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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 planEAT 아워플래닛 Sep 13. 2021

나의 비거닝(‘Vegan’ing) 이야기

part.1


‘잘 먹고 잘 사는 것’ 은 지역과 문화를 초월한 현대인의 주된 관심사이자 궁극적인 삶의 목표입니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이 주제는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끔 했지요.  

지속 가능한 삶의 실천과 맞닿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비거니즘(veganism)과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입니다.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추구하면서 물건과 식재료, 음식 등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가능하면 ‘0(제로)’에 가깝게 하고자 하는 생활방식을 말하는 건데요. 최근에는 가치 소비의 확산과 함께 비건(vegan)이 대표적인 소비 트렌드의 하나가 되었고 그에 따라 채식을 지향하는 인구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저는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비건의 원래 의미인 엄격한 채식을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동물성 식품을 포함한 동물 기반의 제품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빈도를 조금씩 높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이런 상태를 현재 진행 중인 비건이라는 의미에서 ‘비거닝(veganing)’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완성형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저는 작년에 처음으로 비건을 체험해 보았습니다. 첫 한 달의 체험이 끝난 뒤에 격월로 두 번을 더해서 총 석 달 동안 채식 생활을 했습니다. 그전까지 저에게는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강한 정신력을 소유했거나 높은 수양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비건을 체험해보고 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제가 비건을 체험하면서 겪었던 일이나 느꼈던 것들이 지금 비건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과 채식의 문턱 앞에서 망설이고 계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글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직업이 요리사인 저는 식재료로써의 생물들을 다룰 기회가 많습니다.

요리학교의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았었는데요. 손을 통해 전달되는 물고기의 떨림과 대가리를 자를 때의 소리와 같은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도마 위에 흐르는 붉은 피가 제 안에 흐르는 피의 색깔과 같다는 사실도 새삼 가슴에 와닿았지요. 그 이후에도 일하면서 종종 활어를 잡을 일이 생겼지만 생선은 신속하게 처리하여 좋은 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식재료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습니다. 


바닷가재나 문어를 산 채로 손질하거나 그대로 끓는 물에 넣는 일을 매일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사흘 넘게 냉장고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바닷가재나 피부의 질감과 색이 수시로 변하는 문어를 보면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제가 하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업무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소리를 낼 줄 알아서 고통을 표현한다면 어떨지 지금도 가끔 상상해봅니다.  


**  최근에는 갑각류, 두족류와 같은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와 유럽권에서는 무척추동물을 인도적으로 요리해야 한다는 법안을 시행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습니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0714001034



주방에서 10년 넘게 원물의 상태로 생물들을 경험했지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은 오히려 둔감해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취미 -스쿠버다이빙-를 가지게 되면서 제가 주방에서 접하던 물고기들도 원래 광활한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던 야생동물들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전후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저를 주방 밖의 세상으로 이끌었습니다.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자연에 가까운 방법으로 동물을 키우는 소수의 농장들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동물들을 만나고 정성껏 그들을 기르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는 길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운동화 끈을 노리는 닭들, 부드럽고 따뜻한 소 혀가 손바닥에 닿는 느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새끼돼지의 눈빛 같은 것들은 오랫동안 주방에만 갇혀 일하던 저에게 너무나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소는 낯을 가리면서도 호기심이 있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다정한 동물이라는 것, 우리 안에서도 잠자는 곳, 배설하는 곳, 밥 먹는 곳의 구분을 명확하게 한다는 돼지의 습성, 개체마다 성격도 다르고 먹는 것에 대한 취향도 확실하다는 염소처럼 목부님들을 통해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약 2억 마리의 가축이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만날 일이 전무하고, 도시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모두 갇혀 있기 때문에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돼지농장을 방문하고자 해도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쉽게 방문할 수 없습니다.)

역사상 가장 고기를 많이 먹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고기를 제공하는 동물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아이러니인 셈이지요. 그런 점에서 제가 가축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자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많은 동물을 키웠습니다. 자라는 동안 곁에는 항상 개가 있었고, 닭이 될 때까지 기른 병아리부터 햄스터, 거북이, 오리, 개구리에 이르기까지 안 키워본 동물이 없을 정도였죠. 그래서 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기억은 그들에 대한 조건 없는 애정과 사랑, 저와 저희 가족에게 재롱을 떨고 귀여움을 차지했던 ‘이름 있는’ 동물들과의 일화들로 가득합니다.

농장에서 동물들을 만난 일은 저에게 그런 어린 시절의 감정을 상기시켰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반려동물을 통해 경험해보았을 유대감, 사랑, 풍부한 교감과 같은 감정의 일부가 농장의 동물들에게 투영되었던 것입니다.   

그전까지 주방에서 접하는 고기는 종이박스나 스티로폼 통에 담긴 붉은 덩어리 형태의 식재료에 불과했지만 그들과의 만남 이후로는 그 식재료에서 생명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처럼 감정과 지능을 가진 개체의 일부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지요. 



먹거리를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대부분의 가축들이 얼마나 참혹하고 비윤리적인 환경에서 길러지는지, 그리고 축산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들에 대해서도 서서히 알게 되었습니다.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대부분 환경, 동물권, 건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위에서 말씀드린 이야기에 덧붙여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는 콜레스테롤과 혈압의 수치도 신경 쓰이던 차였기 때문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비건 체험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앞선 이야기들을 경험한 개인으로서, 또한 요리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도 거기에 조금 더해졌구요.  

그렇게 저는 저의 식탁을 채식으로 바꿔보기로 결심하고 비건 체험을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으레 “거의 풀만 먹겠구나.” 또는 “그럼 뭐 먹고 사니.” 같은 말들이 따라붙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제가 채식을 하는 동안 “고기 안 먹고 힘을 못써서 어쩌니” 라며 늘 걱정하셨으니까요. 

사실 채식의 유형은 모든 음식을 식물 기반의 식품으로부터 취하는 엄격한 채식주의인 ‘비건(vegan)’부터 채식을 지향하지만 때에 따라 육식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까지 다양합니다. 

채식도 본인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저의 채식 생활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1) 채식을 원칙으로 하되 100%에 집착하는 스트레스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는다. 

2) 나의 채식으로 인해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하며 경우에 따라 타협을 본다. 

3) 이미 소비된 재료, 차려진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감사히 먹는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고기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생활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신경이 쓰였던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무엇을 먹을까’인 만큼 식사는 만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제 달라진 식습관으로 인해 상대방을 곤란하거나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비건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높아진 터라 제가 만난 사람들은 주로 상황을 이해하거나 때로는 지지해주기도 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아서 이해를 돕기 위해 생각보다 길게 설명을 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자리에서는 그냥 말없이 장소의 상황에 맞추어 식사를 해결했구요. 


어쩌다가 제 몫으로 주어진 음식에 먹지 않기로 한 재료가 들어가 있는 -예를 들어 자율이 아닌 배식 같은 -경우에는 그전과 다름없이 먹었습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죄를 저지르는 일이니까요. 

가능하면 100% 비건이 좋겠지만 애초부터 그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100이라는 숫자에 집착해서 완벽한 식사를 찾아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목표에 도전했다는 자책과 좌절을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는, ‘계속하고 싶다’는 희망을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체험한 채식 생활의 수위는 대략 90%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격한 비건식을 실천하는 분들에 비해 음식의 선택지도 많았습니다. 

마요네즈나 크림이 들어간 것들을 제외하고는 샐러드 드레싱은 꼼꼼하게 따지지 않았고, 콩비지나 청국장에 든 고기는 먹지 않았지만 그것이 멸치 육수로 만든 것인지 아닌지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젓갈을 먹는 것을 피하기 위해 비건 김치를 따로 사 먹는 수고도 않았구요. 

그런 적정선에서의 타협들 덕분에 저는 큰 번뇌와 갈등 없이 비교적 평화롭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적응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대놓고 멸치국물인 잔치국수를 주문했다가 취소하기도 하고, 반찬으로 나온 진미채를 아무 생각 없이 먹다가 도로 뱉은 적도 있었습니다.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금방 배가 꺼지고 헛헛한 느낌이 들곤 해서 초콜릿이나 방울토마토 같은 것들을 챙겨 먹으며 간식이나 야식의 빈도는 되려 늘었고, 음식을 주문할 때 소소한 부탁이나 요구사항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주로 잡채밥에서 고기를 빼 달라거나, 비빔밥에 달걀프라이를 빼 달라거나, 라테의 우유를 두유로 바꿔달라고 하는 것들이었지요.   



술이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저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안주를 찾아야 하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지만 가짓수가 줄었을 뿐 그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김치전, 감자전, 도토리묵무침이 질리는 날에는 콩나물무침 같은 반찬을 안주 삼거나 기본찬으로 놓이는 오이와 고추장으로도 충분히 술자리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는 몰라도 한식집에서는 큰 불편 없이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지금처럼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식단에 가까울수록 식탁에서 빼야 하는 것들이 줄었습니다. 나물반찬에 호박잎, 고추절임, 오이지, 열무김치, 콩자반, 쌈채소… 

굳이 비건을 위한 차림이 아닌 평소 식사에서 고기반찬만 제외하면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전처럼 자유로울 수는 없었고 그에 따른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특히 디저트 종류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식후의 허전함을 달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카페 선반에 놓인 빵들은 거의 유제품이나 달걀이 들어가 있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고 일반적인 과자들도 같은 이유로 거의 먹을 게 없었습니다. 대신 평소보다 다양한 떡을 먹게 되었지요. 


비건 체험을 시작한 이후로 달라진 일상의 변화 중 하나는 집에서 요리하는 횟수가 많아진 것이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또는 호기심에 만들어 보게 되는 채식요리 때문에도 그렇지만 요리는 주로 밖에서 먹을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매번 비건식에 맞는 메뉴를 찾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사람들과 식사를 하러 나가도 먹고 싶은 것들이 없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맛집 탐방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여러 나라 음식들을 먹으러 다니면서 종교의 문화의 영향으로 채식메뉴를 갖추고 있는 인도 음식점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중국분들이 가시는 중식집서 갖가지 채소 요리 접하면서 ‘네발 달린 것은 책상다리 빼고는 다 먹는다.’는 중국요리의 다양성은 비단 고기음식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갈 일이 없는 사찰음식점에서 훌륭한 코스요리를 먹어보기도 했구요. 핫하다는 비건 식당들도 여러 곳 찾아다니며 새로운 요리의 세계를 접했습니다. 



일반 음식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곳들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개중에는 ‘이 정도면 비건 할 수 있겠다.’ 싶게 맛있는 집들도 있었습니다. 기존에 나와있거나 새로 나온 비건 제품들도 착실하게 구매해서 먹었습니다. 

이미 세상에는 고기 없이 사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신박한 먹거리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에피소드들 속에서 채식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하며 저의 비건 체험 한 달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 part.2 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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