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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r 31. 2019

세인트 폴 대성당 전망대에 오르다


  9월 런던 햇살은 분명 따사로웠지만 나는 남방에 카디건까지 입었는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싸늘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도 캐리어에 재킷을 넣을지 말지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놓고 온 것을 후회했다. 그래도 그나마 챙겨 온 스카프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지나가는 민소매 차림의 몇몇 외국인들에 비하면 내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카프를 목에 칭칭 감고 다녔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모습은 사진 속에서 봤던 대로 역시 웅장했다. 일요일에는 원래 전망대 관람만 가능하지만 대신 미사에 참여하면 그동안에는 앉아서 성당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고 했다(2016년 9월 기준, 현재 일요일에는 전망대에 올라갈 수 없다).


  성당 입장료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애초에 내부 관람은 말고 전망대만 오를 목적으로 온 것이긴 했지만 막상 오니 내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미 예배는 시작한 후였다. 그렇다고 시간 제약이 많은 단기 여행자에게 같은 장소를 다른 날 또 방문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우리는 중간중간 성당 안 출입이 가능한 시간까지 기다린 후, 조심스럽게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문을 통과하니, 마침 웅장한 성당을 배경으로 성가대의 찬송가 소리가 천장에 맞닿아 은은하게 퍼져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예배드리면 없던 믿음도 생길 것 같아.”


  나는 옆에 있는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있으니 마치 희미해진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예배당 맨 뒤에 서서 고개를 들어 넋 놓고 내부를 구경하던 우리는 성가대 찬송이 끝나자마자 예배당을 조용히 빠져나와 세인트 폴 대성당 전망대를 오르기로 했다. 보통 전망대라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게 일반적일 텐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걸 보니 그리 높지 않겠구나 싶었다(하지만 실제로는 100m가 넘는 높이에 528개의 계단이 있는 엄청 높은 곳이다.).




  우리는 전망대의 경관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가운데 원형 기둥을 중심으로 낮고 넓게 이어진 계단을 웃으며 걸어 올라갔다.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점점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차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웃기는커녕 서로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어서 계단의 끝이 보이기만을 바랐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한 나에겐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와 달리 우리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갈 때, 계단 바깥쪽으로 중간중간 벤치가 보였다. 아마도 우리 같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알고 마련해둔 것 같았다.


  우리는 벤치에 잠깐 앉아 숨을 고르기로 했다. 가빠진 숨만큼 달아오른 체온에 나는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고 소매를 걷어 올렸고, 남편은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얼마 전까지의 추위는 온데간데없었다.


  “자 이제 다시 올라가 보자!”


가장 꼭대기인 골든 갤러리 전망대에 가려면, 가파르고 무서운..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전망을 볼 수 있는 골든 갤러리 전망대와, 스톤 갤러리 전망대 https://www.stpauls.co.uk/visits/visits/explore-the-cathedral


  힘들게 올라가는 만큼, 전망대 위로 올라가면 분명 엄청난 경관이 펼쳐져 있을 것이란 강한 믿음으로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종착지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525, 526, 527, 528… 드디어 성당의 가장 꼭대기인 골든 갤러리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의 폭은 한 명씩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았지만,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런던 시내가 끝없이 펼쳐지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 멀리 영화 속에 자주 보이던 런던의 금융가도 옹기종기 보이고 런던 아이, 타워 브리지 등 런던 곳곳의 명소가 한눈에 펼쳐졌다. 구글맵으로 뚫어지게 보았던 곳곳의 명소가 마치 증강현실처럼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다행히 화창한 날씨 덕분에 사진보다 더 뚜렷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곳을 가든 전망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힘들게 올라간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등산객들을 또다시 산으로 부르게 만드는 걸까?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정상에서의 풍경을 보니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역시 올라오길 잘했어.’



  고생 끝에 맛보는 풍경이어서 더 그랬을까?

  우리는 왠지 모를 벅차오르고 흥분되는 감정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아 한참을 전망대 위에 있었다. 올라올 때의 숨넘어가던 그 힘듦이 금세 잊혔다. 아니, 그 풍경 앞에서는 잊힐 수밖에 없었다.







초보 여행자의 마음으로 마냥 경관에 취해,

성당 안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요.

언젠가 다시 런던을 여행하게 된다면

그땐 좀 더 느긋하게 돌아다녀볼 수 있기를

늘 마음으로 다짐하곤 합니다.


성당에 가기 전 들렀던 '브릭 레인 마켓',

그리고 성당 전망대에서 내려온 후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만나보세요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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