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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20. 2023

최여사의 일기

5. 19 눈칫밥



   이틀 내내 비가 내린다. 시원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추적대는 모양이 꼭 가을비 같다. 초여름 문턱에서 가을비를 느끼는 것은 마음이 허한 탓일까. 병원에서 엄마를 면회하고 마음이 더 무겁다.


  엄마를 보내기 전부터 시어머니는 울먹였다. ‘나는 어쩌라고.’ 혼자 남겨질 것이 두려웠을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걱정은 ‘눈치’였다. 시어머니라는 자리가 주는 우월감은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사돈도 없는데... 삼시세끼 얻어 먹을라니...’ 달라진 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어머니는 달라졌다.


  식사를 할 때 음식을 남겨 따로 챙겼다. 물려진 상에 그릇이 모자라 확인하지 않았다면 한동안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밥 차리러 오지 않을 때 먹으려고 했단다. 무릎을 맞대고 앉아 다시 말했다. 이전과 똑같이 할 거라고. 만약 바쁜 일이 있으면 그때 설명할 것이고 조치를 취할 거니 걱정하지 말라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던 엄마가 있을 때와는 조금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나의 마음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의심을 불러왔을 터이고 급기야 눈칫밥을 먹게 된 것이다. 상을 차릴 때마다 반찬은 그만 내란다. 국에 밥 말아 먹으면 되는데 돈 아끼란다.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를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귀한 아들 덕에 부리는 며느리라며 고마운 마음조차 아들에게로 돌리던 어머니다. 그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말없이 당신 방을 걸레질 하고 물 마신 컵도 씻어 놓는다. 그 정도는 하는 편이 좋긴 하지만 습관이 아니라 눈치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기에도 민망하다.  


  더욱이 시골집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혼자서 살지 못해 떠나온 것조차 잊은 것인지. 2미터 떨어진 화장실 사용도 버거우면서 터미널까지만 데려다주면 알아서 찾아가신단다. 몸은 노쇠하여 무너지는데 마음은 늘 수십 년 전 그 어느 날에 머물렀다.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속도로 늙어가는 데서 생긴 부작용이다.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가 애처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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