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_01
나는 빨간 봉투와 하얀 봉투를 양손에 들고 고민한다.
“하얀 봉투에 넣을까? 그래도 이럴 때 쓰려고 산 건데... 막상 써보려니 조금 부담되네”
고민 끝에 희(喜)라는 금색 한자가 적힌 빨간 봉투에 신사임당 2장을 넣는다.
봉투 입구를 접고 뒷면에 이름을 세로로 적어 외투 안주머니에 고이 모신다.
이제 말끔한 차림새로 강남을 향해 출발하며 식사가 뷔페 일지 갈비탕 정식 일지 예측해본다.
빨간 봉투의 만남은 아내가 살던 집에 첫 방문하던 날부터였다.
이미 결혼 승낙을 양가 부모님께 구두로 받았지만 정식으로 얼굴도장을 찍고 싶었다.
첫 만남인 만큼 선물은 필수! 아내가 중국 쟈무쓰에서 '미샤(MISSA)'는 나름 먹어주는 화장품 브랜드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까운 가족과 친지에게 드릴 선물을 위해 한 달에 한번 있는 미샤데이 (50% 세일데이)를 벼르고 별렀다. 매장을 탈탈 털 기세로 야무지게 선물을 꾸려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장인 장모님 선물은 특별히 더 좋은 메이커 가전제품으로 신경 썼다. 선물을 사 간다는 게 소문이라도 났나? 좁은 공항 출구 앞 얼굴을 빼꼼히 내민 사람이 수두룩했다. 유리문 사이로 눈을 굴리던 사람들은 바로 아내의 가족과 사촌들이었다.
장인, 장모님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친척들에게 한순간 나는 둘러싸였다. 놀란 나머지 기쁨의 환대를 "니하오"와 "씨에씨에" 두 단어만 무한 재생하며 공항을 빠져나왔던 걸로 기억난다. 처갓집에 도착해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선물 증정식 시간이 돌아왔다. 사촌 어머님들의 눈빛이 유독 초롱하게 빛난다. 애초에 주문받았던 화장품 하나. 내가 드리는 화장품 하나 더. 그리그 증정으로 받은 마스크팩까지. 따따블 선물에 작은어머님들의 만족도는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마지막 장인, 장모님께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 남았다. 면세점에서 구입한 고급 브라운 전기면도기와 fo(후)화장품 세트를 선물하며 외국 사위의 능력을 과시했다. 그날 이후 미샤와 올리브 영은 내게 효자 브랜드가 되었다.
타지에서 날아온 선물 증정식이 끝나자 가족들은 다시 분주했다. 가방, 외투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뒤적이기 바쁘다. 먼저 작은어머님이 나와 아내를 구석진 방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아내는 입이 귀에 걸려있었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졸래졸래 따라간다. 작은 어머님의 가방이 열리고 금박 인쇄가 된 프리즘 종이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린다. 빨간색 종이에 화려한 금색으로 적힌 한자. 조금은 유치해 보이는 나비와 장미 문양 프리즘. 나는 처음으로 중국의 빨간 봉투 ‘홍빠오(红包)’를 받았다.
홍빠오(红包)
1. 붉은 봉투를 뜻하는 말
2. 축의금, 보너스 등을 담아 건내는 붉은 봉투
(복, 희, 하 등등 축하의미를 담은 한자가 그려있다.)
3. 암묵적인 뇌물, 뒷돈을 의미
홍빠오(红包)의 유래
청나라, 명나라 시절 명절이면 어른은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건넸다. 붉은색 줄에 동전을 꾀어 동전뭉치를 선물했다. 민국시기에 접어들어 붉은 종이봉투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홍빠오는 중국의 명절, 입학, 졸업, 결혼 등 경사에 전하는 축의금으로 자리 잡았다. 봉투의 앞면에 복, 희, 하와 같은 문자가 적혀 돈과 함께 경사의 의미를 더하는 마음의 표시다. *참고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흰 봉투는 중국에서 죽은 사람에게 전하는 조의금으로 주로 사용된다.
나는 홍빠오를 처음 받고 화려함에 놀랐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사실 돈봉투가 아닌 부적으로 착각했다.
어릴 적 태권도 학원에서 받은 노란색 학원비 봉투, 속에 종이를 덧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던 하늘색 봉급 봉투, 군부대에서 받아본 하얀색 위문편지 봉투, 살면서 다양한 봉투의 색을 봤지만 그중 홍빠오는 가장 화려하고 인상적이었다.
나는 해맑은 아내 표정을 보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돈이 들어간 봉투란 걸. 자동 반사적으로 내 입에선 "씨에씨에"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린 듯 사촌들은 이방 저 방에서 우리를 찾았고 결혼을 축하한다며 덕담과 함께 홍빠오를 건넸다. 마지막 장인어른이 건넨 홍빠오는 매우 두툼했다. 오븐에 갓 구운 빵처럼 부푼 봉투를 보고 속에 장문에 편지가 있을 줄 알았다. 봉투 속은 마오쩌둥이 그려진 빳빳한 자주색 지폐로 가득했다. 족히 100장 정도 돼 보이는 양이었다. 그동안 타지에 나가 있는 딸을 아끼고 보살펴준 고마운 답례라 하셨다. 나는 너무 많은 현금에 놀라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저녁을 사려 카운터 앞에서 씨름하는 사람 마냥 "아버님 넣어두세요. 괜찮아요. 괜찮아요."를 한국말로 반복했다. 홍빠오를 마다하는 한국인을 보고 가족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결국 나는 장인어른의 성의를 받았고 아내는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봉투를 한참 바라봤다.
나는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를 눈빛으로 날린다. 그리고 캐리어 깊숙한 곳에 봉투를 숨겼다.
이후에도 중국을 들릴 때면 장인, 장모님은 용돈을 홍빠오에 담아 주셨다. '다이어트 성공 기념', '설날 기념' 등 다양한 주제로 용돈을 전해주신다. 나는 매번 감사하게 생각하며 받은 봉투는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둔다. 장인 장모님의 따뜻한 의미를 간직하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다.
강남 웨딩 호텔에 도착해 신부 측 카운터에 축의금을 전달한다. 카운터에서 봉투를 열어 액수를 확인하던 사람은 봉투와 나를 번갈아 확인한다. 내가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 그는 "식권 몇 장 드릴까요?"를 외국어로 말할지 한국어로 말할지 고민하는 눈치다. 내가 "식권 1장만 주세요."라고 말하자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식권을 건넨다. 지인의 결혼식을 마치고 뷔페식 연회장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며칠 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인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많은 축의금 봉투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잊지 않고 찾아줘 감사하다고. 나는 봉투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시 한번 그들의 결혼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