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례식
항상 일기는 써왔지만, 할머니 장례식에서는 처음으로 이 감정들을 남김없이 토해낼 다른 곳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친척들의 날 선 목소리와 웅성거리는 장례식장. 사람들의 곡소리와 눈물. 그리고 몇 년 만에 보는 아빠의 모습. 가여운 목소리로 아빠는 자신의 엄마를 찾으며 장례식 내내 울었다. 그 행동은 아빠를 금세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나는 이것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종이와 팬이 없었으므로 핸드폰 메모장에 내 감정을 모두 적어냈다. 걷잡을 수 없이 넘실거리는 감정들이 딱딱한 글이 되어 형체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탈출구를 찾은 것 같았다. 반듯하게 눌려진 내 감정들을 마주하며 지새웠던 장례식장의 밤.
할머니는 유난히 우리를 예뻐했다. 다섯 남매 중 셋째인 아빠가 그래도 첫아들이라 그랬던 걸까. 어렸음에도 다른 친척들과의 차별이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 가끔 할머니가 꿈에 나온다. 산중턱에 있었던 작은 집, 파와 배추가 심어진 텃밭.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들을 뒤로하고 바쁘게 무언가를 씻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아빠는, 아빠가 되는 것도 서툴렀고, 누군가의 아들로서도 서툴렀다. 그건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처음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어머니와 아들이 되지 못했다. 술을 마시고 자신의 어머니를 원망하던 아들이 어머니가 떠난 장례식장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렇게 눈물을 보였을까. 가끔 문득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