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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레린 Clairene Oct 28. 2024

어디로 사라졌을까?

선물 받은 명품지갑을 찾아서

“어, 어디 갔지?”

지인과 약속이 있어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남편에게 선물 받았는데, 내 명품 지갑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일단 급한 대로 지갑도 없이 빈털터리로 차만 끌고 외출을 했다. 그날은 다행히 내가 얻어먹는 자리였다. 집에 와서 다시 새 지갑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새로 선물 받은 명품지갑을 잃어버렸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고 담담했다.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걱정이 안 되지? 나이가 들어 ‘깜박’ 하는 일이 늘어서 그런가?’ 정말 물건을 분실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이런 게 나의 연륜이겠지?(으쓱)’ 다소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그 예쁜 지갑은 멀리 가지 않고, 집구석 어딘가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에이, 설마 어디 갔겠어? 집 어딘가에 있겠지.’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걱정보다는 외려 ‘귀찮음’이었다. 나의 현금과 모든 신용카드들, 신분증들까지 선물 받은 명품지갑으로 모조리 입주시킨 지 고작 2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남편 할부 결제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남편이 알면 얼마나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볼까? 빨리 찾아야겠다… 장 볼 때 불편해서 어쩌지? 하필이면 돈 쓸 일이 많은 때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런 현실적이나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


갑자기 친정 엄마가 이틀 뒤 우리 집에 와서 당분간 머무르게 되어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엄마는 나와 달리 깔끔한 게 중요한 성격이라,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지저분한 집을 정리하고 청소를 해야 했다. 엄마가 주무실 아늑한 공간도 마련했고, 엄마가 좋아하는 먹거리를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며 장을 보았다. 다행히도 카드 결제가 더 이상 없는 것을 보니, 지갑은 분명 집에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 가방을 샅샅이 뒤지고, 내 옷 주머니를 모두 까보아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 그 지갑은 미니 지갑처럼 작아서 내 작은 손에도 쏙 들어와 사용하기 참 편했는데, 막상 찾으려니 작아서 보이질 않았다. 일단 급한 대로 예전에 쓰던 같은 명품 브랜드의 낡은 카드지갑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신용카드를 빌렸다.


엄마 눈에는 내가 너무 태연해 보였나 보다. 며칠이 지나자, 엄마가 물어보셨다.

“얘, 넌 불안하지도 않니? 지갑 찾았어? 왜 찾을 생각을 안 하니?”

“어딘가 있을 거예요. 아직까지 카드가 결제되지 않았잖아요. 그럼 집 안에 있거나, 아니면 지갑을 주운 사람이 지갑만 ‘슥삭’하고 신분증이랑 카드는 버린 게 아닐까요? 저도 집안을 몇 번이고 찾아봤거든요?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해요. 다시 한번 찾아볼게요.”

“그럼, 카드사에 전화해서 정지시켰어? 신분증이랑 카드는 다시 신청하고?”

“아녀요. 아직요.”

“얘가 왜 이리 느긋해? 애가 겁도 없어”

엄마는 내 변명이 걱정되셨는지 잔소리를 1단부터 시작하셨다. 결국,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내 새 지갑을 찾지 못했다. 엄마는 카드를 다시 받을 때까지 엄마 카드를 계속 쓰라고 허락해 주셨다.


며칠이 지나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계속 걱정이 되셨나 보다.

“얘, 내 카드는 언제 줄 거니? 지갑은 찾았어? 최 서방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

'나, 이렇게 느긋해도 되는 건가?' 순간 의문이 들었다. 내가 대범한 성격이긴 하지만 너무 대범한 것 같았다. 남편이 해외에 있다 보니 들킬 염려가 없어서 그런가.... 뒤늦게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날 장을 보면서 돌았던 동선을 생각해 내려 애썼지만 머리가 굳어서인지 시간이 지나서인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카드 결제내역을 다 뒤져서 시간대별로 배열해 보고, 매장을 모두 둘러보기로 했다. 결제했던 장소는 총 여섯 군데였다. 나의 작고 예쁜 형광연두색의 명품 지갑을 찾아서 동네 도서관부터 다이소 매장을 거쳐 생협 매장과 한살림 매장, 동네 마트, 그리고 반찬 가게 두 곳과 주차했던 곳까지 온 동네를 돌았건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지갑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고 대답했다. 다이소 매장 직원분은 분실물이 들어오면 기록을 남기고 112 분실물 센터로 보내는데, 그런 특이한 색의 지갑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확인해 주었다.


‘아, 결국 내 지갑을 찾으려면 경찰서 분실물 센터까지 가야 하는구나! 너무 귀찮아.’ 그런데, 새 명품 지갑을 발견한 사람이 과연 센터에 신고를 할 것인가, 아니면, 신분증과 카드만 버리고 지갑은 가져갈 것인가 생각해 보니, 후자일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112 유실물 센터를 찾아 들어가 신고된 내역을 10페이지나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내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내 새 지갑을 잃어버린 지 만 3주가 되어 분실물 신고를 했다. 그때서야 새 지갑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이 나를 덮쳐 왔다. ‘지갑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딱 일주일만 기다려 보자. 정 안되면 똑같은 걸 다시 사면되지. 아까워할 필요 없어, 편히 생각하자.’ 하고 결정을 내리니 불안했던 마음이 다시 편해졌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엄마가 오셨을 때 함께 먹으려고 사놓았던 참외가 상한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엄마가 계시는 동안 몇 개 먹지 못해 아직도 잔뜩 남아 있었다. 아까웠다. ‘아. 장 보는 날 트럭에서 참외도 샀었구나. 진짜 너무 바빴어. 바쁘니까 자꾸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 같아. 이제부터는 조절을 하자.’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검정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상한 참외들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검정 비닐봉지 밑바닥에 형광연두색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남편에게 선물 받은 내 명품지갑은 4주 동안 냉장고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 고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참외를 사면서 이미 양손에 짐이 많아 지갑을 봉지 안에 같이 넣어놓고는, 집에 와서 깜박한 것이었다!!! 봉지에서 꺼낸 지갑은 정말 시원해서 이것이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내 처음 예상대로 집에 있어서 참 다행이었지만, 웃픈 상황에 기가막혀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그깟 만원 어치 참외가 썩은 것은 아까워하면서 선물로 받은 수십 만 원짜리 명품 지갑을 잃어버린 것은 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소소한 행복에만 집중한 것 같다. 김난도 교수가 강조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에 나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맞춰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작은 것들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큰 것에는 별 관심을 쓰지 않고 당연하게 여긴 것이 아닐까.

언제부터일까? 남편의 선물을 ‘선물’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때가… 따지고 보면 내 핸드폰, 내 가방과 지갑 모두 남편이 사준 것들이다. 그런데 나는 가지고 있던 물건이 낡았으니  당연히 남편이 사줘야 하는 ‘아이템’으로 바라본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좋은 브랜드로 구입해 선물로 주는 교환 행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선물이 본래 가지고 있던 이벤트용의 깜짝 선물 같은 감동은 이제 느끼기 어려워진 것 같다. 살 때가 되니 사되, 이왕이면 좀 더 좋은 브랜드로 골라 결제는 남편이 해주는 것으로. 상품권이나 현금을 주고받으며 선물을 주는 기쁨도, 받는 기쁨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물질적인 것들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게 된 것원인인 것 같다.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명품이나 값나가는 상품에는 별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쇼핑에 대한 욕구도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그저 필요한 것을 살 뿐이다. 그러니 명품 선물을 받더라도 그 상품의 본래 기능에 충실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저 나를 한 순간이라도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물건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의 행동과 나의 경험이기에. 나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이 ‘더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값진 선물을 참 많이 받았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며, 부모님이 해주신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는 이미 한참 전부터 아이 생일에는 생일 파티를 해주거나 함께 여행을 하는 것으로 선물을 주고 있다. 그 순간의 경험이 평생의 행복한 기억 중 하나로 남기를 희망하면서. 내 아이도 처음에는 선물을 바랐지만, 그때는 너무나 원했던 물건이 1~2년만 지나도 필요 없어지는 예쁜 쓰레기가 된다것을 알게 부터는 경험을 선물로 생각할 줄 아는 어린 아이가 되었다.


선물 분실 사건을 통해 선물의 의미를 다시금 마음에 새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선사한 물건이 아닌가? 월급쟁이 짠돌이 남편이 나름 큰맘 먹고 거금을 털어 사 준 명품 선물인데, 내 예쁜 형광연두색 명품 지갑에 대해서도 좀 더 애틋한 감정을 가져야겠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선물을 해왔다. 금년에는 어떤 작은 선물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줄까 고민이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 소확행 :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행복에 대한 과시와 강박으로 변질됐으며, 이제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가 '소확행'을 대체할 것이라고 했다. 사건, 사고와 위협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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