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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연 Feb 12. 2018

직장동료,  친구라고 부르기엔 아무래도 미운 사람


사소하게 싫은 몇 개가
마치 장롱 뒤의 먼지처럼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고
그렇게 청소기로 빨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미움이 커진다. 
_ <아무래도 싫은 사람>, 33쪽      


카페 점장이 된지 2년째인 수짱,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있었다. 


"자, 오늘 하루도 열심히!"라고 의식적으로 힘차게 외치며 마음을 다잡아도 떠오르고, "드디어, 퇴근! 맛있는 거나 사먹자"라며 마트에 들러 음식을 고르면서도 떠오르며, "주말만큼은 영화나 보며 잊어볼까"하고 영화를 고르다가도 떠오르는 사람.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좋지 않은 태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지어 우리는 매일 마주하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해야하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래도 싫은 사람 때문에 고민을 하는 수짱.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직장 동료'였다. 


단순한 플롯에 짧은 몇 가지 문장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작가 마스다 미리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아무래도 싫은 직장 동료를 둔 수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것만 와서 가르쳐줘”라며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부르는 동료, 심지어 그는 매번 같은 질문을 하며 수짱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는다. 그의 행동은 얄밉기가 그지 없다. 평소에는 먼저 나서는 일이 절대 없으면서도 징검다리 휴일을 선점하는 일에는 늘 제일 먼저다. 자기 일이 아니면 당연히 나몰라라고, 자기 일이어도 어떻게든 떠넘기며 힘든 상황에서 쏙 빠져나간다. 그런 동료가 수짱에게는 스트레스의 존재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 중에서



직장동료가 얄미워지는 문제는 친구 관계와 달리 좀 복잡하다. 일단 친구 관계처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고, 주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와 맞든 안맞든 어떻게든 부대끼며 지내야한다. 게다가 차라리 동료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험담이라도 실컷하고 화라도 낼텐데 대부분의 문제들이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보니 속 시원이 풀리지 않는 것들이 쌓인다. 


보는 시각에 따라 어쩌면 한번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고, 불평을 하다보면 괜히 내가 소인배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 사람이 하루빨리 다른 팀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 뿐(혹은 그만두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류의 사람들은 회사도 잘 그만두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싫은 사람이 있으면 그 감정이 하루종일, 퇴근 후에도 이어지며 나를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왜 그때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그건 잘못된 것 같다고 바로잡지 않았을까, 왜 그때 그건 당신의 일이라고 말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들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또 이런 아무일도 아닐 수 있는 일에 스트레스 받고 사람을 미워하는 나 자신 때문에 더욱 괴로워진다. 차라리 일이 힘들면 이런 감정 소모전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고생 한번 하고 털어버리면 되는데 사람이 싫어지면 사무실에 있는 1분 1초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지며 퇴근 후에도 다음날 또 마주해야 할 생각에 괴로움이 멈추질 않는다. 


잠 자는 시간 빼면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하고, 한 끼 이상의 식사를 같이 하며,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보다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동료가 스트레스의 존재가 된다면 그것만큼 힘든 경우도 없다. 많은 퇴사 이유 중 '사람'이 있는 건 그만큼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가 크다는 것이다.      



"내 상담자 중에는 남의 부탁을 절대 거절하지 못해서 고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업무와 사소한
잡일부터 시작해서 큰일에 이르기까지 시키는 대로 받아들인 결과, 매일 밤 먹듯 늦게까지 야근을
하게 되었다. 때로는 주말에 상사의 쇼핑까지 동행하였다. 매일매일 상처를 받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했다." 

_ <나는 더 이상 착하게만 살지 않기로 했다> 



실제 직장 동료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하게 싫음과 스트레스를 넘어 어떤 경우에는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다. 30년간 카운슬링을 하고 기업체 등에서 강연을 하는 이와이 도시노리는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관계'로 힘들어 하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그것이 싫다'고 표현하지 못해 마음의 병은 물론 때로는 업무 과중으로 육체적인 고통까지 겪게 되는 경우인데 이는 '직장 동료'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비롯된다. 


친구의 경우는 일단 상하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싫다'는 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은 그렇지 않다. 나이 한 살은 물론 입사일을 달 수까지 계산해 먼저 온 사람이 '선배'라는 위치에 선다. 말이 '동료'이지 사실상 위계질서가 뚜렷한 관계이기에 직급이 같아도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와 연차가 같아도 직급이 낮은 사람이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일단 회사는 문제가 발생하면 윗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보통이고, 위계질서를 유지하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싫다'는 의사표시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그저 친교의 관계가 아닌 '일'이라는 특수한 목표를 가지고, 비자발적으로 모인 이해관계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 마음을 터 놓는 친구 관계로 발전되기 힘들다. 옆 사람이 하지 않으면 내 일이 많아지고, 옆 사람이 승진하면 내가 누락된다. 팀장은 내 옆 사람의 능력만 칭송하고, 같은 목표 아래 일을 하지만 서로가 다른 급여, 다른 조건 속에서 일을 하다보니 상대적 박탈감도 쉽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면 이 사람이 동료인지, 적인지 분간이 가지 않게 되는 상황에 이르른다. 비교와 경쟁, '너가 아니면 나'라는 룰 속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맞닥뜨리는 관계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혼란을 느끼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흔히 직장에서는 일만 해야 한다거나 일터의 공식적이고 피상적인 관계와 삶터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는 별개여야 한다고 여긴다. 맞다. 그럴수록 좋다. 그런데 문제는 둘 사이의 경계를
노동자가 원한 대로 확실하게 그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본가의 지배는
우리가 노동하는 시간뿐 아니라 프라이버시와 놀이, 친교 등 개인적인 삶의 시간에까지 미친다.

_  <일터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191쪽  


직장 생활 10년 차인 내게도 아직 어려운 것이 바로 동료와의 관계이다. 동지의식을 느끼다가도, 친구 이상으로 편하고 좋다가도 복잡한 일을 부탁 해오거나, 팀장 앞에서 내 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내면 화가 난다. 그러다보면 그들은 편하고 쉬운 일만, 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비교와 박탈감이 반복되다보면 그들의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까지 거슬리고 잦은 자리비움까지 신경쓰이게 된다. 그것이 나한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동안 인간 관계는 늘 솔직해야하고, 내가 한번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그 관계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이 관계 역시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 맺기이고, 앞으로 몇 년(혹은 몇 십년 간) 직장 생활을 하려면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이니까 말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적절한 진심과 거짓말을 섞어 보여주는 것. 그런 관계도 관계의 일종임을 인정한다면 그 안에서 상처받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회사라는 조직을 떠나서도 친구가 되어줄 사람을 만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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