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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Sep 12. 2023

최여사 일기

어긋난 사랑


      아프지 않았다고 우기지만 코로나에 감염된 후유증이 확연히 드러났다. 배탈이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끼도 거르지 않던 식사를 거르기 예사다. 밥상을 받고서도 일어날 생각을 않고 깨워도 다시 잠들었다. 보건소에서 확진 판정을 받을 때는 이미 회복기에 접어든 때였던 모양이었다.


  입소가 미뤄지자 어머니는 종일 잠을 잤다. 당신을 거부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사람마다 아픈 정도가 다르다니 어머니는 몹시도 건강한 모양이라며 추켜세워도 귀를 막았다. 청신경을 임의로 끊었다 잇는 것처럼 원치 않는 말에는 늘 스위치를 끈다. 어머니가 듣고 싶은 말은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와 손주들 이야기다. 하고 싶은 말은 며느리들을 향한 지침서 낭독 같은 잔소리가 전부인 듯하다.


  코로나 확진 일주일을 내내 잠만 자는 통에 하루 한 끼는 무조건 생략이다. 그러니 화장실 오가는 일도 힘겨워 밤낮으로 요강을 이용했다. 방문을 열면 요강을 비웠어도 진한 오줌냄새가 났다. 이젠 이불이며 벽지, 옷장에까지 밴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흔들어 깨워도 눈만 두어 번 껌뻑이고는 다시 잠드는 모양이 기력이 쇠한 것 같았다.


  병원으로 모시기엔 너무 버거운 상황이다. 축 늘어진 몸피는 아무리 작아도 추스르기 힘들다. 영양제 주사를 맞기 위해 왕진을 청했다. 탄력 없이 늘어진 피부 사이로 푸른 혈관이 얽혔다. 굵게 두드러진 것과 가늘게 숨은 것들 사이로 맥박이 뛴다. 주사액이 천천히 혈관을 타고 흐르자 희미한 눈매에 눈꺼풀이 열렸다. “이기 뭐고?” 영양제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바늘을 뽑으려 한다. “돈이 얼만데. 이걸.” 재빨리 어머니의 팔을 눌렀다.


  당신을 위해서 돈 한 푼 쓰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죽지 못해 견디는데 영양제가 웬 말이냐 흐느낀다. 그 돈으로 아들 힘나는 음식 해 주란다. 듣다못해 언성을 높였다. “구순 넘은 어미 숨넘어가는데 영양제 놓을 돈으로 고기 구워 먹으면 참 맛있겠습니다. 그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려 어지간히 효자여야겠네요.” 며느리의 호통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빨리 죽어야지를 주문처럼 되뇐다.


  아무리 봐도 어머니의 사랑은 변질 되었다. 이건 사랑이라 할 수 없다. 부모의 말을 거스르는 것이 불효라면 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다. 부모는 굶고 자식은 배 터지는 것이 어머니가 바라는 일이거늘. 행하는 것이 효일까. 행하지 않는 것이 효일까. 세상에 이처럼 지독한 딜레마에 시도때도 없이 빠져야 하는 자식이 과연 행복할까.


  오늘도 또 한 가지 공부를 한다. 자식을 위한다면 내 마음이 좀 불편하자. 이미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자식이라면 내가 원하는 것보다 자식이 원하는 대로 살자. 진정 자식을 위한다면 조금은 이기적으로 스스로를 챙겨 걱정거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사랑하는 내 자식을 힘들지 않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어머니는 오늘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자식이 불효하기를 바란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슬그머니 내민 어미의 몫까지 맛있게 먹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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