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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작가 Dec 26. 2020

첫 번째 이야기. 저는 어렸을 때부터. -3-

31살 신입사원이 되기까지... 서울에서 '늪'에 빠진 20대.

 우리나라 제1의 도시 서울. 어렸을 때 논스틉이란 시트콤을 보며 대학생활의 로망을 키웠고,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형을 보며 자연스럽게 '서울'은 내 학창 시절 동안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유가 억압당하고, 군대와 비슷했던 곳에서 내가 3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그 끝엔 '서울'이라는 목적지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나는 천천히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니 대학교 가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데이."


 대학교 입학을 앞둔 나를 보며 부모님이 걱정했던 건 단 한 가지였다. 말수도 적도 내성적인 성격 탓에 서울에서 내가 친구 하나 없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하지만, 그 걱정은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 OT와 동아리를 통해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고, 첫 연애도 시작하면서 20대의 내게 주어진 자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터치가 직접 닿을 수 없는 이 곳. 서울에서 나는 3년 동안 억압당했던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기 시작했다. 단, 자유를 느끼는 동안, 자유 뒤에는 언제나 책임이 뛰따른 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한 다음이었다. 


 복학을 하고 나서도 그저 나와 함께 부어라 마셔라 하며 노는 줄로만 알았던 친구들은 천천히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각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2007년의 나. 처음 20살이 되었던 그 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 친구들은 천천히 달라지고 있었다. 


 회계사를 꿈꾸기 시작한 친구. 좋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된 친구. 새로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 대학원에 들어가 관심 있는 분야를 더 공부하겠다는 친구. 이렇게 각자 다른 미래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연애와 일상적인 농담이 안주거리로 올라왔던 우리의 술자리는 변하기 시작했다. 


"넌 앞으로 뭐할 거냐?"

"응? 나?... 글쎄... 나는 공기업 한 번 준비해보려고."


 자유를 즐기는 동안 오로지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별 다른 대외활동도 하지 않았던 나였다. 여러 대외활동을 하며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는 대신에 강의와 시험. 그리고 노는 것만을 반복했었다. 때문에 친구들이 하나 둘 목표를 가질 때에도 나는 내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동안 어느새 취준을 해야 되는 시기가 다가왔고, 아직 목표가 없었던 나는 부모님이 자주 말씀하셨던 '공기업 입사'를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공. 기. 업. 입. 사』


 그때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입 밖으로 꺼낸 말이었다. 일반 기업보다는 입사까지 걸리는 시간이 긴 곳. 남들보다 취준이 길어도 충분히 변명거리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기업 입사'라는 우산 속에 숨어 서서히 시간을 허비하기 시작했고, 그 시간 동안 나를 좀 먹는 존재를 키워나가고 있었다.




학습된 무력감

피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었을 때.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찾아와도 극복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자포자기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


 첫 취준을 하는 동안 나를 좀먹는 존재는 바로 학습된 무력감이었다. 사실, 공기업 입사를 입 밖으로 꺼낸 후 처음부터 아무런 준비 없이 덤벼든 건 아니었다. 학점이 중요하다는 말에 3.0에 걸터앉아 있었던 학점을 3.65로 맞추었고 공기업 입사에 필요한 자격증도 하나 둘 취득했다. 그리고 공기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 스터디를 시작했다. 이 정도면... 첫 취준 때 입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면접은 한두 번 정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원자님의 역량은 충분하나, 한정된 인원으로 인해 모실 수 없게 되었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취준생에게 가장 잔인한 말. 대학을 다니면서 취준을 시작할 땐 이 말에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첫 1년은 경험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시작했기에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친구들은 떠나고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이 말을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내 안에서 조금씩 학습된 무력감이 자라나 나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에휴, 여기 지원하면 뭐하냐... 어차피 안 될 거..'


 또다시 1년이 지난 후. 새로운 채용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취준을 이유로 생활비를 부모님께 기대고 있는 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의례적인 행사를 하듯, 지난번에 지원했던 대로 마우스 클릭 몇 번. 키보드를 조금 두드릴 뿐. 별다른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며 필기시험 만을 보러 다니기만 했었다.


이렇게, 나는 공기업은 다른 곳보다 취준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핑계 속에 숨어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만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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