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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귤 Dec 10. 2020

사하라가 우리에게 남긴 것

캔버스에 채워진 곤색과 짙은 갈색. 그리고 오묘하면서도 밝은 저 빛. 새벽 세 시의 사하라다. 남들은 사막에서 은하수와 유성을 본다던데. 날짜를 한참 잘못 고른 나는 달이 가장 크게 차오른 날의 사하라에 있었다. 하늘 어딘가에서 랜턴을 켠 듯한 은은한 빛과, 그 아래 터번을 두르고 낙타를 탄 세 사람. 마치 아기 예수를 축복하러 베들레헴으로 먼 길을 떠난 세 명의 동방박사들 같다. 다 똑같아 보이는 모래 사막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맨 앞의 인물은 모합. 우리의 가이드다.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이 곳에서 만난 네덜란드인 여행객, 숀. 그리고 맨 뒤에 위치한 사람은 바로 나다. 


모로코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라케시 시내로 나가는 수프라 버스를 타기 위해선 적어도 새벽 세 시엔 베이스캠프를 나서야 했다. 초 새벽의 사막은 낮의 강렬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하라의 낮이 강렬한 색채를 몇 번이고 덧바른 유화라면, 세 시의 사하라는 물을 잔뜩 머금은 수채화였다. 당장이라도 그림 한 쪽에서 어린 왕자가 나타나 양을 그려 달라고 할 것만 같았다. 처음엔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모습 그대로를 소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겁게 가져간 DSLR로도, 아이폰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담을 수 없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오직 눈으로만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깨달은 숀과 나는 이내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대신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차분한 공기가 우리 주변을 감쌌다.


-나는 이곳에서 용서를 배웠어.


정적 가운데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숀이었다. 한 마디뿐이었지만 그의 심정을 이해할 듯했다. 2박 3일간 이미 여러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하라를 떠나면 서로를 다시 만나기 힘들거란 사실을 알았다. 그 이유에서인지 숀은 나에게 속 이야기를 쉽게 터놓았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일방적인 이혼 통보를 받은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이 곳에 왔다고 했다. 이 곳에 온 것 자체가 그에게 큰 도전이랬다. 그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미래의 주체를 ‘나’로 바꿔 그린 첫 시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여행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모래 썰매를 탈 때도 그저 우리를 바라보았던 그는,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 앞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이제 다시 나의 삶을 살겠다면서. 자신의 삶에 주어진 기쁨들을 더 찾아보겠다면서.


-이곳은 나의 생존터이자, 나의 꿈이자, 내 전부야.


그 말을 듣던 모합이 말했다. 그는 열 살이 갓 넘었을 때부터 아빠를 따라다니며 사막 가이드 일을 배웠댔다. 이 곳에선 낙타 새끼가 태어나면 낙타 대열의 맨 끝에 묶어 사막의 길을 배우게 한다고 했다. 자신은 낙타와 꼭 비슷하다면서. 앳된 외모를 보니 한국으로 치면 겨우 고등학생쯤 되어 보였다. 모합은 가이드 일을 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다. 나에게는 일상을 벗어나 온 이 곳이지만 그에게는 치열한 생존의 장소였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지만, 사하라는 그 이상의 의미야.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꿈을 듣지. 그리고 매일 밤 전 세계의 노래와 시를 들어. 


모합의 말을 듣자 피식, 웃음이 났다. 어젯밤, 캠프파이어 불 앞에 앉아 ‘제주도의 푸른 밤’을 불렀던 기억이 스쳤다. ‘떠나요~ 둘이서~’로 시작하는, 제주도를 동경하는 노래가 사막 한복판에서 떠오른 이유는 모를 일이었다. 물 한 방울 없는 사하라는 나에게 망각의 음료수로 가득 찬 곳이었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에서 말했다. 여행은,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박지 않은 젊은이에게 망각의 음료수로 작동한다고. 그것은 긴 시간이 주는 음료수와 같은 종류이지만, 그 효력은 훨씬 빠르게 나타난다고.


 맞다. 나에게 사하라는 망각이었다. 지긋지긋한 내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도피처였다. 망각의 음료수를 마시고 돌아가는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와 찾지 못한 답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 있었다. 바로 그 문제를 마주하는 ‘나’였다. 언젠간 꼭 가겠다고, 막연하게 상상하기만 했던 사하라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을 때 알았다. 나에게 주어진 무한한 가능성을. 그저 허황된 것처럼 보이는 내 꿈도, 어느 땐가 마법처럼 내 눈 앞에 펼쳐질 거라는 사실을.


 달빛 아래 낙타를 타고 가는 세 명의 동방박사들. 아니,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온 세 사람.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 몰약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더 귀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숀은 용서를, 핫산은 전 세계의 꿈과 노래를, 나는 망각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날 용기를. 그것들을 가지고 마라케시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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