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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May 04. 2023

'보은의 동산'으로 산책 가요

[대박이와 함께 하는 일상 1]

보은의 동산
보은의 동산에서 탐구생활을 하는 대박이

대부도에서 3년 정도 살다가 천안시 목천읍으로 이사했습니다. 대부도에서는 전원주택에서 살았는데, 목천에서는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대박이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지요. 대박이가 대형견이라 아파트에서 답답해 하면 어쩌나 해서. 하지만 다행스럽게 대박이는 잘 적응하고 있어요. 강형욱 훈련사가 그랬던가요? 개들은 어디에 있든 주인과 함께 있는 걸 가장 행복해 한다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대박이는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대부도는 운전면허가 없는 저 같은 뚜벅이에게는 많이 불편했어요. 전원주택 단지라 수퍼마켓 같은 편의시설이 없어서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하거든요. 그런데 목천읍은 걸어서 몇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행정복지센터, 보건소, 하나로마트, 우체국 등이 있어서 참 좋았어요. 어쩌면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살다 온 사람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지만, 편의시설이 부족한 곳에서 살다온 저에게는 전혀 불편하지 않답니다.


목천으로 이사한 지 5월로 딱 1년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적응하기 위한 워밍업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낯설었지만, 사계절이 지나가면서 거의 완전하게 적응한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남편도, 대박이도. 


처음에는 아파트에서 대형견을 키운다고 이웃 주민들에게 눈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떻게 개를 집에서 키울 수 있느냐는 분위기가 강했거든요. 게다가 대박이는 대형견에 검은 색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무서워 했지요. 실제로는 온순하고 겁이 많은 아이인데, 외모만 보면 무서워 보이긴 하지요. 저도 처음 대박이를 봤을 때는 그랬거든요. 그래서 입마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견종인데 입마개를 합니다.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거든요. 대박이는 입마개를 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어쩌겠어요. 

밭에서 일하는 아빠를 기다리는 대박이

"대박아,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사람들이 니가 무섭대. 그러니 어쩌겠어. 무서워 보이는 니가 참아야지."


외출할 때마다 입마개를 씌우려고 하면 머리를 이리저리 빼면서 거부하는 대박이에게 제가 하는 말이지요. 처음에는 입마개 씌우는 것이 서툴렀는데,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대박이가 머리를 이리저리 빼거나 말거나 단숨에 씌운답니다. 가끔은 입마개 씌운 게 싫다고 삐져서 현관문을 열어도 꼼짝도 안 하고 버틸 때가 있었어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위로 쳐들고 말이지요. 그래봤자 소용 없지요. 저보다 대박이가 산책을 더 좋아하니 조금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갑니다. 에이 산책이나 가자, 이러는 것처럼 말이지요.


목천으로 이사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니 동네 주민들이 대박이가 엄청나게 순한 아이라는 걸 다들 아시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 들었어요. 그래서 너무나 순하고 착하다는 말씀을 하시지요. 가끔은 만져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어요. 아이들도 그러고요. 가끔은 너무 멋있게 생겼다고 감탄하시는 분도 있어요. 대박이의 털이 반짝반짝 윤이 나거든요. 


다행히 대박이는 잘 짖지 않아요. 처음 대박이를 만났을 때 성대수술을 했다고 착각했을 만큼 대박이는 잘 짖지 않았지요. 그래서 우렁찬 목소리로 짖었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지요. 


대박이는 집에서도 절대로 짖지 않기 때문에 짖는 것 때문에 이웃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좋답니다. 처음에 이사왔을 때는 낯선 사람이 오면 가볍게 컹 소리를 냈는데, 지금은 그것도 하지 않아요. 그냥 현관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지요. 얼마나 다행인지요. 


대박이는 배변을 집에서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대변뿐만 아니라 소변도. 그래서 최소한 하루에 세 번은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이렇게 말이지요. 아침과 밤산책은 남편이 하지만 남편이 출근한 낮에는 제가 산책을 시키지요. 대박이의 원활한 배변활동을 위해. 


처음 이사왔을 때는 대박이와 산책하기 좋은 길을 찾느라 엄청나게 집 근처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사람들과 덜 마주치면서 자연이 깃들어 있는 곳을 말이지요. 그럴 만한 곳이 몇 군데 있더라고요. 그 가운데 하나가 '보은의 동산'입니다. 독립기념관 정문 앞에 있는데, 독립기념관을 뒤로 하면 왼쪽이지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외국인을 위해 조성된 곳이지요. 

보은의 동산 산책길

이곳은 조경이 참으로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은정이라는 정자도 있어요. 이른 봄에 산수유를 비롯해서 개나리, 진달래 등을 시작으로 동산 전체에 민들레, 제비꽃, 애기똥풀 등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꿋꿋하게 서 있는 많은 나무들은 이 곳이 참으로 좋은 휴식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즘은 철쭉이 군락을 이뤄서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화가 피어 송화가루가 마치 황사처럼 날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봄에 이곳에서 봄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답니다. 


저는 거의 날마다 이곳으로 산책을 갑니다. 가을에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고, 겨울에는 눈으로 가득 덮여 겨울의 정취를 한껏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산책을 하기도, 앉아서 즐기기도 좋은 곳이 바로 '보은의 동산'이 아닐까 합니다.

보은정은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지요. 사진으로 보니 더 멋있네요
재두루미 같기는 한데, 맞는 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보은의 동산' 연못가에서 재두루미처럼 보이는 새를 보았지요. 이 연못에 물고기가 제법 있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래서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조금씩 커지는 연잎 사이를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먹이가 있나, 없나 하면서.


보은정을 둘러싼 연못에는 6월 중순 정도부터 연꽃이 피어납니다. 참으로 예쁘지요. 작년에 이사와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집 근처에서 화사하게 피어난 연못을 볼 수 있어서. 그래서 올해도 기대가 됩니다. 


대박이가 아니면 날마다 규칙적으로 산책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떤 날은 귀찮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대박이의 배변활동을 겸한 산책을 거를 수 없어서 억지로 나가기도 하는데, 일단 나가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답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고, 걷는 건 즐거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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