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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Jan 13. 2023

상담일지: 안전기지가 사라질까 봐

2023-01-10

나는 내가 바쁠 때면 애정을 가진 사람과의 교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미신 아닌 미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일정이 바빠지는 1월 초중반 상담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생각하고 바쁜 일정이 끝날 때까지 상담 예약을 잡지 않았다. 그렇게 없애고 나니 바로 극도로 불안해졌다.


처음에는 내 불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답답했다. 일주일 내내 심장이 쿵쾅대고 밤에 잠에 들 수 없고 새벽에 깨서 미친 듯이 절구를 찧어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몸이 너무 힘들고 아파서 엉엉 울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니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어 사람이 피폐해지길래 힘들 때면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상담을 다시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상담 예약을 잡고 나니 심장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아, 상담선생님이 사라질까 봐 겁이 났구나.’

‘버림 공포가 발동했구나.‘

를 깨달았다.


더군다나 내가 쉰 1주일 동안 선생님도 휴가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이 아픈 건 아닌지 온갖 상상의 나래의 블랙홀이 나를 덮치려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이전 상담에서 알려주신 대로 상상하지 않고 내 일상을 잘 지내다가 돌아온 회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며 예약을 한 날부터 회기가 도래하기까지 30년 같았던 3일을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내 편이 되어줄 부모 같은 존재로 내 마음속에 품기 시작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준 선생님의 존재가 너무나 소중하다. 내가 세상 모든 일에서 걸음마를 떼고 뛰어가다가 넘어져서 아파서 뒤를 돌아봤을 때,

“어~ 괜찮아. 괜찮아. 선생님 여기 있어. 다시 뛰어가봐. “

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없어져 있을까 봐 겁이 났다. 한평생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고, 물건을 뺏기고, 따돌림을 당하고, 쪽지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하고 싶은 일에 실패해서 돌아왔을 때도 나를 지켜주고 달래주고 대신 화내주는 부모와 안전기지가 없었다. 20년 동안 부재했던 안전기지 같은 존재가 비로소 생겨난 지금, 내가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그 자리가 다시 비워져있을까 봐 불안하고 생존에 위협이 가해졌던 것 같다. 아마 내 뇌는 생존에 위협이 가해지니 지금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나 보다 싶다. 나의 혓바닥의 미뢰세포는 모두 파업에 들어가 입에 무엇을 넣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고, 배가 고프지만 먹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어 끼니를 때울 칼로리만 채우며 일주일을 버텼다. 나의 애착대상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니 잠을 자다가도 눈이 떠져서 잠이 오지 않아 고역이었다. 수면시간이 기분장애에 큰 영향을 미치고 8시간을 채워야만 하는 내가 5시간씩밖에 못 자니 오후에 골골대는 것은 물론이고, 자꾸만 차오르는 눈물과 짧은 호흡은 덤이었다. 졸리니 바쁜 내 일들을 소화하는데도 버퍼링이 걸렸다. 바쁜 일정을 더 잘 소화하기 위해 상담을 미뤘는데 이게 무슨 부작용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회기가 시작되고 선생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달래주는 목소리를 들으니 언제 심장이 두근댔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어젯밤은 잠에 드는 게 그렇게 쉬웠나 싶을 정도로 편안하게 잠들었다. 식욕이 돌아와 먹고 싶은 음식이 마구 생각나 끼니를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그 외에도 회기에서 다루었던 내용으로는

내가 왜 중요한 공부와 일정을 두고 모든 것을 차단하려는 미신을 믿게 되었는지 다루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해야 할 의무가 공부밖에 없었고 내 욕구는 휴지조각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시기,

내 엄마는 언제나 웃는 얼굴과 호의적인 태도로 나의 공부를 도와주었다. 집을 떠나 친척을 만나는 날이든 가족과 외식을 하는 날이든 나의 공부를 위해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얼른 집으로 가주었다. 다른 공부방해요인을 줄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다. 얼핏 이 사실만 듣기로는 자식의 공부를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해 주는 극성맘의 모습으로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나에게 그 최선에 대한 결과를 토해내길 바랐기에 나는 그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그 기대치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따라온 결과가 좋았을지는 몰라도 내가 다친 마음과 고립되어 기댈 곳 하나 없는 외로움은 지금까지도 남아 내 미신과 신념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의 삶의 역사는 지금의 내 삶에서 타인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응원과 지지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파이팅!”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잘 해내야 하는 압박감이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표면적으로 호의 가득한 얼굴 그 이면에 있는 의도를 읽기 위한 레이더가 자동으로 켜진다. 그렇게 레이더를 켜야만 우리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레이더를 켜서 웃는 엄마의 뒤에 숨겨진 기대치와 요구를 알아내야만 했던 어린 아이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상대방이 나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따뜻함을 그대로 느끼려 노력해야 한다. 상담선생님께서 알려주시길 나의 경험을 믿어보길 바란다고 하셨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하는 응원을 들었을 때 좋은 마음, 행복한 경험 1차적으로 느껴지는 그것을 그대로 느껴보기를, 아마 그 뒤에 따라오는 무거움과 압박감,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과거 엄마의 목소리와 내 역사가 만들어내는 감정들일테니 그것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하셨다. 앞으로 내 어릴 적 기민하게 발동시킨 레이더를 점차 사용하지 않으려 해봐야겠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이 아파서 상담을 할 수 없는 것, 인간의 유한함, 한계로 발생하는 불가항력이 관계를 갈라놓을까봐 극도로 공포에 떠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년 전 상담예약이 잡혀있다가 선생님이 응급실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가 기억 속에 각인되어 두려움을 유발하기도 했으며, 더 오래전 기억과 무의식 속에서 나의 공포를 유발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이 큰 공포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내 어떤 기억에서 시작됐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상담을 계속하다보면 하나둘 나오는 기억으로 이해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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