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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규 Aug 29. 2018

대입 학종 전형, 자소서로 '자소설' 강요하는 사회

'엄친아'와 '인싸' 친화적인 현 교육 정책

'인싸'만 대우받는 세상, '가짜 인격' 만드는 고3 수험생들

'보통 학생'과 '아웃사이더'를 위한 자기소개서 문항의 부재


* 이 글은 이동규 작가가 시민기자 자격으로 언론사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 글의 원본입니다.

http://omn.kr/xv4n


자기 소개서 쓰기, 대입 합격의 중요 관문

여름대입 자소서 시즌


여름은 대부분의 고3 학생들이 대입 수시 전형에 지원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는 시즌이다. 필자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봄의 끝 무렵까지는 잠잠했던 자소서 문의가 여름의 절정에 치달을수록 비례하며 늘다가, 8월말쯤 되면 그야말로 빗발치는 수준이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소서는 면접에 이르기 위한 1차 관문이거나 그 자체가 합격의 최종관문인 경우들도 있으니, 이렇듯 가을이 다가올수록 학부모나 학생들이 자소서 완성에 사활을 거는 것은 당연지사다.


자소서는 총 4문항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에서 학생의 학내외 활약상 및 교우관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계해서 써야하는 문항들이 있다.(예외적으로 4번 문항은 요구하지 않는 학교가 왕왕 있다.) 바로 2번과 3번 문항이다. 


2번은 학생이 고교 재학 동안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교내활동’ 또는 ‘학교장 승인 하의 교외활동’을 물어본다. 주로 동아리 생활이나 각종 대회에서의 활동 이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3번은 누군가에게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예’에 대해 물어본다. 이미 문항에 제시된 키워드들이 적나라하게 요구하고 있듯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겪었던 에피소드가 글의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2번과 3번 문항은 서로 ‘활동’이냐 ‘실천’이냐 조금 차이는 있지만, 결국 해당 학생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얼마나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식으로 생활하였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


대교협 지정 자기소개서 공통양식 (출처 :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리더십 강박증과 좋은 사람’ 콤플렉스     


자소서에 관해 상담을 하거나 지도를 하다보면 이 2, 3번 문항을 대하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태도에서 꽤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일종의 ‘리더십 강박증’과 ‘좋은 사람 콤플렉스’다. 클럽 활동에서 중책을 맡았거나 대회에서 수상 실적이 출중한 학생들, 또는 생기부상 활동지수도 높고 실제로 성격도 외향적인 학생들은 자신의 리더십과 ‘사람 좋음’을 자소서에서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혈안이다.      


반대로 클럽 활동이 변변찮았거나 클럽 활동을 했어도 역할 자체가 중책이 아닌 경우, 수상 실적이 전무하거나 손에 꼽힐 정도인 경우, 또는 성향이 본래 내성적이어서 시쳇말로 ‘아싸’(아웃사이더)였던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리더십과 ‘사람 좋음’을 평균치 이상으로나마 구색을 맞춰 글을 쓸 수 있을지 전전긍긍이다.  


‘혈안’이든 ‘전전긍긍’이든 간에, 둘 모두 자소서의 내용으로서 리더십 및 원만한 인간관계에 과도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는 뜻이다.     


그나마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유형 중에서 전자는 조금 덜 괴로울 것이다. 서류 심사원들에게 애당초 드러낼만한 거리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향 자체가 본인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라는 면도 도움이 될 테고 말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은 주로 후자다. 이들은 이미 상담이나 지도를 받을 때 필자에게 자신들의 자소서를 보여주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풀이 죽어있다. 이들이 반쯤 체념한 상태에서 자주 묻는 질문은 다음 두 가지다.     


“제가 지원하려는 대학은 인재의 덕목으로 리더십을 강조하던데 …… 과연 제 학생부 기록으로도 괜찮을까요?” “사실 제가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었거든요. 그래서 딱히 3번 문항에 쓸 만한 인간관계 에피소드가 없는데 어쩌죠?”   


비록 개인적인 통계치지만 필자가 상담하거나 지도한 합격 사례들 중에는 리더십이나 ‘사람 좋음’을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자소서 관문을 통과한 경우가 있었다. 그 중에는 1인 동아리나 개인 프로젝트 형식으로 교내 활동을 펼친 이들도 있었고, 팀원 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 본인이 악역을 자처하여 역설적으로 팀 과제가 원만히 해결되었다면서 자신의 비인간성을 매력으로 내세운 이도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와 같은 경우의 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합격 사례의 주인공들은 극단적으로 말해 ‘아웃라이어’들이거나 속칭 ‘난 인간들’이다. 이들은 남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혼자서 원하는 바를 수행할 수 있고, 사교성이나 사회성이 없어도 나름대로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두각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자들이다.


'보통 사람'과 '아웃사이더'들의 고뇌 : 자소서는 그렇게 자소설이 된다 


자소서는 그렇게 자소설이 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그리 흔할까. 대개는 그저 특정 집단 속에서 소리 없이 궂은일을 맡는다거나, 남에게 도움을 줬다하더라도 누구에게 생색내기 계면쩍을 정도로 평범한 수준에 불과한 학생들이다. 특출한 소수보다는 범상한 다수에 속해있고, 무리의 머리와 앞쪽보다는 몸통과 뒤쪽에 속해있는 학생들이다.   


물론 여느 대학 관계자들은 “저희 대학은 그러한 보통 학생들도 원합니다!”라고 공식적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생색내기용일뿐 제 아무리 수험에 무지한 인간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 없을 것이다. 필자야말로 수년간 숱하게 눈으로 확인했다. ‘보통 사람’을 콘셉트로 삼은 자소서들의 행방과 말로를 말이다.   


그래서 용의 꼬리는커녕 뱀의 몸통이나 꼬리만 맡아왔던 학생들이나, 딱히 누군가에게 대단한 선행을 베푼 기억이 가물가물한 학생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생기부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거나 극히 희미한 리더십, 그리고 ‘선행의 추억’을 어떠한 식으로든 마른 수건 짜내듯이 포장할 수밖에.    


이때부터 팩트는 팩션(faction)이 되고, 심하게는 픽션을 넘나든다. 항간에 자소서를 흔히 ‘자소설’이라 풍자하는데, 이렇듯 ‘소설 강요하는 사회’는 중고교 때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물론 이해는 한다. 사실만으로 자소서를 쓰자니 도무지 승산이 보이질 않는 상황에서 달리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그래서 필자 역시 이렇게 콘텐츠가 부재하여 자소서를 쓰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학생부 기록상 딱히 진위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수준 내에서라면 본인이 어느 정도 내용상 ‘마법’을 부려도 무방하다는 식의 조언을 해준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을 나잇대라 그런지 다들 처음에는 “그래도 되나요?!”하고 반신반의하거나 “앗! 그것은 좀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척하)면서도, 종국에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자기 글의 연금술사가 되어가는 과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단을 만든 현 시대의 교육 정책에 대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저 심란할 따름이다.


주류 속의 비주류 : '아웃라이어'이거나 '아웃사이더'이거나


‘보통사람’과 ‘아싸’를 위한 자소서도 필요


본래 대학생들의 은어였다가 고교생들도 즐겨 쓰는 유행어 중에 ‘인싸’와 ‘아싸’가 있다. ‘인싸’는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모임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는 학생을 말한다. 반면 ‘아싸’는 그 반대다. 교우관계가 좁고 대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소극적인 성향의 학생들이다.


필자는 현행 대입 시험의 자소서 제도가 지나치게 ‘엄친아’와 ‘인싸’들에게 친화적인 정책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해본다. 학생들 각자가 지닌 개성을 중시하고, 학생 능력의 다양성과 잠재성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었다던 수시 학종 전형이 한편으로는 ‘엄친아’와 ‘인싸’로 획일화되는 인재 영입 방식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다.


현재 자소서에서 요구하는 2번과 3번 문항을 전면 삭제하자는 주장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보통사람’과 ‘아싸’들을 위해 2번과 3번 문항이 일부 수정되거나, 아니면 그들을 위한 문항이 별도로 신설될 필요는 있다. ‘보통 학생’과 ‘아웃사이더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끝내는 거짓말로 자신들을 포장하게끔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현행 자소서 문항들은 결코 교육상 올바르다고 볼 수 없다. 


올해도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간관계 에피소드가 부재하다는 이유로 강박증과 콤플렉스에 신음하며, 팔자에도 없는 소설가 지망생 놀이를 하고 있는 고3 학생들이 전국에 가득하다. 필자는 교육부 수장이 아니므로 단순히 이들에게 기원밖에 해줄 것이 없다. 모쪼록 자네들의 연금술에서 금이 피어나는 마법이 이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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