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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오늘 Dec 10. 2023

나조차 내가 힘들다는 걸 몰랐다







    2주 만에 본가에 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본가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사랑하는 나의 첫째 고양이가 문을 들어서자마자 반겨 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졌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소리 내서 아이같이.


    고양이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머리털을 쓰다듬으면서 '보고 싶었어.', '누나 힘들었어.' 같은 소리를 내며 우는 집사의 모습에 아마도 첫째는 적잖이 당황스러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울 줄 몰랐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 사는 삶에 나름 자유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심 누군가가 나를 반겨 주는 그림을 많이 그리워했는지도 모를 밤이었다.


    물론 본가에 오는 길 내내 울적하고 힘든 마음이 도사리고 있긴 했다. 신나게 월차를 쓰고 혼자 여행을 다녀온 뒤 기다렸다는 듯 일상 속 업무가 한꺼번에 내게 들이닥치고 말았다. 더군다나 날이 선 말들이 나에게 꽂히니 피곤함에 눈이 유난히 빨갛게 충혈되기도 했다.


    그래, 지금 상황도 내가 선택한 거니까. 다 배우고 경험하는 거니까. 사회생활을 하려면 이 정도는 참고 견뎌내야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거잖아.


    위와 같은 말들로 얼마나 부지런히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달래려 애썼는지 모른다. 억지로 꾹꾹 눌러온 마음들이 마치 홍수처럼 본가에서 펑 터지고 만 것이다. 실핏줄이 터져 피곤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눈을 보자 어찌나 속상하던지. 어떻게든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견뎌 보려 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속이 여린 아이 같은 모습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부모님 앞에서도 굳이 눈물을 숨기지 않고 힘들었다 투정 부리는 딸의 모습에 그분들의 마음도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눈물이 왈칵 터져 버리면서 '아, 나조차 스스로 힘든 줄을 모르고 살 때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무뎌진다는 말은 곧 따끔따끔했던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채 흉터로 남는다는 말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나의 아이 같은 모습을 고백하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성숙한 어른의 가면 뒤에 숨어서 아픈 상처를 꾹꾹 누르고 있느니 이렇게 아픔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 또한 하나의 용기라고도 생각을 해 본다. 눈물이 많으면 약한 사람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감정 표현에 두려움이 없는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자신의 슬픔을 떠넘기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아픈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 것 또한 자신을 위한 용기라고 본다.


    이쯤 되면 엉엉 운 나의 모습을 듣기 좋게 포장한 것으로 들리기까지 하지만... 내 생각에 변화는 없다! 무조건 힘든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나를 해치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너무나 잘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얻는 위로도 분명 존재하지만 누군가와 함께일 때만 얻는 위로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꼈다. 만약 본가에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억눌린 그 감정을 모른 채 부지런히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나는 아마 여전히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애를 쓰며 매일 밤 고군분투를 하다 잠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10분 명상 영상을 틀어놓은 채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낮에 펼쳐진 일들이 시끄럽게 머릿속을 울렸을지도.


    앞으로도 마음을 어지럽히거나 힘들게 하는 일들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귀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 꼭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고된 일주일이었지만 내면의 아주 작은 일부가 단단해졌음을 느끼며 조금은 뿌듯함을 느끼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글을 마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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