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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Jan 31. 2018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희망을 알리는 관계의 노래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멀리하라는 말이 있다. 세상사를 겪다 보면 조심스러운 것, 내려놓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도 소심해지고 부정적인 생각부터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 자신도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가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풀어놓는다면 인생의 빛깔이 더욱 어두운 무채색으로 칠해질 것이 아닌가? 그러니 부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멀리하라는 말은 지당하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얼마 전 딸아이가 뜨거운 물에 다리를 데는 일이 있었다. 처음 당해 보는 불상사에 당황하고 마음이 크게 상해 있을 때, 딸아이가 말했다. “그래도 왼쪽 다리는 말짱해.” 그 한 마디에 불행 중에서도 감사함을 느꼈다.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데, 이만해서 다행이다 하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웃을 수 있었고, 딸아이는 씩씩하게 치료를 받았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루’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존재이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인어 ‘루’는 주변 사람들이 흥겨워서 저절로 춤을 추게 한다. 쇠퇴한 항구마을 히나시. 마을의 청년들은 선어회를 뜨는 일 정도밖에 할 일이 없는 마을. 청춘의 미래도 희망도 없는 곳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도쿄에서 살다가 히나시로 이사를 온 ‘카이’는 어두운 마을의 그늘에 갇힌 듯 마음의 문을 닫고 진학까지 내려놓은 상태다. ‘카이’의 유일한 탈출구는 음악이었는데, 그 음악을 매개로 ‘루’와 만나게 된다. 인어라는 낯선 존재에 마음이 이끌린 ‘카이’는 천진무구한 ‘루’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속 깊은 대화까지 건네는 ‘카이’의 변화는 긍정적인 존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루’의 에너지는 히나시 마을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을의 미래를 위해 등롱을 날리고 조상에게 소원을 비는 일밖에 할 수 없었던 히나시 마을 사람들. ‘루’는 그들의 엄숙한 제의의 공간을 신바람 나는 춤판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사건 이후로 히나시는 ‘춤추는 인어’가 있는 명소로 부각하고, 마을 사람들은 관광지 히나시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무기력했던 마을 사람들은 희망을 갖게 된다. 소년 ‘카이’를 넘어 히나시 마을까지 변화하게 만든 긍정의 힘. ‘루’가 전하는 바람직한 관계의 메시지다. 힘들 때일수록 웃고, 같은 얘기도 상대방이 듣기 좋게 말하며, 안 좋은 상황에서도 최대한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가 곁에 많을수록, 그리고 스스로가 그런 존재가 된다면 우리는 희망을 알리는 관계 속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서는 관계에 대한 또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낯선 존재에 다가서는 방법.’ 영화에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할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 메시지는 ‘편견 없이 대상 자체를 평가하라.’는 것이다. 히나시 마을에서는 인어는 재앙을 가져오는 존재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루’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가두어 버린다. 그러면서 마을은 더 큰 위험을 겪게 된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어리석다고 하기 전에 우리들의 관계를 살펴보자. 요즘의 우리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경계부터 하게 된다. 세상에 험한 일들이 넘쳐나니까. 우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하면서.

      

직장에 새로운 사람이 입사한다. 소문이 돈다. ‘전 직장에서 이러저러했대.’ ‘누구 낙하산으로 들어왔대.’ ‘옷차림새부터 요란한 게 이런저런 사람이래.’ 소문은 소문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문은 새로운 사람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선입견으로 굳어진다. 선입견의 장벽 탓에 새로운 사람은 그 자체로 평가받지 못한다. ‘인어는 재앙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오래된 믿음 탓에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린 ‘루’처럼. 알고 보니 ‘루’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끝까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히나시 마을은 어떤 미래를 맞게 되었을까? 우리는 어느 날 찾아온 ‘루’ 같은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희망의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은 아닐까?

     

이처럼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긍정적인 영향력의 힘, 편견 없이 대상 자체를 평가하기’라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영화이다. 이 노래의 맛을 살리기 위해 감독은 여러 가지 그림체를 등장시키고 있다. 마치 필름 영화의 촬영 감독이 장면에 맞게 이미지에 색채와 질감을 더하는 것처럼. 아이들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어 캐릭터들, 군무를 추는 마을 사람들의 둥글둥글한 선 처리, 희망을 잃어버린 소년 ‘카이’의 서정적인 모습 등은 한 편의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이미지의 성찬이다. 20여 년 가까이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해 온 베테랑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루’의 노래와 춤 덕분인지, 영화가 전하는 관계의 메시지 덕분인지 입꼬리는 귀에 걸리고 두 발은 어색한 스텝을 밟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이런 체험만으로도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혐오로 가득 차 우울해진 세상을 벗어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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