 이 것, 즉 브랜드의 완전한 전이 공간으로 이동하여 그 헤리티지를 체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홍보대사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기-승-전-결'의 간선형 동선을 빠져나오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전시회의 기능이자 역할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루이비통의 '루'자도 몰랐지만 약 40분간의 전시를 보고 나오자 그때부터 루이비통이 왜 명품인지를 브랜드의 역사를 읊어가며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오프라인만의 체험과 몰입의 공간은 그 반대 지점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유현준 교수는 '공간의 미래'에서 온라인은 저렴한 대중의 공간으로, 오프라인은 비싼 부자들의 공간으로 극단화될 수 있음을 예견했다. 어쩌면 럭셔리 브랜드가 전시회를 만드는 이유도 대중적인 온라인 공간을 벗어나 그들만의 경지를 보여줌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명품 브랜드 입장에선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건 또는 아예 브랜드를 모르는 고객이건 전시회를 통해 그들을 브랜드의 대변인으로 변화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고객이 변호인이 되는 순간, 브랜드는 더 이상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마케팅을 위해 전시회는 가장 최종 단계의 마케팅 수단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명품 브랜드가 전시회를 만드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