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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ug 22. 2017

포옹의 힘

아이가 엄마에게 호되게 혼납니다. 이젠 컸다고 제법 말대꾸를 하네요. 엄마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집니다. 서로 마음이 상하는 것은 아닐지. 엄마와 아이, 모두 걱정됩니다. 그 순간 아이가 눈물을 터뜨립니다. 엄마는 말없이 아이를 안아 주네요. 더 큰 소리로 우는 아이와 더 힘주어 아이를 안는 엄마의 모습. 그 장면에서 묵음으로 처리된 대화가 느껴집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따뜻한 용서의 대화가.


     

포옹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고도 상대방에게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는 교감의 힘이 있습니다. 포옹하는 두 사람은 하나의 회로가 되고, 체온과 이해와 사랑은 두 사람 사이로 난 마음의 길로 순환합니다. 감정의 순환 에너지는 일상에 새로운 빛을 비춥니다. 포옹의 힘은 그래서 따뜻하고 환합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전 직장의 선배님을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퇴사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 낸 후의 만남이었습니다. “어떻게 지냈어?”, “많이 힘들었지?”, “지금은 지낼 만해?” 등의 질문들을 예상하고, 어떻게 답을 할까 잠깐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님이 성큼성큼 제 쪽으로 걸어오시더군요. 그리고 저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채로. 50대의 풍채 좋은 아저씨 품속은 참 따뜻했습니다. 전 직장에서의 상처와 혼자 견뎌 온 시간의 무게가 녹아 없어질 만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의 위로를.

     

어느 칼럼에서 그러더군요. 연하남이 연상의 연인에게 점수를 따려면 뒤에서 안아 주라고. 앞만 보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뒤쪽이 항상 불안하답니다. 그래서 그 불안하고 허전한 뒤쪽을 보듬어 주면 든든한 위안을 얻게 된다고 하네요. 그렇게 보호받는 느낌을 주는 존재라면 나이 어린 남자 친구도 듬직하게 느껴진다는 논리였어요. 그럴듯하지 않나요? 연인 사이의 사랑도 더욱 깊어지게 하는 포옹의 위력. 우리들의 정서에 미치는 효과가 아주 큽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옹은 고독감과 불안감을 해소함으로써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생명 유지와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네요. 다른 사람을 안아 주면 우리 몸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은 애정과 유대감의 호르몬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심장병 발병률 저하, 면역력 증가, 우울감 해소와 같은 긍정적인 기능을 합니다. 또한 포옹은 ‘세로토닌’과 ‘도파민’이라는 호르몬도 분비하는데 이들은 진정 효과가 있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듭니다. 이쯤 되면 포옹은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구부러지는 두 팔만 있다면, 남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 허언(虛言)은 아닌 듯싶습니다.

     

요즘 전에 없던 잠버릇이 생겼습니다. 베개를 꼭 안고 자네요. 나이를 먹고 혼자 감당해야 할 짐이 많아지면서 외로움을 느끼게 됐나 봅니다. 그래서 혼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베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드는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은 어떤가요? 인생의 풍파에 흔들리는 불안감을 단단히 붙들어 줄 상대가 있나요? 일상의 찬바람 속에서 따뜻한 체온을 전해 줄 사람이 있나요?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가슴으로 이해해 줄 누군가가 있나요? 그렇다면 지금 두 팔을 한껏 벌려 안아 주세요. 두 사람의 우주가 생겨 날 겁니다. 고독과 불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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