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안녕하세요!"
"두릅씨, 안녕하세요. 출근길 괜찮았어요?"
"네, 덕분에 통근버스 타고 편하게 왔습니다. 옆자리에 반장님이 앉으셔서 얘기도 나눴어요."
"그랬어요? 이쪽으로 와요."
나 대리가 안내해 준 곳은 사무실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사이즈의 회의실이었다. 회의실에는 의자와 빔프로젝터, 전화기와 같은 집기들이 다소 정신없이 흐트러뜨려져 있었다. 나 대리가 회의실의 상태에 당황한 듯 급하게 책상 위 집기들을 정리했다.
"오늘 아침부터 누가 썼나봐요. 잠깐 앉아 있어요. 팀원들 인사가 있을 거예요."
나 대리가 나가고 혼자 회의실에 앉아 찬찬히 공간을 둘러봤다. 컨테이너 질감의 벽에는 미색 시트지가 붙여져 있었고, 월넛 색상의 책상과 연두색 의자는 묘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해 촌스러운 느낌을 줬다. 문에는 '회의실 예약현황' 제목이 달린 A4용지가 붙여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통일성 없는 손글씨로 쓰인 시간과 이용자 이름이 빼곡했다. 그 때 회의실 문이 발칵 열렸다.
"후배님, 안녕!"
전화를 받았던 그 여자였다. 쥐어 짜낸 듯 발랄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사람 때문에 오늘 아침에 허벅지가 불탈 뻔 했었지. 한껏 째려보고 싶은 마음을 넣어두고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차림새를 스캔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머리에 풀뱅 앞머리, 통통한 체격을 가진 그녀는 크고 동그란 눈 덕에 의외로 맑아 보이는 인상이었으나, 거침없는 걸음걸이와 제스쳐에서는 투박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형광빛이 섞인 연두색 줄무늬 티셔츠가 어딘가 특이하다는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예,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박두릅입니다."
"암~알지 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뒤를 이어 면접 때 봤던 뾰족한 인상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일어나 목례를 하는 나를 보고 그는 고개를 까딱였다. 일어나서 보니 그는 마치 촛대처럼 빼빼 마른 체형이었는데, 큰 키가 그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피부는 햇빛에 그을린 것처럼 까무잡잡했고 이마에 주름이 깊게 잡혀 있어 나이 들어 보이는 인상을 줬다. 남자가 들어오자 문 가까이에 앉았던 나덕희 대리가 회의실 문을 닫았다. 팀원은 이 정도인가 보군.
"자, 신입이 있으니 한 명씩 인사하시죠. 우선 저는 여기서 20년째 근속하고 있고, 현재는 인사노무팀장을 맞고 있는 장태산 팀장이에요.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된 걸 환영해요."
그가 ‘20년’이라는 단어에 속도를 늦추며 힘주어 말하는 게 느껴졌다.
"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환영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이 또 한번 고개를 까딱하고 나덕희 대리 쪽을 쳐다보자 나 대리가 입을 뗐다.
"저는 전형 과정에서 연락 많이 했었는데, 기억하죠? 나덕희 대리라고 하고요. 인사노무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네, 대리님. 기억납니다. 반갑습니다."
눈치를 살피던 형광 연두 티셔츠의 여자가 본인 차례구나 싶어 알아서 입을 뗐다.
"후배님, 나는..."
"아, 잠깐."
장 팀장이 손바닥을 살짝 들며 여자의 말을 가로챘다.
"그리고 대표이사 비서인 한진주씨가 있어요. 업무는 거의 안 겹치지만 우리 팀 소속이에요. 지금은 대표이사님이 계셔서 그 친구가 자리를 못 비우니 인사는 나중에 기회될 때 하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이제 회사 볼륨이 커져서, 나 대리 업무를 박두릅씨가 함께 할 거고요. 좋은 사수이니 많이 배워요."
"네, 팀장님. 열심해 배워서 금방 적응하겠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나 대리가 연두색 티셔츠의 여자에게 말했다.
"선배, 이제 하세요."
얘기를 들은 여자는 어쩐지 장 팀장의 눈치를 슬쩍 살피는 듯하다가 아까보다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
"후배님, 나는 임라정이고 아직 사원이야. 여기서 급여랑 총무 담당이고. 아침에 통근버스는 잘 탔어?"
"아 네, 선배님. 알려주신 덕분에 잘 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임 사원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대리보다 언뜻 봐도 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데 아직 사원이라는게 의아했지만 사연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겠거니 싶었다.
“그럼 이제 소개는 대충 끝났고, 박두릅씨, 공부 많이 하고 왔어요?”
"아, 네. 관련 책을 좀 사서 몇 번 읽어보고 왔습니다."
"프사 보니까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순간 내 프로필 사진이 뭐였지? 하는 물음이 재빨리 머릿 속을 스쳐갔다. 떠올려보니 수향이가 카페에서 찍어 준 사진이었다. 마음 속에서는 지진이 났다. 아니, 첫 만남에 프로필 사진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이 현실에 존재한다고? 오 마이갓. 어느 때보다 당황했지만 그대로 티를 낼 수는 없으므로 씩씩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아, 네! 전화 받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어디서 찍은 거예요?"
"네? 아, 그... 동네 카페에서 친구가 찍어줬습니다."
"그래요? 실물보다 낫더라고."
팀장이 입꼬리를 샐쭉하게 올리며 말했다. 본인 딴에는 농담이라고 던진 것 같았지만 팀장을 제외하고 아무도 웃지는 않았다. 어설픈 농담을 수습해야 하는 건 어쩐지 내 몫이었다.
“하하, 네. 제가 원래 사진이 좀 더 낫습니다.”
팀장이 대답에 만족했는지 한껏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그는 굳이 핸드폰을 꺼내 내 프로필사진을 다시 한번 들췄다. 그리고 화면을 돌려 팀원들에게 전시하듯 보여줬다.
“이거 봐, 사진이 낫지?”
‘이보세요, 팀장양반. 그게 사람 면전에 두고 할 말이오?’ 하는 물음이 목울대를 타고 직진할 뻔했지만 그냥 이 사람만의 아이스 브레이킹 방식이겠거니 했다. 근데 이제 약간 무례함을 곁들인. 팀원들이 애매한 표정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장 팀장은 잔뜩 신이 났는지 굳이 다음 사진과 그 다음사진까지 손가락으로 넘기며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품평을 이어갔다.
“지금 머리보다 이 때 머리가 더 나은데?”
“완전 8등신처럼 나왔는데, 실제로 키가 몇이에요?”
회의실 안에서 벌어진 난데없는 전시회에 당황한 내가 마땅히 반응하지 못하고 얼어있자 나 대리가 말을 꺼냈다.
“팀장님, 곧 팀장 회의 시작할 시간인데 안 나가보셔도 괜찮으세요?”
그 소리에 팀장이 마침내 핸드폰 화면을 끄며 대답했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오늘은 이만 해산하지. 그리고 박두릅씨, 이따 점심은 대표이사님이랑 우리팀 같이 할 예정이니 참고요.”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드디어 끝났구나. 고작 30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땀이 나서 등이 후끈후끈했다. 회의실을 나가 팀원들을 따라갔다. 100명이 넘게 있는 크고 넓은 사무실이었지만 공간을 채우는 건 타닥거리는 키보드 소음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사원복을 착용하고 비슷한 자세로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인사노무팀은 CEO실과 가장 가까운 사무실 안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팀원이 나까지 5명이니 팀장 자리는 가장 안 쪽에 있었고, 나머지 네 자리는 두 자리씩 평행으로 되어 서로 등을 맞대고 앉는 구조였다. 비서 자리는 CEO실 앞 쪽에 단독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아까 말했던 비서 한진주씨의 머리가 모니터 뒤로 살짝 보였다. 나 대리가 내 자리를 안내했다.
“두릅씨, 앞으로 이 자리 쓰시면 돼요. 라정 선배 옆 자리이니 필요한 거 있으면 선배에게 물어보시고요. 뒷 자리가 저니까 저한테 말씀하셔도 돼요.”
안내 받은 자리에는 회색 사원복과 명찰, 사무용품 같은 것들이 놓여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 집기들을 대충 정리하는데 장 팀장이 말했다.
"박두릅씨, 사원복 뜯어서 착용하면 됩니다."
"아, 네. 팀장님."
아까 본 직원들이 대부분 착용하고 있었던 그 회색 사원복이었다. 카라가 있는 점퍼로, 오른쪽에는 파서블 렌즈 로고가 새겨져 있었는데 착용해 보니 품에 넉넉히 맞았다. 소속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존재가 좀 묻히는 것 같기도 하고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정리 할 시간이 생겨 자리에 앉아 슬쩍 핸드폰 화면을 켰다.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접속해 ‘프로필 사진 삭제’ 버튼을 눌렀다. 시스템 기본 사진으로 프로필이 바뀌었다. 하늘색 배경에 사람 형체가 띄워져 있는 사진이었다. 형체는 머리와 몸의 윤곽만 있을 뿐 그 어떤 특징도 없었다. 사원복을 입고 있는 내 모습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