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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담 Jan 05. 2021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 유퀴즈에 공유가 게스트로 나왔다. 공유가 나온 것만으로도 내 시선을 끌었고, 그가 소개한 시 한 편은 내 마음에 깊은 여운까지 남겼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주제였는데, 이 물음에 공유는 ‘에린 핸슨(Erin Hanson)’의 ‘아닌 것(Not)’이라는 시로 답했다.



아닌 것 – 에린 핸슨 (Not - Erin Hanson)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의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승진은 언제 할지, 내년 연봉은 얼마나 오를지,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등 내가 아닌 것들로 나를 정의하려 했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 혹은 숫자가 곧 나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소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 회사생활에 회의를 느꼈고, 시골에서 주체적으로 살아보겠다며 결심하기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나의 행복'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를 찾는 과정은 험난했다. 오랫동안 나의 길이라고 믿어왔던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뿌리치고, 농업인이라는 새로운 길목에 서 있는 이 시점에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본다.



2014년, 2년 만에 취업의 문턱을 넘어 직장인으로서 당당한 첫발을 내디뎠다. 입사 1년 차에는 계절별로 직장인스러운 옷을 사는 재미에 빠졌다. H 라인 스커트와 블라우스, 구두.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듯했지만, 정작 끼니를 챙기는 일에는 소홀해졌다. 출근 준비에 아침을 거르면서도 단장하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점심이 첫 끼였다. 주로 구내식당에서 먹었는데, 이마저도 입맛에 맞는 반찬만 골라 먹었다. 저녁은 퇴근길에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서 먹었다. 그저 배고픔을 달래는 식이었다.


내 식습관에 문제가 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3년이 흘렀다. 어느 날 혓바늘이 몇 개월이 지나도 낫지 않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혓바늘을 살펴보시고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베체트병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베체트병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이 병에 걸리면 입안이나 성기에 궤양이 발생하거나, 피부에 붉은 반점, 눈에 염증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여러 증상이 동시에 나타났을 때 베체트병이라고 확진한다. 나의 경우 혓바늘 한 가지 증상만 나타났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은 베체트병 가능성이 있다고만 표현하셨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병원에 들락날락하는 몇 주 동안 어떠한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발병 원인이나 치료 방법마저 없어 답답했다.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포도막염이었다. 포도막염은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충혈되거나 눈에 작은 이상 징조가 나타나면 겁에 질리곤 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자신을 괴롭혔다. 눈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안과 두 곳에서 확인한 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과거에 내가 내 몸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반성하게 됐다.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 내가 가장 먼저 바꾼 것이 식습관이었다. 엄마는 버스를 타고 2시간 넘게 걸리는 우리 집까지 2주에 한 번 반찬을 싸 들고 오셨다. 하루 세끼 제철 음식, 과일을 챙겨 먹기 시작하고 1~2개월쯤 지나자 혓바늘 증상뿐만 아니라 체력까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엄마의 사랑과 정성 덕분에 나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각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반찬과 과일들로 이루어진 균형 잡힌 식단의 힘을 몸소 경험한 덕분에 나는 ‘잘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됐다.



무엇을 먹는지가 바로 당신을 만든다. (You are what you eat)


‘잘 먹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책 한 구절, 친구들과의 추억, 부모님의 가르침이 차곡차곡 쌓여 가치관을 만들어가듯이 내가 먹는 음식들로 나는 길들여진다. 밥 한 끼 든든하게 먹고 나면 어떤 난관이 닥쳐도 버텨낼 힘이 생긴다. 뿌듯하기까지 하다. 음식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나의 소중한 일상을 건강하게 지키는 방법,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잘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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