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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탈춤, 신념의 비극

굿뉴스

by 박재우

“쉬이- 양반 나오신다!”


채찍을 든 광대 ‘말뚝이’가 외치면 시끄럽던 장터는 순간 숨을 죽인다. 곧이어 그는 “개잘량이라는 ‘양’ 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 자 쓰는 양반”이라며 권위의 상징을 한순간에 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


이 거친 풍자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양반의 권위가 백성의 삶을 짓누르던 엄혹한 시절, 민초들은 현실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대신 의도적인 익살과 과장, 조롱이라는 ‘탈춤’의 형식을 빌려 그 모순을 꿰뚫었다. 변성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바로 이 풍자의 정신을 1970년 군사 독재라는 또 다른 엄혹한 시대의 한복판으로 소환한다.



무대 위 설계자, 현대판 ‘말뚝이’


영화의 서사는 ‘아무개(설경구 분)’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통해 전개된다. 그는 공식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사건의 판을 짜고 관객에게 해설하는 절대적인 존재다. 그의 역할은 봉산탈춤의 말뚝이와 놀랍도록 닮았다.


말뚝이가 “쉬이-”를 외치며 극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관객의 주의를 환기하듯 아무개는 느닷없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 “이 소동에 개입하지 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라”는 그의 선언은 관객을 혼란스러운 역사의 목격자이자 진실이 조작되는 과정의 공범으로 끌어들인다. 말뚝이가 양반의 하인이면서도 교묘한 언어유희로 양반을 조롱하는 것처럼 아무개 역시 권력의 하수인으로 움직이지만 그들의 무능과 위선을 가장 효과적으로 폭로하며 판을 뒤흔든다.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 배우에게 “다른 인물들과 섞이지 말고, 떠 있으라”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는 아무개가 단순한 극 중 인물이 아니라 말뚝이처럼 극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상황을 해설하고 풍자하는 이질적인 존재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의 구부정한 자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옷차림은 권력자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는 현대판 광대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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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이름의 ‘양반’들


말뚝이의 조롱 대상이 허위와 무능으로 가득 찬 양반 계층이었다면 아무개가 상대하는 것은 1970년대의 권력자들이다. 영화의 진짜 칼날은 비행기를 납치한 적군파가 아니라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나선 각국의 관료들을 향한다.


사건 초기, 일본 관료들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 뻔한 대책들을 논의하며 우왕좌왕하는 무능함을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은 한국, 일본, 미국 관료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벌이는 ‘폭탄 돌리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가관이다.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은 유치한 욕망에 사로잡힌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 분)과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청와대 비서실장(박영규 분), 숙취에 시달리는 대통령(김종수 분)과 의전에만 신경 쓰는 영부인(전도연 분)까지. 이들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오직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이익만을 계산하는 현대판 양반들의 군상이다. 아무개는 ‘김포공항 평양 위장 작전’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를 설계하고 이 모든 권력자들이 그 위에서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스스로 증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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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을 쓰지 않은 자, 혹은 쓰기를 거부한 자


하지만 이 거대한 탈춤판에서 모두가 연극임을 알고 제 역할을 수행할 때 유일하게 이것을 실제로 믿는 자가 있다. 바로 엘리트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 분)’이다.


그는 ‘탈을 쓰지 못한 자’라기보다 ‘탈을 쓰기를 거부하는 자’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인 그는 출세에 대한 야망과 군인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광대(아무개)와 양반(권력자)들이 부조리한 연극에 동참하며 정치적 이득과 책임 회피를 저울질할 때 서고명은 유일하게 원칙과 신념, 그리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굿뉴스’를 지키려 고뇌한다.


아무개가 이 연극의 냉소적인 무대 감독이라면 서고명은 자신이 연극 무대 위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진심을 다해 신념을 연기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의 시선을 교차시키며 냉소적인 광대의 시선과 원칙주의자의 신념이 어떻게 충돌하고 부서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결국 서고명의 영웅적인 활약은 정치적 계산에 따라 공식 역사에서 깨끗이 지워지고 그는 작전의 완벽한 ‘희생양’이 된다.


그러나 그의 신념이 완전히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이 모든 판을 짜고 냉소적으로 관망하던 아무개는 그의 진심에 깊이 감명받아 훗날 자신의 이름을 ‘최고명’으로 짓는다. 공식적인 기록은 그를 지웠지만 탈을 쓰기를 거부했던 한 인간의 떳떳함은 가장 냉소적인 방관자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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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의 판, 스타일리시한 풍자극


변성현 감독은 특유의 감각적이고 속도감 있는 연출로 이 현대적인 ‘탈춤판’을 완성한다. 그는 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의 모든 장기를 집대성한 대표작이라 칭할 만큼 모든 연출적 실험을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빠른 호흡으로 장면을 넘기는 리드미컬한 편집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음악의 개입, 서로 다른 두 장면을 예고 없이 충돌시켜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편집 기법인 쇼크 컷(Shock Cut), 인물들의 환상을 보여주는 판타지 시퀀스 등 현란한 장치들을 총동원하여 관객을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극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특히 그는 권력 관계의 변화를 계단의 높낮이로 표현하는 등 연극적인 무대 연출을 통해 정치란 곧 연기라는 영화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스타일은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함이 아니다. 감독은 “사는 게 블랙코미디 같다”라고 말하며 현실의 부조리함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장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상식과 비상식이 전복되는 세계를 표현하기에 그의 스타일은 가장 적절하고 필연적인 형식인 셈이다.



‘굿뉴스’, 누구를 위한 복음인가


영화의 제목 ‘굿뉴스’는 기독교에서 ‘복음’을 의미하는 단어다. 절대적 진리를 뜻하는 이 단어는 진실이 권력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편집되고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의 내용과 맞물려 섬뜩한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영화 <굿뉴스>는 결국 한바탕의 소동극이 끝난 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광대와 양반들이 벌인 이 미친 탈춤판에서 유일하게 탈을 쓰기를 거부했던 서고명의 신념은 어디로 갔나? 공식적인 기록은 그의 영웅적인 활약을 깨끗이 지워버렸고 영화는 모든 소동이 끝난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서고명의 신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 모든 판을 짜고 냉소적으로 관망하던 광대 아무개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공식적인 역사는 그를 지웠지만 탈을 쓰기를 거부했던 한 인간의 떳떳함은 가장 냉소적인 방관자를 변화시키는 진짜 ‘굿뉴스(복음)’가 된 것이다. <굿뉴스>는 냉소적인 광대들의 세계에서 ‘탈 쓰기를 거부한 자’의 비극적인 최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의 진심이 남기는 위대한 유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21세기판 탈춤의 가장 현대적인 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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