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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오늘 Feb 26. 2024

행복 별거 없네







    오랜만에 집 근처 마트에 들렀다. 특정한 무언가를 사야겠다 싶어서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막연히 살 만한 게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리며 엉성하게 한 바퀴를 돌다가 문득 카운터 근처에 작게 마련된 떡 코너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우리 쌀로 만든 떡. 1팩에 2,500원. 2팩에 4,000원. 나는 평소에 떡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좋아하는 떡이 바로 절편과 백설기였다. 하필 가지런히 포장된 절편이 내 눈에 띄고 말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한 팩을 집어들면서 작게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가 떡을 사다니.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것인데. 이렇게 먹을 것들이 많은데 왜 굳이 마트에서 떡을 사나 싶었는데. 이런 스스로가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래, 요즘은 그런 시기였다. 새로운 것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은 시기.


    몇 주 전부터 고구마가 미친 듯이 먹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은 한 뭉터기를 사서 냄비에 보글보글 삶았다. 고구마는 당연히 우유와 곁들여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나만의 룰대로 새하얀 우유 한 컵을 테이블 위에 두었다. 방금까지 펄펄 끓는 물에 담궈져 있던 아이들이라 그런지 손끝을 대자마자 그 열기가 고스란히 손끝에도 전해져서 황급히 손을 뗐다. 아, 바로 먹고 싶은데. 몇 분 더 기다리면 될 것을 손끝이 화끈화끈 데여 가면서 어떻게든 껍질을 벗겨 내고 드디어 노란 빛깔의 고구마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천국이구나. 달달하고 포슬포슬한 이 맛과 식감. 거기다 고소한 우유까지 바로 한 모금 해 주면.... 왜 진작 안 사 먹었지? 행복이란 게 별게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쁜 음식은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요즘은 새롭게 채식에 관심이 생기고 있는데, 그 와중에 달달한 간식이 당겼다. 아니, 몸에 안 좋은 음식은 피하기로 했는데 왜 자꾸 달달한 게 먹고 싶지? 카라멜 휘낭시에 먹고 싶다. 평소에는 빵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설탕 범벅인 디저트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어찌저찌 이성을 겨우 붙잡은 채 해로운 디저트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 간식들을 찾았다. 그 와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카카오 가루가 골고루 묻은 코코넛 간식. 다른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서 몸에도 나쁘지 않고, 미각까지 만족시켜 주는 아주 착한 녀석.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싶다가 맛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니 결국은 사지 못했던 친구가 오늘 우연히 올리브영 건강 간식 코너에서 떡하니 자리를 잡은 채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어서 나를 사서 먹으시지?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참지 못해서 바로 포장을 뜯어서 한 입 먹는데, 아, 또 다른 천국이 여기 있었다.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잘 먹지 않는데, 오늘만큼은 어린 날의 나로 돌아가서 우적우적 과자를 잘도 씹으면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아, 행복 별거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그냥 사 먹는 것. 그런데 이왕이면 건강한 걸로 사 먹어서 죄책감까지 없는 것. 이게 행복이네.


    오늘도 귀가를 하면서 마트에 들러 바나나와 절편 한 팩을 샀다. 고구마도 함께 살까 하다가 맛없는 고구마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참았다. 평소에 바나나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입에 텁텁하게 남는 느낌이 싫어서 잘 먹지도 않던 바나나가 불현듯 먹고 싶어지는 게 신기했다. 절편은 오늘도 왜 이리 잘 들어가는지.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 두 가지 카테고리를 정해 놓고 매일마다 너무 비슷한 음식들만 고집하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가끔은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을 자유롭게 먹게 해 주는 것이 별거 아닌 행동 같아도 하루의 기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적어도 그 순간에는 엄청난 행복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샐러드 채소도 사고, 파프리카도 사고, 양배추도 사고. 아, 강된장도 해 먹어야지. 또 나를 위해 어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줄까? 내 몸이 지금 먹고 싶어하는 음식은 뭘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자체가 나를 아이처럼 설레게 만들어 준다는 게 조금은 낯부끄럽기도 하고 괜히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스울지라도 이 생활을 꾸준히 오래 이어 나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는 나를 위해 다정해지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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