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규 Aug 04. 2018

'결정적 순간'을 놓친 스타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리뷰] 일드 SP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 소확행이 준 일대 행운

무명으로 전락한 스타 여배우들, 그들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리뷰] 일드 SP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 소확행이 가져다 준 일대 행운


* 이 글은 이동규 작가가 시민기자 자격으로 언론사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 글의 원본입니다.

http://omn.kr/rhmk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 제1편 포스터 (ⓒ FUJI TV)


스타가 연기하는 무명 배우의 삶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법한 일본의 유명한 여배우들 3명이 다시 ‘일본의 여배우’를 연기한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유명한 여배우가 아니라, 한때 잠깐 ‘뜰 뻔’했다가 결국 스타가 되지 못해 ‘한물 간 여배우’를 연기한다. 스타가 무명의 삶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이질감과 아이러니가 일드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의 핵심 모티프다. 한때 한국에서 평행세계를 소재로 삼아서 유행했던 코미디 프로그램, <인생극장>의 일본 드라마 버전 같다.     

참고로 이 일본의 SP(스페셜 드라마)는 현재 2018년 기준으로 총 2편이 나왔다. 한편은 2015년에, 최근작은 2016년에 방영되었다. 드라마 제목은 둘 다 동일하게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이다. 제1편에서는 다케우치 요코, 마키 요코, 미즈카와 아사미가 출연했고, 제2편에서는 히로스에 료코, 이가와 하루카, 사이토 유키가 주연을 맡았다. 6명 모두 일본에서 유명세나 인지도 측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인기 있는 여배우들이다.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 제1편 중에서 (ⓒ FUJI TV)


우리 모두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들 연예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본인이 아쉽게 놓쳤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 결정적인 순간에 ‘만약 내가 ……했다면 지금은 이랬을지도 모른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결국 스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다소 씁쓸해하며 자책한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엑스트라 역으로나마 연명하면서 여전히 연예계를 기웃거리고 있고, 나머지 일부는 미련을 접은 채 완전히 연예계를 떠나서 새 삶을 꾸려나간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 <가지 않은 길>을 읊었다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가지 ‘못한’ 길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그 때의 그 선택으로 인해 주인공들은 평범한 삶을 사는 도중에도 문득 문득 힘들어하고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모습을 스크린 너머로 지켜보면서 우리 시청자들도 각자 저마다 과거에 한번쯤은 겪었던 자신만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웬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 기회, 즉 ‘결정적인 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테다. “그 때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 삶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졌을 텐데!”하는 자책들 말이다. 설령 자기 삶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 티끌만큼은 ‘만약에 있었을법한 더 좋은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 누구든지 삶의 기로마다 100%로 만족할만한 선택을 했다고 자부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늘 과거에 선택을 포기했던 미지의 시나리오에 대해 크든 적든 평생 동안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 제2편 포스터 (ⓒ FUJI TV)


소확행이 가져다 준 일대 행운     


하지만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마냥 과거의 향수에 얽혀있는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만약 있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영광을 애매하게 다시 찾으려하기보다, 오히려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꾸역꾸역 헤쳐 나가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속칭 소확행(小確幸)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극 중 주변 인물들 중에 일부는 주인공들의 이런 모습을 두고 패배자라든가 퇴물이라는 식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연한 계기들이 이리 쌓이고 저리 쌓여서 그들의 소확행은 대길(大吉, great fortune)과 대운(大運, good luck)으로 일대 반전을 이룬다. 그렇게 주인공들은 자신들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과 모양새로 서서히 행복해진다. 한때 스타를 꿈꿨으나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비록 연예인은 아니지만- 각자 저마다의 방식들로 새로운 꿈을 이룬다. 시작은 불운했으나 끝은 행운이다. 출연자들 중에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냉소주의가 흔한 일본 드라마에서 쉬이 볼 수 없을 만큼 훈훈하고 순조로운 해피엔딩 구조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에 관하여 드라마 제작진들이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물이다. 더불어 우리 시청자들도 주인공 한명 한명의 인생역정과 인생역전을 따라가다 보면, <가지 못한 길>을 자꾸 되돌아보기보다 ‘가야만 하는 길’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 제2편 중에서 (ⓒ FUJI TV)


아모르 파티(Love of fate)’,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이 드라마를 즐기는 또 하나의 감상 포인트는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능청스럽게 패배자 및 퇴물을 연기하는 모습이다. 연기력의 수준 여부를 차치하고 어찌되었든 현재 일본의 유명 인들이 그들과 정반대인 처지로 전락하여 다사다난하게 사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한껏 몰입하게 된다.     


마치 “저렇게 성공한 이들도 어쩌면 저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실패한 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고 때를 잘 만나 지금처럼 성공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안도감이 든 달까. 그리고 반대로 “이렇게 무난하고 진부한 내 삶도 꾸역꾸역 하나씩 현실을 헤쳐 나가다보면 혹시 성공한 삶으로 탈바꿈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얻는 달까.     


어차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가 양쪽 세계를 모두 경험할 수 없는 평행우주라면, 마냥 피안을 동경하기보다 지금 내가 속한 이쪽 세계를 잘 꾸려나가는 것이 보다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힘내서 본인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과 대면해보자. 그리고 그들을 힘껏 받아들여보자. 그러면 언젠가 허무를 극복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처럼.                    



※ 전달 및 공유는 자유로이 가능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꼰대'문화와 집단문화에 저항하는 수술 천재 여의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