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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m May 16. 2023

될놈될

무명씨의 Bibbidi Bobbidi Boo


꽤 어렸을 때부터 서른 살이 되고 싶었다.
그때도 뭐가 꼭 되고 싶은지, 뭐를 꼭 하고 싶은지 몰랐으니까 서른이 되면 직업도 직장도 있고 결혼도 해서 내가 '결정'되어 있을 것 같았다.
짜란! 당신의 길고 긴 방황의 도착지는 여기였답니다! 하고.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10년의 경력을 내려놓고 무(無)로 돌아왔다. 죽어라 올랐던 계단에서 굳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겠다고 바닥으로 몸을 내던졌다. 회사를 관두면 건강은 하겠다 했는데 적(籍)이 없어지자 곧바로 부정맥이 생겼다. 병원에 가보니 역시나 스트레스성이라고.
참 소심하다, 진짜.

퇴사한 지 이제 만 1년이 넘었다.
나는 서른을 훌쩍 넘어 꾸역꾸역 만으로 서른다섯이고 세상 사람들은 서른일곱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됐다. 완성된 어른 같던 '서른 살 여자'는 이제 나보다 반 십 년은 어린 애기들이 됐다.

나는 곧 마흔이고 그건 내가 처음 겪었던 스무 살까지의 스무 해만큼을 한 번 더 살았다는 뜻이다.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신생아가 마침내 걷고, 말을 배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겪고, 크고 작은 뜻을 품은 채 대학에 들어가는, 그 길고 긴 시간만큼을 두 번이나 살아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쓰임이 없을까 봐 두렵다.
내가 잘하는 건 뭘까?

학생 때처럼 국·영·수 필수 과목이 정해져 있고 화학 I, II 같은 선택 심화 과목을 듣고, 수능처럼 한날한시에 시험 치면 누군 붙고 누군 떨어지고... 그러면 점수 따라 '누군 업으로 작사가 하실 수 있으시고요, 누군 안 되시니까 얼른 다른 길 알아보세요', 이렇게 인생도 편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인생 참 날로 먹기 힘들다!





70곡을 작사했다.

그중 세 곡에 쥐똥만큼 참여가 됐고 그나마도 회사와 지분을 또 나눠야 한다.


지난 일 년간 나는 무엇을 했던가?

나는 작사가인가? 주부인가? 백수인가?

직업란을 선택할 때면 뒤적뒤적 고민하다 그날그날 땡기는 걸로 기입한다.


작사가랍시고 매주 글쓰기 모임을 하고는 있지만 99% 당일 마감인 우리 회사에서 70곡을 썼다는 건 일 년에 300일은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돈벌이로서 누군가에게 '직업'이라 말하기에 지금 내 수준은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주부라 말하기엔 요리 실력이 초보 자취러나 다름없고 집안 꼴도 전업주부의 그것이 아니다. 임신도 육아도 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끝끝내 외면해 왔던 '백수'라는 타이틀을 이마에 떡하니 붙이고 살아낼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은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될 때까지 하면 결국 되는 거지' 했던 처음 퇴직할 때의 마음은 점차 동력을 잃어간다. 무섭다.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봐. 제대로 고꾸라지지도 못한 어중간한 실패자로 남을까 봐.


세상은 어차피 될놈될이라지만, 결국은 내가 그 '될놈'이 될 줄 알았다.

요즘은 자꾸만 의문이 든다. 나 진짜 될놈 맞나?


부정적인 생각에 너무 오래 매몰되고 싶지 않다.

그래, 될 때까지 하면 되는 거지.

안 되면... 이건 안 된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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