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j
j에게 한동안 아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십 년은 우리에게 무관심했고 십 년은 폭력적이었고, 또 다른 십 년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시간을 허비했던 내 아빠를. 내가 그와 진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에게서 그런 그의 성향을 가늠해 보고, 아 그래 그 부모의 그 자식이지,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니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혹시나 j가 하게 될까 봐.
그러나, j는 내 아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암에 걸린 아빠에게 ‘그건 아빠가 자초한 일이야’라고 말했을 때도 j는 고개만 끄덕였다. j는 그 문장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형태로 나를 위로했다. 그런 방식의 위로는 따듯하고 애틋하지만, 그래서 미안하고 답답하다.
#장어집
아빠와 j가 처음 만났던 때는 6월 어느 장어집이었다. 어느 계곡 옆에 위치해 있었고, 눈이 부실정도로 날이 좋았고, 이제 피어나기 시작한 새순의 내음으로 가득했다. j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 그리고 여러 가지 색이 섞인 아빠의 파스텔톤의 모자. 계곡물소리와 사람들의 대화소리. 암 진단 후, 아빠는 평생 피워온 담배를 끊은 대신 탄산을 마셨다.(얼마 후 약을 늘리고 한 모금씩 마시던 탄산도 끊어야 했다.) 아빠는 여느 부모가 물어볼법한 형식적인 질문을 했고, 나는 우습게도 그 질문들이 나와 아빠와의 공백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j는 언제나 그렇듯 정확하고 반듯하게 답을 했다. 아빠의 질문과 침묵이 몇 번 반복되고 아빠는 장어가 반 정도 남았을 때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