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더뉴그레이의 시작을 말할 때 옷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누나가 가끔 제 방에 슥 들어와서 한숨을 푹 쉴 때가 많았어요. 넌 못 생기고 키도 작으니까 공부 열심히하고, 옷이라도 잘 입고다니라구요. 그 때 누나가 옷을 많이 사줬어요. 옷이 좋아졌습니다. 왜냐구요? 저의 부족한 키와 외모가 옷으로 보완됐거든요. 안쓰러워 하지마세요. 메타인지가 뛰어난 것 뿐입니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늘 패션에 신경을 쓰며 살았고, 패션의 효능감을 만끽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대학생활 중에도 확실히 눈에 띄는(멋있는은 아니구요) 학생이었습니다. 공대생인데 패션학과 친구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으니깐요.
대학시절 진로에 고민이 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원자력공학으로 입학했고, 벤처 동아리에도 들어가봤고, 정보시스템(컴퓨터)으로 전과도 해봤구요. 자신이 없더라구요. 제가 너무 모자란 것 같았어요.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 있는 제가 너무 부족해보였고, 동아리 생활, 학교 생활하면서 소위 "사회 생활"이란 걸 못 하는 타입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그 때 선택한 바보같은 솔루션이 뭐냐구요? 다시 수능보자. 그래서 의대가자. 전문직하면 이런 사회생활 필요없겠지? 같은 아주 전형적이고 나약한 생각이었습니다.
휴학하고 도서관에 박혀서 사수인지 오수인지 분간도 안되는 수능 공부를 할 때 문득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뭐지? 아니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지? 라고 스스로 물었을 때 제일 먼저 튀어오른 것이 바로 역시나 "옷","패션" 이었어요.
앉은 자리에서 바로 패션 관련 대학생 활동을 검색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공대생이었던 학생 머리로는 생각해 볼 만한 유일한 대안이었거든요. 그 때 여러 활동 중 그래도 도전해볼만한 공고가 하나 보였습니다.
루이까또즈 라는 매스티지 브랜드에서 진행하는 "루이지엔" 이라는 대학생 홍보대사 활동이었습니다. 수학,과학 머리 쓰는 일만 하다가 처음으로 좋아하는 옷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고 작은 성취를 이뤄갔습니다. 공부, 시험외에는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라는 의구심에 눌려있던 자아가 깨어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루이까또즈 활동을 하면서 마케팅, 광고가 재밌어서 관련 서적을 마구잡이로 읽기 시작했고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카피라이팅을 해보고, 시키지도 않은 어떤 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혼자 짜보기도 했습니다. 마케팅, 광고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획, 사업 기획, 전략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학교에 돌아왔을 때 삼성 SDS 산학 협력 프로젝트 강의가 열려있었습니다. 그 간 필드(?? 그냥 학교 밖)에서 구르면서 쌓아왔던 마케팅,광고,사업 기획, 발표 내공을 뽐낼 수 있는 무대가 생긴거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교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삼성 sds 인턴을 하게 됐고 교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최종 우승까지 거머쥐게 됐습니다. 우승 혜택으로 실리콘 밸리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이게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 몰랐어요.
실리콘밸리에서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막 성장하는 글로벌 기업을 보고 나니 삼성이..작아보였어요. 머리만 커져서 온 거죠.(지금은 삼성 너무 존경해요. 훌륭한 기업입니다.) 가있는 중에도 다녀와서도 제 머릿속에드는 생각은 오로지 "창업" 이었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남아있었고 그 때 벤처창업론 수업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작은 비즈니스를 만들어보고 한 학기 동안의 결과물, 인사이트를 나누는 수업이었습니다. 당연히 "패션"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공대생이다 보니 수학과외를 많이 했었 던 때 였습니다. 하루는 시범 과외 (면접)를 갔는데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있는 공부방이었습니다. 수업 잘 마치고 나왔는데 공부방 매니져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구요. "선생님 수업은 너무 좋구요. 애들도 좋아하긴 하는데..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 가방..이요" 멋내기 좋아하던 공대생 권정현은 당시 GD 백팩으로 유명했던 MCM의 가방을 메고 수업을 갔었나봅니다. 그 가방에 친구들이 위화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시더라구요.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 패션을 사랑하는데 패션이라는게 남한테 상처를 줄 수도 있구나? 패션으로 좋은 일을 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chari"Tee" 였습니다. 당시 탐스 슈즈가 큰 성공을 거뒀을 때였고, 탐스 슈즈처럼 티셔츠 하나를 사면 티셔츠 하나를 기부하는 원포원 모델을 생각했습니다. 티셔츠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 그린 그림을 활용하는 형태였습니다. 듣기만 해도 진부하시죠? 그렇게 과제이긴 했지만 처음으로 시도해봤던 사업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루이까또즈 홍보대사를 같이 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어느 날 이었습니다. 멤버 중 하나였던 슬이 누나가 "정현아 너 나이 들어서도 이 사람처럼 옷 입고 다니겠다" 하고 보여준 사진이 바로 미국의 유명한 패션 인플루언서 닉우스터 였습니다. 충격적이었어요. 백발에 아저씨가 이렇게 옷을 잘 입는다고? 제가 알던 한국의 백발 아저씨,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의 패션 감각도 놀라웠지만 젊은 친구들과 아무 거리낌없이 어울리고 대화하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때 막 한창 개저씨, 꼰대, 틀딱 등 혐오 표현이 늘어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세대 간의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할 때 였거든요.
그 날 그 자리에서 바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거 우리나라에서 내가 한 번 해봐야겠다. 멋있는 할아버지를 , 아저씨를 한 번 만들어보자.
여느 대한민국 청년처럼 사실 별다른 도전이라는 걸 못 해보고 산 것 같아요. 도전이라고 해봤자 중간,기말고사를 수차례 치고, 수능시험을 봤던 것? 대학가서는 대외활동에 지원하고, 공모전에 지원해본 경험 뿐 이었죠. 길을 직접 만든 다는 것은 제 머릿속 데이터에는 없던 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구요?
역시나 공모전에 도전했어요. "위키 서울 세상을 바꿀 100가지 아이디어" 라는 공모전에 지원했습니다. "꽃할배 만들기" 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닉우스터 같은 할아버지를 서울에 만들어보겠습니다! 당찬 포부가 가득담긴 지원서를 제출했고, 다행이도 선정됐습니다. 100만원의 예산이 주어졌습니다.
먼저 할아버지 모델을 구해야했습니다. 막막하더라구요. 부탁할 가족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처음에 시도한 건 지하철 양끝칸에 서성대면서 괜찮은 할아버지 모델을 물색했습니다. 핸드폰에 닉우스터 사진을 담아서 보여드리면서 "선생님 너무 멋지셔서 그런데 제가 이 아저씨처럼 만들어드릴게요. 함께 해보실래요?"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 정확히는 몸짓은 "워이워이 난 그런 거 안해. 저리가"였습니다. 호객 행위하는 장사꾼, 또는 사기꾼으로 생각하셨어요. 가끔 제 연락처를 받아가는 분들이 있었지만 결국 제 길거리 캐스팅을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건 복지관, 주민센터 등 기관이었어요. 우선 연세가 많은 분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할아버지는 극소수였어요. 또 보수적인 기관 특성상 개인을 소개해주시고, 그 개인이 또 사진 찍힌다는 일을 한다고 하니까 부담스러우셨는지 다들 거절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근처 골목을 지나다 카페 하나를 발견했어요. 백발의 바리스타가 커피를 타고 있는 캐리커쳐가 입구에 붙어있었고, 그 캐리커쳐와 닮은 듯 한 백발의 노신사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선뜻 바로 물어보진 못 하고 커피 한 잔 하고 잔을 반납하면서 조심스럽게 여쭤봤어요.
"선생님 너무 멋지셔서 그런데 제가 이 아저씨처럼 만들어드릴게요. 함께 해보실래요?"
"재밌겠는데 ? 와이낫 해보지 뭐"
드디어 "꽃 할배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음 과정은 수월했어요. 예산으로는 할아버지에게 입힐 옷을 사고, 제 옷장에 있는 옷들을 꺼내오고, 부족하면 과외해서 번 용돈으로 옷을 샀습니다. 그 옷들로 스타일링 하고, 베가 넘버 식스라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자신감이 찼는지 응암동을 벗어나서 반응을 보고 싶었어요. 가로수길로 향했습니다. 당시에는 패션 피플들을 찍기 위해 스트릿 포토그래퍼들이 가로수길에 즐비했던 때 였습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가로수길을 걷고 있는데 포토그래퍼 하나 두명이 할아버지 모델에게 촬영 제의를 했습니다. 또 그렇게 포토그래퍼 하나 둘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니 길거리에 있던 시민들이 싸인을 받아갔어요. 유명한 모델인 줄 알구요.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그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동화나라에 온 것 같아요"
옷 입히고, 사진만 찍어서 올렸을 뿐인데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순식간에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워수는 10,000명이 넘고 방송,언론 인터뷰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 신기했던 건 젊은친구들의 반응이었어요. 여러가지 인생 조언을 구하는 젊은 친구들부터, 팬이라면서 카페로 찾아오시는 분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까지 생겼죠. 슬이 누나가 보여줬던 "닉우스터"를 재현하게 된 거죠.
당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었고, 대기업은 입사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반응이 폭발적인데 사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사업을 하면 되는데 저는 사업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또 창업 경진 대회에 나가게 됩니다. 2014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는 시니어 패션 웹 매거진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영업을 해본적 도 없는 풋내기 대학생 창업가는 돈 한푼 벌어보지 못 하고 콘텐츠만 만들다 끝났습니다. 무려 2016년까지 커머스를 론칭하기도, 스타일링 앱을 해보기도 하고, 인플루언서 MCN 까지 계속해서 아이템을 피봇해가면서 정부 지원 사업과, 각종 무료 지원금으로 연명했습니다. 운이 좋게 투자를 받기도 했구요.
사업 다운 사업은 하지도 않고 계속 여기저기 발표만 하러 다니던 때 였습니다. 당시 모든 행보 하나하나가 부끄럽죠. 그래도 자부심? 아니 다행인건 시니어 패션이라는 큰 키워드를 놓치 않았다는 것, 그리고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어왔다는 것 이 두 가지만큼은 스스로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돈 한푼 제대로 벌지 못 하는 스타트업이 멀쩡할리가 없겠죠? 회사는 점점 망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돈도 없는데, 돈도 못 버는데 갑자기 카페를 차리게 됩니다. 아마 스타트업 병 같은 거 이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