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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틀 오퍼레이션

스타일리시한 감독이 역사를 재단하는 법

by 박재우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는 잘 차려입은 갱스터를 닮았다. 매끈한 스타일, 재치 있는 입담, 그리고 폭력마저도 멋으로 승화시키는 특유의 자신감. 그의 연출 스타일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관객들은 ‘가이 리치 영화’라는 말만 들어도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안다. 그의 최신작 <언젠틀 오퍼레이션> 역시 이 브랜드의 연장선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했던 비밀 특수부대의 창설을 다룬 이 영화는 묵직한 역사적 사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단해 한 벌의 맞춤 정장처럼 선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역사는 상당 부분 잘려 나가고 새로운 원단이 덧대어진다. 영화의 근간이 된 ‘포스트마스터 작전’은 단 한 발의 총성이나 사상자 없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끝난 대담하고 은밀한 기만 작전이었다. 그러나 가이 리치의 스크린 속에서 이 작전은 수백 명의 나치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거대한 살육 파티로 변모한다. 또한 실제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여성 요원 마조리 스튜어트(에이사 곤살레스 분)는 나치 지휘관을 유혹하는 관능적인 스파이로 전면에 부상한다.


이러한 극적인 각색은 가이 리치라는 흥행 감독이 자신만의 흥행 공식인 ‘스타일리시한 폭력’과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코드를 역사에 녹여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역사적 진실이 품고 있던 조용한 긴장감 대신 눈을 사로잡는 폭력의 미학과 역사에 없던 ‘팜므파탈’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흥행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역사 영화라기보다는 역사를 무대로 한 ‘가이 리치표 장르’의 또 다른 작품에 가깝다.



파티 같은 살상이 주는 카타르시스


가이 리치 영화의 핵심 동력 중 하나는 폭력을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하는 데 있다. 그의 영화에서 폭력은 잔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경쾌한 음악과 빠른 편집, 재치 있는 대사와 어우러져 하나의 볼거리로 승화된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이러한 연출 방식의 정점에 있다.


실제 포스트마스터 작전의 핵심은 ‘신사답지 못한’ 기만술과 첩보전에 있었다. 중립국 영토에서 벌어진 작전이었기에 발각될 경우 엄청난 외교적 파장을 낳을 수 있었다. 따라서 작전의 성공은 얼마나 조용하고 흔적 없이 임무를 완수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 모두를 버렸다. 리치 감독은 실제 작전의 조용한 긴장감 대신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드는 시각적 쾌감을 택한다. 앨런 리치슨이 연기한 앤더스 라센은 활과 화살, 도끼로 나치를 ‘예술적으로 학살’하며 헨리 카빌의 거스 마치필립스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기관총으로 적들을 쓸어 버린다.


이는 감독의 의도적인 선택이다. 현대 관객들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 문제나 개인이 맞서기 어려운 거대한 불의 앞에서 무력감과 피로를 느낀다. 영화는 이러한 사회적 피로감을 ‘파티 같은 살상’으로 해소하고 있다. 나치는 제거되어야 할 명확한 악으로 규정되고 주인공들의 압도적인 능력은 관객에게 죄책감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현실의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순하고 명쾌한 폭력적 해결책을 갈망하는 심리가 스크린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는 셈이다.



존재하지 않던 팜므파탈의 탄생


폭력이 남성 캐릭터들의 영역이라면 영화의 또 다른 흥행 요소는 마조리 스튜어트에게 부여된 ‘매력’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실제 마조리 스튜어트는 포스트마스터 작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영화는 그녀를 작전의 핵심 인물로 끌어들여 나치 지휘관 하인리히 뤼르(틸 슈바이거 분)를 유혹하고 정보를 빼내는 임무를 부여한다.


에이사 곤살레스는 비단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칼날처럼 날카로운 연기로 매혹적인 스파이 캐릭터를 완성했지만 그녀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남성들의 작전을 보조하기 위해 성적 매력을 이용하는 데 머문다. 그녀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남성 악당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안 남자들은 밖에서 총을 쏘고 배를 폭파시킨다.


이처럼 역사에 없던 ‘관능적인 여성 스파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상업적인 계산의 결과다. 땀과 피로 가득한 남성 중심의 전쟁 영화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은 장르의 오랜 흥행 공식 중 하나다. 그녀의 존재는 시각적 즐거움을 더하고 삭막한 이야기에 로맨스와 성적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가이 리치 감독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의 역할을 창조하고 부풀림으로써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또 다른 흥행 요소를 영화에 능숙하게 배치했다. 결국 역사는 상업 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위해 손쉽게 각색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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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해결사들의 등장


최근 액션 영화의 ‘압도적 영웅’들은 <이퀄라이저>의 로버트 맥콜이나 <존 윅>의 존 윅처럼 주로 ‘강하고 과묵한 타입’으로 그려진다. 이들의 침묵은 고독한 정의의 집행자라는 비장함을 더하며 시스템의 실패를 홀로 바로잡는 개인의 무게감을 상징한다.


하지만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영웅들은 이 공식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과묵하기는커녕 시종일관 재치 있는 농담과 수다를 멈추지 않는다. 이는 가이 리치 감독의 스타일이 제대로 투사된 것이다. 그의 영화는 빠른 속도의 대사와 인물 간의 유쾌한 만담으로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영화의 톤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주인공들의 수다스러움과 쾌활함은 나치를 학살하는 행위를 심각한 임무가 아닌 즐거운 ‘놀이’나 ‘게임’처럼 보이게 만든다. 관객은 고뇌에 찬 영웅의 무거운 복수극 대신 유능하고 유쾌한 악동들이 벌이는 화려한 소탕 작전을 즐기게 된다. 즉 이 영화는 ‘고독한 해결사’가 아닌 ‘유쾌한 해결사들’의 이야기이며 이러한 설정은 폭력의 잔혹함을 희석시키고 오락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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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이 힘을 잃는 이유


여기서 제기되는 궁금증 하나. <언젠틀 오퍼레이션>에서 비판받는 빠른 편집, 재치 있는 대사, 양식화된 폭력 등의 기법들은 왜 그의 초기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에서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을까? 그 차이는 스타일과 서사의 ‘결합 방식’에 있다.


초기작들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무능하고, 절박하며,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혼돈에 휩쓸리는 언더독들이었다. 그들의 어설픈 계획은 연쇄적인 실수를 낳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로 이어졌다. 당시 가이 리치 감독의 현란한 스타일은 바로 이 ‘혼돈’과 ‘절박함’을 표현하는 완벽한 영화적 언어였다. 빠른 컷과 속사포 같은 대사는 인물들의 내면적 공황 상태를, 복잡하게 얽힌 플롯은 그들이 처한 통제 불능의 상황을 그대로 시각화했다. 스타일이 서사의 본질과 다름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주인공들은 정반대다. 그들은 초인적으로 유능하고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적의 해결사들이다. 임무의 성공이 보장된 이들에게 실패의 긴장감이나 절박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과거의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하자 스타일은 서사를 표현하는 도구가 아닌 공허한 장식으로 전락한다. 한때 혼돈을 그리던 역동적인 편집은 이제 예측 가능한 승리를 포장하는 역할에 그치고 절박함에서 비롯되던 재치는 단순한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독창적인 작가주의 스타일이 안전한 상업적 ‘공식’으로 변모한 것이다.



관객의 환호와 평단의 냉정한 시선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가이 리치 감독이 현대 액션 영화의 흥행 문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는 자신의 초기작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서사와 스타일의 긴밀한 결합’ 대신 관객에게 즉각적인 쾌감을 선사하는 안전한 공식을 택했다. 명확한 악을 향한 카타르시스,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유쾌한 톤. 이는 그의 스타일이 독창성에서 예측 가능성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과 평단의 흥미로운 시각차가 발생한다.


관객들은 이러한 공식에 열광한다. 복잡한 현실의 문제에서 벗어나 유능하고 매력적인 주인공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명쾌한 권력 판타지는 더할 나위 없는 오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높은 관객 평점과 긍정적인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에 평단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그들은 지나치게 강력한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의 부재, 깊이 없는 캐릭터, 그리고 한때 신선했던 스타일의 안일한 반복을 지적한다. 스타일은 있지만 그 스타일을 정당화할 서사적 깊이나 독창성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의 관객이 액션 영화에 기대하는 것은 복잡한 고뇌의 과정인가, 아니면 화려하고 명쾌한 해결의 결과인가? 가이 리치 감독은 명백히 후자를 택했고 관객의 뜨거운 반응은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평단의 냉정한 시선과 관객의 뜨거운 환호, 그 사이에서 당신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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