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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Nov 11. 2021

안내견 옆의 우는 여자


오늘 아침엔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보이는 것이 부쩍 많아지기에 내가 기민해졌다고 좋아했다. 보이는 것이 많으면 무제노트는 더 빠른 속도로 채워진다.


월요일부터 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다. 어제 동생은 내가 출근한 동안 집에 혼자 있으면서 기분이 우울했다고 털어놓았다. 차가운 밤공기에 퍼져 나오는 입김과 함께 나는 그것이 특별히 이상할 것 없는 감정이라고 했다. 처음 서울에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그런 감정이 ‘우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선 그 부단한 부정이 우울을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인 데서 기인했다는 것을 안다.


그런 날들에 매번 시달린 결과 이것은 병적인 감정이라기보단 누구나 살면서 겪는 감정의 시들시들함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매일매일을 생각보다 행복하게 살아가진 않는다. 어쩌다 감정이 꼭대기에 오르면 남아있는 것은 하강 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 출근시간에 지하철 풍경에 젖어있다. 지하철 안내판엔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글이 있다. 더 많은 것을 보다보니 알았는데 그 글도 주기적으로 바뀐다. 그 주기가 얼마나 되는지 발견할 만큼 그 글을 지나갈 때마다 쳐다본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감격'을 원한다, 요즘 세상엔 감격할 일이 없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기다란 형광등이 꽂힌 지하철 역사의 낮은 천장을 향해 올라가면서 내가 감격했던 때는 언제인지 생각해보았다.


그 역시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하철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엎드려있는 덩치 큰 노란 개가 보였다. 저는 시각 장애인 안내견입니다. 만지지 말고, 사진찍지 말아주세요. 개는 그렇게 적힌 손잡이용 옷을 입고 몹시 처진 두 눈으로 주인의 곁에 앉는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개를 쳐다보는 동안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쳐본  없는 짐승이 벌떡 일어나더니 주인 곁을 파고들었다. 나에게서 나는 소리에 불안했던 것인지 개는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다. 주인은 내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을테지만 미소를  얼굴로  괜찮다,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 개를 쓰다듬고 토닥였다. 모든 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무엇이 오든 두렵지 않다는 듯이 그녀가 개를 쓰다듬었다.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보는 그녀의 눈에 나는 감격했던 모양이다. 우울에 젖었고, 환희 따위는 거리가  날에도 감격은 흐릿한 형태와 회색 몸집으로 올라왔다.


얻은  별로 없고, 남의 말을 듣지 않은 아집의 대가로 몸에 병만 남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아침이었다.  와중에 윤상의 ‘행복을 기다리며 들었다. 이것은 우울이 아니라며 부정했던 시절에도 나는 행복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 행복이란 그렇게 기다린다고 쉽게 와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를 찾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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