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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Jul 13. 2023

대박이 목욕은 털과의 전쟁이로다

[대박이와 함께 하는 일상]

목욕하고 널브러진 대박이.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대박이와 비 때문에. 그것도 엄청스럽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요즘 비는 물폭탄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이 쏟아진다. 기후변화 때문일 것이다. 지구 온난화와 함께 한반도는 아열대화가 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운 상황을 예견하는 이들이 많다. 이러다가 한여름의 기온이 40도 이상을 오르내리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도 습도가 높아 푹푹 찌는데, 그렇게 되면 우찌 사노. 벌써부터 걱정이 되지만, 그런 걱정은 아직 닥치기 전이니, 넣어두는 게 현명하겠지.


오전 9시는 대박이 산책시간. 영란언니와 만나 산책을 가기 전에 우산부터 챙겼다. 아무래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서. 비가 쏟아질 때는 산책을 가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산책을 갔을 때 폭우를 만나는 경우는 이따금 있다. 하늘을 보니, 오늘이 그런 날일 것 같았다. 비 오면 나는 우산을 쓰고, 대박이는 비를 쫄딱 맞고. 흐흐. 어찌 보면 무지 불공평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산책하는 대박이에게 우산을 씌울 수 없고, 아직 비가 내리기 전인데 비옷을 입힐 수도 없고(비옷을 입힌 적은 한 번도 없다). 대박이가 비를 맞으면 목욕을 시킬 작정이었다.


실외배변을 고집하는 대박이 덕분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산책을 나가야 하는 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니……. 이러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산책을 나갔다. 갈 때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다가 가로수가 즐비한 길에 들어서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귀가할 때까지 비가 많이 내리지 않기를 바랐건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도로가 젖고 나무들이 젖고 나뭇가지가 젖으면서 멀리서 들리는 새울음 소리도 잦아들었다. 들리는 것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와 빗소리. 비가 내리니 시원하기는 하다. 대신 바짓자락이 젖고 신발이 젖는다. 핸드폰을 넣은 가방도 젖는다.


오늘도 대박이의 실외배변활동은 왕성했다. 똥도 쌌다. 와, 심 봤다! 일단 똥을 싸면 안심이다. 똥을 싸지 않고 귀가하면, 다시 데리고 나가야할 텐데 하면서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산책도 성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빗줄기가 거세졌고, 대박이는 쫄딱 젖었다. 그래도 대박이는 귀가하는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여기저기에 영역표시를 하느라 바빴다. 그래 봤자 소용 없어. 빗물에 죄다 쓸려내려가고 말 걸.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일에 열중하는 대박이.


그렇게 무사히 귀가했다. 이제부터는 전쟁에 돌입! 대박이 목욕은 늘 남편 몫이었다. 30킬로그램이 넘는 대형견 목욕은 개가 아무리 순해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남편이 대박이 목욕을 시킨다고 해도, 마무리는 내 몫이었다. 남편이 욕실에서 대박이를 씻기면, 나는 수건으로 대박이 몸을 닦아주고 목욕의 흔적인 개털, 개털, 개털을 치운다.


아, 그놈의 털들. 개를 키우는 것은 끊임없이 빠지는 털과의 전쟁이다. 털갈이를 할 때마다, 그렇지 않은 시기에도 늘 털은 빠진다. 목욕을 시키면 털이 더 많이 빠진다. 뭉텅뭉텅. 그 털을 치우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대박이의 털을 모조리 밀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털 없는 대박이라니, 그건 학대야, 이런 생각으로 꾹 참는다. 털을 미는 순간부터 후회가 시작될 테니까. 대박이가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할 게 분명하므로. 개의 외모를 좌우하는 것은 90퍼센트가 털이다. 이건 진리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오늘은 남편이 출근하고 없으므로, 대박이 목욕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비만 안 왔어도 목욕 독박을 쓰지 않았으리라.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날이 살다보면 꼭 생기게 마련이다. 인간이란 말이지, 아무리 힘든 일도 닥치면 하게 되더라는 얘기.


다행스럽게도 대박이는 목욕할 때 얌전하다. 대박이가 얌전하지 않을 때가 있기는 한가? 이럴 정도로 대박이는 조용하고 순하다. 샴푸 칠을 하고 손으로 벅벅 대박이 몸을 문지르는데 아, 털이 뭉텅뭉텅 빠진다. 검은 털이. 그렇지 않아도 대박이는 요즘 속털을 갈고 있다. 그래서 하루에 거짓말 안 보태고 10번은 청소기를 민다.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털 덕분에. 검은색 털이라서 눈에 잘 보인다. 그래서 다행이긴 하다. 보이지 않으면 개털 천지인데 모를 수도 있잖아.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목욕하는 김에 빗질이나 하자. 빗을 가져다가 빗질을 시작하니 대박이는 시원한지 가만히 있다. 평소에도 빗질을 할 때는 스테일리스 빗을 갖고 와서 "대박아 빗질하자"고 하면 와서 내 앞에 얌전히 엎드린다. 그만큼 대박이는 빗질을 좋아한다.


빗질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겉털은 모조리 젖었는데 속털은 뽀송뽀송한 거라. 아하, 비를 맞아도 속까지 젖는 것은 아니구나. 목욕을 시켜도 속털까지 푹 젖는 것은 아니구나.


아무튼 빗질을 하니 털이 뭉텅뭉텅 빠진다. 목욕탕 바닥은 개털 천지. 그래도 우짜겠노. 빗질 하고 씻겨야지. 아이고 힘들어 죽겠다. 대박아, 너 나중에 나한테 효도할 거야? 꼭 효도해야 돼. 궁시렁거리면서 빗질을 했다.

목욕을 마치고 욕실 밖으로 대박이를 내보낸 뒤, 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었다. 이 과정에서도 털은 빠지고 또 빠진다. 오늘은 빗질을 한 덕분에 덜 빠진 편이다. 욕실 앞 바닥은 개털 천지. 나에게 삶이란 개털과의 전쟁이로다. 이렇게 시를 읊조리고 싶다. 대박이는 수건으로 닦아주는 손길이 좋은지 신났다는 듯이 머리를 수건에 마구 비빈다. 아이구, 이놈아, 가만히 있어. 엄마, 힘들어. 그러거나 말거나 대박이는 목욕이 끝나서 좋은가 보다.


대박이는 목욕이 끝나자 그냥 널브러졌다. 뒤처리는 죄다 내 몫. 털투성이가 된 거실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욕실바닥은 물로 씻어내고. 그러고나니 온몸에서 기운이 쑥 빠진다. 그래도 전쟁은 끝났다! 이제부터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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