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젊은 여자

by 일상세팅러


직장생활을 또래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 나는 회사에서 '어린애'였다. 실제로 그 해 들어온 신규들 중 가장 어렸고 다양한 연령대가 있는 곳이다 보니 회사사람들이 나를 어리게 보는 건 당연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어떤(여초)집단에서 막내라는 게 좋았다. 그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맏이 역할을 자주 맡아왔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고 귀여움 받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n 년이 지나 회사에서 여전히 어린 축에 속하긴 하지만 마냥 어리다고 할 수 없는 30대가 되었다. 이제 어른으로서 내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시기가 되니 나의 어린 이미지를 조금씩 탈피해야 한다는 묘한 강박이 생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동갑인 회사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문제점과 해결책을 말해주었다.


"일단 그 롱패딩 벗고 안경도 벗고... 너 머리스타일도 그렇고.. 앞머리 있는 것도.."


줄줄이 말하는 포인트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서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패션보다는 실용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내가 편한 옷을 입는 게 우선이고(겨울에는 롱패딩, 여름에는 티셔츠가 내 교복이다) 렌즈는 눈이 뻑뻑해서 평생 안경을 쓰고 있다. 머리도 내 눈에 예뻐 보이고 머리 감고 말리는 수고가 덜한 단발을 몇 년째 유지하고 있다. 결국 친구는 사람을 어려 보이게 하는 요소들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내 이미지가 더 어려 보인다는 명확한 답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정곡을 찌른 한 마디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잖아. 표정이나 말투 그런 거. 그런 게 너무 어려 보이는 건가 해서. "

"맞아. 말투만 들어도 어린 게 티가 나. 넌 전화할 때 전형적인 친절한 젊은 여자 말투야. 뭔지 알지?"


너무 잘 알아서 괴로웠다. 나 스스로도 전화할 때 과하게 친절하고 조심스러운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혹시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한껏 다정하고 친절하게 쿠션어를 깔아가는 말투. 여성에게 요구되는 과한 친절함을 체화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말투. '친절한 젊은 남자'의 말투라고 했다면 단박에 떠오르지 않았을 말투.


나는 잘 웃는 편이다. 어떤 감정을 드러낼 때 웃는 게 아니라 항상 웃는다. 거의 모든 말에 끝에는 웃음이 붙는다. 나의 이 웃음이 일종의 방어막임을 스스로도 안다. 상대에게 적대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만드는 '쿠션표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내 의지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만성적인 웃음과 제스처는 나의 무해함을 선제적으로 전달한다. 나는 당신을 공격할 생각이 없어요. 당신의 기분을 나쁘게 할 의도가 없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젊은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상대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무해함'의 증명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그 고민을 할 때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과한) 사회적 친절함을 체화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친절함을 통해 나는 사람들의 호의를 얻지만 동시에 젊은 여성의 과한 친절함이 당연시 되는 문화를 재생산하고 있다는 은은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업 자체가 타인의 기분을 살펴야 하기도 하고, 타고난 성정이 무르고 내 탓하는 습관이 있어 저자세가 디폴트인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이 이유를 떠나서도 사회가 남자의 불친절함보다 여자의 불친절함에 더 각박하고 날카로운 것을 알기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젊은 여자들이 친절해질 수밖에 없다는 건 안다.(이게 근본적인 문제 이긴 하다.) 사회에서 친절은 세상을 좀 더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이기에 타인에 대한 친절하지 않겠다는 말도 아니다. 또 나는 과몰입을 잘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공감이 잘 형성되어서 진심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친절해질 때가 대부분이다. 다만 내가 지금 고민하는 친절은 '증명'을 위한 과한 친절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싶고 나도 존중받고 싶다. 존중받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는 성숙하고 때로는 단호하더라도 필요한 말은 할 줄 아는 어른이다. 친구는 흘러가듯 간단히 말했지만 그의 말에는 내 고민에 대한 정확한 처방을 담겨 있다. 첫 번째, 스타일을 성숙하게 바꿔라. 두 번째 '전형적인 친절한 젊은 여자 말투'를 버려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부분적으로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그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니까. 공적인 공간에서 존중받고 싶다면 티셔츠보다는 셔츠를, 롱패딩보다는 코트를 입는 룰(예의)을 지키는 게 맞을 테니까.


어려운 건 '친절한 말투'라는 무형의 기준이다. 어디까지가 젊은 여자에게 요구되는 무해함을 증명하는 친절인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서의 친절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업무상 똑같이 거절을 해도 여자가 한 거절에는 화를 내지만 남자에게는 화를 내지 못해 여자직원 뒤에 남자직원이 서있었다는 동료직원의 말을 떠올리면 (나를 포함한) 젊은 여성들의 친절한 말투는 본능적인 생존수단일 수도. 문제는 나는 할 말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면 앞에서 말한 두 친절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증명'의 친절을 수행하지 않았을 때 돌아온 비난을 견딜 수 있는 깡도 있어야 한다.


나는 '친절한' 젊은 여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친절한 '젊은 여자'의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다. 그게 이리도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는 어려운 일이라니!


작가의 이전글나를 지키기 위해 낯선 독서모임에 들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