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싶은 곳을 찾아서
일본에 오면 꼭 가보고싶은 페스티벌이 있었다. 후지산 락페스티벌도, 썸머소닉도 아닌, 바로 알프스 북캠프다. 서점, 카페, 갤러리, 숙소를 겸하는 시오리비(栞日)가 주최하는 페스티벌이다. 몇 년 전부터 알프스 북캠프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매해 개최되는 모습을 온라인으로 지켜봤다. 언젠가는 행사가 개최할 때에 일본에 방문하고 싶다는 마음을 작게나마 간직한 채. 나는 끔찍한 길치이기 때문에 지명을 들어도 곧잘 잊어버린다. 한국의 지명도 못 외우는 내가 일본의 지명까지 외우고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알프스 북캠프는 앞뒤 없이 내게 '그냥' 알프스 북캠프로 기억되었다.
일본에 와서 짧은 시간만에 급격히 친해진 친구 S. 책이나 음악, 영화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친해졌다. 여느 때처럼 S와 만나 영화를 보기로 한 날, 페이스북을 보다가 알프스 북캠프 페이지에 새로운 글이 올라와 무심하게 읽어나갔다. '음, 내년에도 개최하는구만.' 그러다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알프스 북 캠프 2020*
개최일 : 6월 13~14일
회장 : 나가노현 오오마치시(...)
S의 고향이 바로 나가노이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나가노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째서 알프스 북 캠프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을까. 그 후 S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지도에 검색해 보니 알프스 북 캠프는 심지어 S의 본가와 정말 가까운 곳에서 개최되는 행사였다. S는 때마침 연말연시에 고향에 잠시 돌아가니 내게 그때 놀러오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왔다. 그렇게 첫 나가노 여행은 2019년 끝과 2020년의 맨 앞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알프스 북 캠프 2020은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었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
우리집에서 로컬선(지역철도)으로 약 4시간이면 다다르는 곳, 나가노현 마츠모토시. 시간이 배로 들지만, 비용은 반으로 줄어드니 한 번 타 보자 싶어 로컬선을 이용했다. 눈이 세차게 내리다가,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가는 내내 날씨가 계속해서 변했다. (환상열차를 탄 것인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날씨만큼이나 계속해서 변했다. 서있는 건물이 점점 낮아지다가 아예 없어졌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논밭과 하늘 뿐이었다. 그런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남들 눈치 안 보고 눈물도 쏟으니 어느새 마츠모토에 도착했다.
여행 내내 S에게 빌린 자전거로 동네 구석구석을 다녔다. 연말연시라 조용해진 거리 사이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의 옆모습이 스친다. 그 길을 빠르게 자전거로 지나쳤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휴무 중이었기 때문에 오갈 곳이 없는 나는 주로 나가노의 여백을 달리며 찬바람이나 실컷 쐬었다. 가뭄의 단비처럼 시오리비만큼은 매일 가게를 열어두고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기에, 여행하는 내내 나는 시오리비에 출근 도장을 찍고 말았다. 어떤 날은 아이스 라떼를, 어떤 날은 아이스 라떼에 토스트까지 주문하면서.
시오리비에서 주최하는 알프스 북 캠프 외에도 내가 나가노, 그것도 마츠모토에서 가장 들르고 싶었던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먼저 첫 번째는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이다. 어느 지역에나 많은 예술가들이 있지만, 유난히 나가노 현에는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나가노 현은 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지브리의 음악을 대표하는 히사이시 조(久石 譲) 그리고 도쿄도현대미술관을 설계한 야나기사와 타카히코(柳澤孝彦)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고향이다. 특히나 쿠사마 야요이는 마츠모토시 출신으로, 시내에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이 있었기에 꼭 들르고 싶었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 휴무 중이라 건물 밖에서 대형 설치작품만 바라보다가 돌아와야 했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두 번째로 들르고 싶었던 곳은 마츠모토 민예가구 쇼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전개한 '민예운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한번 부흥하는데, 이때 나가노현 마츠모토시가 큰 영향을 받았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마츠모토 민예가구'다. 생활의 뿌리가 되는 일상생활 속 도구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민예에 걸맞게, 마츠모토 민예가구는 오래 쓰면 쓸수록 더욱 진한 매력을 뿜어내는 좋은 가구다. 그래서 본고장에 와서 직접 보고 싶었는데 볼 수가 없어서 정말 아쉬웠다. (그후, 도쿄에 있는 지점에 들러 실제 가구들을 볼 수 있었고 시간의 산물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견고한 가구들이었다.)
*민예운동은 1926년,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끈 일본의 독자적 운동이다. 일본민예관의 설립자이기도 한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본 각지의 도자기, 염직, 칠기, 목죽공 등 무명의 사람들이 만든 물건들 즉, 이전까지의 미술사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았던 일반인들의 미술공예품을 발굴해 소개하려고 애썼다. (참고 : 위키피디아)
비록 가고싶은 곳들을 문밖에서만 즐겨야했지만, 나는 2박 3일간 짧지만 충분히 마츠모토를 즐겼다. 그리고 숙소에서 잠들기 전이나, 자전거를 타며 옆으로 흐르는 마츠모토의 풍경을 보면서, 그리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코우치 현에서 품게된 상상을 나가노에 풀어보기 시작했다.
이곳에 내가 살게 된다면?
내가 생각하는 시골살이란 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대로 로망으로 가득 채운 삶도 아니다. 적당히 지루하고 적당히 한적하고, 굉장히 불편하고 캄캄한 밤이 자주 무서운, 그런 삶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필요한 만큼 충분히 불편한 생활을 이어감으로써 인간다운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만들고 싶다. 또, 가능하다면 머리보다 몸을 더 많이 쓰며 살아가고 싶다.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자연인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기 보다는 자연과의 밸런스를 맞춰 나의 삶의 크기와 속도를 원래대로 돌리고 싶은 것 뿐이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직접 키운 닥나무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연구를 반복하는 거지요. 유유자적한 생활은 절대로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그랬다면 더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겠지요."
-<종이의 신 이야기> 중에서
유유자적한 삶이 아니라, 그냥 또 하나의 삶의 형태일 뿐이다. 고독을 즐기고자 깊은 곳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니 적당히 인터넷이 잘 터져 모두의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언제든 도시에 오갈 수 있도록 도심에서 그리 떨어져있지 않은, 그러나 집과 집 사이가 빼곡빼곡하지 않은 그런 곳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가노에서 내가 생각하는 시골살이의 여러 조건들이 조금씩 맞아 떨어져가는 것을 경험했다. 지역 자체가 나와 잘 맞고 내가 이 곳에 적당히 스며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십 대가 되면 꽃에 대해 잘 알고, 멋진 그릇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시끄럽지 않은 맛의 요리를 할 수 있고, 녹색이 많은 곳에서 살고 싶다. 아, 고양이가 두 마리쯤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정말로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어떠려나." - <집다운 집> 중에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