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 새벽, 벙커 속의 시신
가을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청산 컨트리클럽.
스프링클러가 돌며 물방울이 잔디 위를 반짝이게 만들던 새벽, 그린키퍼 박성수는 홀컵 옆에 깊게 패인 스파이크 자국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몇 미터 떨어진 벙커 안에서 그는 얼어붙었다.
하얀 모래 위에, 전날 밤까지 경기했던 프로 골퍼 장윤호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머리에는 골프채에 맞은 듯한 상처가, 손에는 자신의 상징인 ‘♣’ 마크가 새겨진 볼이 쥐어져 있었다.
“라운드는 분명 어제 저녁에 끝났는데…”
현장에 출동한 형사 이도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회원 기록에는 야간 라운드 팀이 단 한 팀뿐. 프로 골퍼 장윤호, 그의 스폰서 김태호 대표, 그리고 비서 이나연이었다.
세 사람 모두 “라운드 후 바로 귀가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도현은 홀컵 옆의 스파이크 자국을 오래 바라봤다.
“새벽까지 누군가 여길 다시 찾았군…”
감식 결과, 장윤호는 한 번의 강타로 즉사했다. 살해 도구로 추정되는 클럽은 사라졌고, 현장에는 흔적이 없었다.
도현은 홀 옆 배수구에서 하얀 골프공 하나를 발견했다. 공에는 장윤호가 경기마다 직접 그려오던 ‘♣’ 문양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볼은 사망 당일 사용된 공이었는데, 다음 날 김태호의 락커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김태호 대표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주장했다. “라운드를 마친 뒤 바로 귀가했습니다. 윤호가 퍼팅 연습을 좀 더 하겠다고 해서요.”
하지만 그의 비서 이나연의 말은 달랐다.
“대표님이 휴대폰을 두고 왔다며 다시 클럽하우스로 돌아가셨죠.”
그 사이 약 20분의 공백.
도현은 노트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프로의 경기엔 오차가 없지. 하지만 살인에는… 흔적이 남는다.”
현장을 다시 찾은 도현은 그린 컵을 자세히 살폈다. 홀컵 안쪽엔 깨진 클럽 샤프트 조각이 끼어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컵 안에 꽂고, 그 위를 덮은 듯한 흔적이었다.
그는 감식반에게 지시했다.
“잔디밭 CCTV 말고, 클럽하우스 정원 쪽 카메라도 확인해봐.”
몇 시간 뒤, 모니터 속에서 한 여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새벽 1시, 카트를 몰고 코스로 향하는 이나연이었다. 그녀의 팔에는 ‘♣’ 문양이 새겨진 볼 파우치가 들려 있었다.
도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대표가 아니라 비서였군.”
사건의 방향은 급격히 바뀌었다. 그러나 도현은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문제는 동기야. 왜 그녀가 그린 위로 나갔을까?”
“그 사람은 내 인생을 망쳤어요.”
조사실 안, 이나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대표님을 협박했어요. 후원을 끊으면 스캔들 터뜨리겠다고. 저는 대표님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녀는 새벽에 카트를 몰고 코스로 향했다. 벙커에서 언성을 높이다, 홧김에 클럽을 휘둘렀다. 그리고 공을 주워 락커에 숨겼다.
“대표님은 몰랐어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도현은 한참 침묵하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그린 너머로 햇살이 비치고, 깃발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정직한 경기를 믿었던 사람들.
하지만 마음속 그린엔 언제나 러프가 숨어 있지.” 며칠 뒤, 청산 컨트리클럽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여전히 그 벙커를 지나며, 희미한 스파이크 자국 하나를 떠올린다.
2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