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동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몸부림
나는 설리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팬이었다거나 에프엑스를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설리의 행동을 무차별적으로 욕하는 우리나라 인터넷 사회의 악랄함과 악플의 흉악함에 치를 떨며 설리의 마음 한 켠을 오롯히 느끼며 슬프고 아파하는 수많은 대중 중 한명이었을 뿐이었다.
내 머리로는 짐작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사소한 이유들로 대중의 미움을 받는 설리에게 강한 동정과 안쓰러움, 속상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날 하루, 설리의 인스타 라이브를 실시간으로 본 적이 있다. 졸려하는 목소리와 차분하고 바닥에 깔려있는 톤으로 하는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라는 그 말이 너무나 아프게 들렸다.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 속에서 외치지 못한 상처의 외마디가 설리의 입을 통해 내 귀에 들린 것 같아 사무치는 슬픔이 느껴졌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 아니라고들 하며,
일반인에 비해 0이 몇배는 더 붙는 연봉을 받는 직업을 가진 예쁘고 화려하기에 부러움만 남은 이 처럼 여겨졌지만,
설리는 자살하기 전날, 누구보다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을 소화하는 화보를 찍는 일정을 끝마치고 다음날 목숨을 끊었다.
자살사고가 강해질 때면 수많은 자살한 연예인 중 왜 설리가 유독 그립고, 보고싶은지 생각해보곤 한다.
단순히 그 예쁜 얼굴과 예쁜 미소가 2023년도에는 어떤 빛깔을 띠는지 궁금하지만 절대로 알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일까.
그렇게나 아프면서 방송에 나와 악플에 대해 웃으며 말하는 설리의 미소가 너무 예뻐보였던게 미치도록 슬프고, 무서운 엄마와 살며 미소를 잃지 않던 내 자신과 동질감이 들어서일까.
나는 감히 닿을 수 없는 죽음의 동경을 넘어, 죽음에 도달한 그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의 버무림일까.
정반대로 인간적 본능에 충실한, 죽지 않고 이 세상에 살고 싶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를 위한 감정의 표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