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Sep 11. 2023

최여사의 일기

코로나에 감염되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지만 심한 경우는 생애 최대의 통증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독감 수준일 거라 예상을 했지만 정말 겪어보지 못했던 증상들이 계속되었다. 어머니들을 위해 몸을 사린다고 했었던 자신감이 무너졌다. 루프스 때문이었을까. 남들보다 더 깊고 길게 아팠다.


  안방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는 남편의 경고에도 어머니는 빈틈을 노려 기어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비몽사몽간에도 기척을 느끼고 놀란 나는 손을 마구 저었다. 목통증으로 말이 나오지 않아서 한 행동인데 이해를 하지 못한 어머니는 슬픈 눈으로 며느리를 쳐다본다. 코로나가 웬 말이냐는 표정이다. 문을 두드리자 고개를 돌린 남편이 기겁을 하고 달려왔다.


  폐에 문제가 있었던 어머니는 간혹 잔기침을 한다. 가끔 깊은 기침소리를 낼 때도 있었는데 격리중인 며느리 방문을 연 다음부터 기침소리가 잦아졌다. 남편의 걱정에 어머니는 기침 외에는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일주일을 넘기고 일어난 며느리 걱정에 풀기가 잔뜩 죽어 자리보전 하고 누웠다. 입맛도 없다 했다. 


  갑자기 드러난 나의 병으로 어머니는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이런 저런 행정절차를 밟고 서류를 준비하고 가실 요양원을 찾았다. 집에서 십여 분 거리에다 지인이 근무하는 곳이라 마음이 놓였다. 사정을 설명하자 흔쾌히 입소를 결정했던 때와는 달리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는 자꾸만 가지 않을 핑계를 찾는다. 결국 원래 사시던 고향집으로 데려다 달라신다. 이태 동안 돌보지 않아 마당엔 키 높이만큼 풀이 우거졌다. 이 년 전에도 혼자 살지 못해 떠나온 집인데 가당키나 한 소린가.


  어느 날 저녁에 어머니는 작은 보따리에 짐을 챙겼다. 웬 짐이냐 물으니 작은 아들이 모시러 온단다. 사전에 아무런 언질이 없었던 터라 의아해 하면서도 별일은 아닐 거란 생각에 모른 척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문지방에 짐을 걸치고 문 밖을 내다보며 작은 아들을 기다리는 눈치가 역력하다. 아침을 먹고, 점심때가 지나자 짐은 방 안쪽으로 옮겨졌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에야 아들이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한 것을 깨닫고 포기하는 눈치였다.


  입소 전날, 시설입소에 필요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를 다녀와 짐을 쌌다. 걱정이 많은지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냈다. 끝까지 모시지 못하고 보내는 입장에서야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다만, 그 곳에 가면 돌보는 분들이 하자는 대로 잘 따르라는 당부를 했다. 모두가 어머니 편하게 모시려고 하는 행동들이니 의심하지 말라는 부탁도 함께했다. 수학여행 떠나는 아이에게 주의사항을 거듭 반복했던 때처럼.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중 전화벨이 울렸다. 요양원에서는 오후에 모시러 오기로 약속이 되었는데 아침 일찍 무슨 일일까 했더니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단다. 입소는 취소되고 보름 후로 다시 날을 잡겠단다. 일주일 꼬박 아픈 나와는 다르게 어머니는 아픈 데가 없었다. 다시 물어도 마찬가지 대답이다. 그제서야 잦은 기침을 생각했다. 남편은 격리중인 안방 문을 열던 때를 떠올리며 짜증을 냈다. “나쁜 놈의 코로나 나에게 오라.” 당신을 향해 손부채질을 했다며 싫은 소리를 했다. 


  통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당신만이 아는 일이다. 어떤 일에도 솔직한 대답을 하지 않는 어머니라는 걸 간과했다. 정말 통증이 없었던 거라면 다행인데 감당하기 힘든 통증을 겪어보았기에 그 고통을 참아낸 것이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식에게 좋은 것만, 자신에게 편한 것만, 자식에게 배부른 것만 주고 당신은 힘들고 배고픈 삶을 사는 것을 좋아할 자식은 하나도 없다. 나중에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자식의 찢어진 가슴은 주린 배를 안고 참는 고통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어찌 생각하지 못할까.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어머니의 입소가 무산되자 또다시 의심병이 도졌다. 아마 당신을 보고나서 데려가기 싫어 코로나 걸렸다고 핑계를 댔을 거란다.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성화였다. 걸리면 죽을지도 모르는 코로나가 고작 기침 몇 번이 전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란다. 하긴 일주일 꼬박 방에서 나오지 못한 며느리를 직접 보지 않았던가. 생떼 같은 아들이 밥을 차려 들락거리고 거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지 않았던가. 그 모든 것이 코로나 탓이라 싫은 내색 않고 참아냈는데 그런 코로나가 아흔이 넘은 당신께는 그렇게 맥없이 스쳐지나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는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