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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Dec 04. 2023

마취가 불가능한 수술

2022.11.06 1년 전 마음 기록

수많은 트라우마의 기억들로 가로새겨진 나의 어린시절은 언제 어떤 자극으로 이십대 후반의 내가 단숨에 어린아이로 되돌아가게 만들지 모른다. 때때로 상담치료를 하지 않는 일상 중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역치를 넘어서는 기억의 공포가 도래할 때, 혹은 상담 중에 열었던 상처를 미처 다 다루고 닫지 못한 상태로 다음 상담을 기다려야 할 때, 내 몸은 마취없이 외상을 열어 피를 흘리며 일상을 사는 듯한 고통에 지배당한다.


그 고통을 차마 다 느끼며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사회생활응 하는데 부하가 걸려, 나의 뇌는 더이상 각성을 유지할 힘을 잃어버린다. 과각성과 저각성, 과각성으로 도망치거나 싸우는 것 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초식동물이 흡사 죽은 시체가 되기를 선택하듯 나는 그렇게 저각성, 즉 '해리'가 생긴다.


해리란 방어기제의 한 종류로도 불리고, 정상적인 범주에서 일반인들이 겪는 해리부터 질환 범주의 해리까지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우리가 일상에서 앞사람의 말을 듣다가 지루해서 잠깐 딴생각을 하거나 멍때려서 앞사람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정상적인 범주의 해리이다. 질환적인 범주에서는 해리성 기억 상실, 해리성 정체감 장애, 이인증성 장애 등이 있다. 이 중 내가 트라우마로 예기치 못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때 일어나는 장애로 이인증이 있다.


내가 이인증을 겪을 때를 경험 그대로 풀어보자면,

분명 나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고 나도 그걸 듣고 대답을 하지만, 그 대답을 하는 사람이 나라는 느낌이 없다. 지금 내가 행동을 하고 있는 주체가 내 몸속 깊숙히 숨어있거나 내 몸 밖에 나와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만 몸이 내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고 극심한 저각성 상태로 나의 몸의 움직임 주변의 시간의 흐름이 슬로우 모션처럼 돌아간다. 집에서 가족들이 얼른 외출하자고 크게 말하는 소리가 날카로운 바늘처럼 느껴져 귀에 이어폰을 끼고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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