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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Oct 31. 2023

최여사 일기

마지막 일기 

      한 해에 생길 수 있는 일에 한계는 없겠지만 그래도 올해는 너무 많은 일이 생겼습니다. 정초부터 남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가슴을 졸이는 시간을 보냈네요. 겨우 한 고비 넘기자 이번엔 엄마가 편찮으시더니 그예 이세상 소풍을 끝내고 소천하셨지요. 엄마가 떠나시자 혼자 남은 시어머니는 울상이 되어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지요.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많더라고요. 


  코로나 감염 이후 자가면역질환 이라는 진단을 받고나서 제일 먼저 어머니가 걱정되었어요. 어머니는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픈 것을 그냥 보시는 분이 아니거든요. 당신이 먼저 앓아 누우실거고 종일 걱정하는 말을 입에 달고 계실 게 뻔하니까요. 암투병 중인 남편이나 저에게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이라고 무조건 피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해질 게 뻔했어요. 셋 모두 힘들어질 생활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어머니에게는 가족들의 모든 상황이 스트레스 였나봐요. 아들이 집을 나선 후 돌아올 때까지 현관앞을 지키고 있는 건 기본이고 시장간 며느리가 들고오는 장거리 무게만큼 어머니의 마음은 무거워지나보더라고요. 점점 일그러지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는 제 맘은 더 갑갑해지고요. 집에만 있던 남편이 건강이 호전되면서 이전에하던 낚시를 다시 시작하자 어머니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셨지요. 니들이랑 살다가는 애간장이 녹아 명대로 못 살겠다 하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집착을 하시는지 모르진 않아요. 위험할까봐, 가난해질까봐, 더 아파질까봐 걱정이 되서 그런다는 걸 알았지만 아는 것과 견디는 것은 차이가 있데요. 골목 하나 건너에 따로 사는 것과 방문을 열면 마주하는 공간을 공유하는 생활은 정말이지 많이 달랐습니다. 눈에 띄는 것과 모르고 넘어가는 것의 차이, 역시 '모르는 게 약'이었습니다. 시골집에 계실 때는 일 년에 몇 번 보는 걸로 만족했지만 한 골목 건너에서는 매일 봐도 부족해 하셨지요. 저녁이면 돌아가는 며느리, 일주일에 한 번 들여다 보는 아들을 많이 야속해 하셨지요. 그런데 한 집에 살게 되자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마음에 걸었습니다.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나날이 지속되자 결국 요양원 입소를 결정했습니다. 요양원에서는 노인들을 때린다거나 굶기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망설이는 어머니께 아는 분이 계시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드렸지요. 짐을 챙기는 동안 합숙 생활에 필요한 주의사항을 말씀드렸어요. 적응하지 못하실까 걱정이 되어 건성으로 듣는 어머니께 확인 차 반복했더니 '너나 아프지 말고 잘 살아라' 하시대요. 입소 일주일 후 면회를 갔더니 어머니 안색이 훤 해지셨더라고요. 보이지 않으니 걱정도 덜 되신다면서도 이래저래 주의를 주시네요.


  끝까지 모시지 못해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한 달이 지나니 그새 마음이 편해졌어요. 편해진 마음만큼 죄책감이 밀려들었지요. 그 곳에 근무하는 지인에게서 자주 어머니 근황을 듣습니다. 적응도 잘 하시고 점잖으시고 모범생이라네요. 원래 양반가 규수로 자라서 그런지 외부인에게는 참 잘 하시는 분이지요. 어머니의 문제점은 가족에게 막무가내라는 겁니다. 어느날엔가 가족들에게도 손님들께 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해주면 안되냐 여쭈었더니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가족들한테까지 그러면 피곤해서 어찌사냐 하시더라고요. 점잖게 예의 차리느라 좀 피곤하시겠지만 적응은 잘 하고 계십니다. 


  입소 사흘 후, 때리고 굶기는 곳이 아니라는 확신을 드신 다음부터 안색이 평온해지고 사람들 대화도 주도하실만큼 마음이 편해졌다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한 달 사이에 세 번 면회를 갔는데 자주 오지 말라시네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니들 보니 걱정이 또 생긴다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오라십니다. 그런데 그리 말하는 어머니의 표정에 간절함이 엿보이데요. 아마도 자주 찾는 자식 걱정에 거짓말 하신 것 같네요. 걱정은 마지막 그날까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사돈지간의 한 지붕 살이는 고여사님의 소천으로 끝이났고 최여사님의 입소로 제 임무도 끝이 났습니다. 좀 더 잘 할 걸 하는 후회는 어떤 경우든 하는 거라고. 그러니 저는 하지 않으렵니다. 제가 부족했던 탓이니 어쩌겠어요. 이젠 남편의 병이 덧나지 않게, 나의 병이 깊어지지 않게. 두 사람이 스스로를 돌보며 가끔은 서로 품앗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당분간 직장도 갖지 않고 건강관리하려구요.


  고여사, 최여사일기 보다 재미는 없겠지만 '나의 일기'는 계속해서 쓰려고 합니다. 그동안 두 여사님들을 응원해 주신 님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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