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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07. 2020

낫 프리 디자이너

프리랜서는 프리 한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프리 하지 않다.


기존에 쓰던 글을 가지고 브런치 북을 만들었더니, <생계형 디자이너가 뭐 어때서>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매거진 수록글이 쏙쏙 빠져나갔다. 20화를 제한(?)으로 둔 덕에 그동안 썼던 글 중 나름대로 선별하고 카테고리화 해서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애초에 계획하고 쓰기 시작한 글은 아니었지만 그간 틈틈이 써놨던 덕분에 브런치 북 만들기는 수월했다. 다행인 건가? 아무튼.

큰 틀은 기존 매거진의 내용들이었지만 뭔가 제목다운 제목을 써보고 싶어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너무나도 평범하고 무난한 제목으로 제출해버렸더니 지금 이 글이 수록된 매거진이 허해졌다. 생계형 디자이너의 고단한 일상? 따위를 기록하고 싶어 시작했는데 브런치 북에 글이 빠지고 나니 뭔가 숭덩숭덩 튼실한 내용물이 빠져나간 느낌. 그래서 이름을 다시 바꾸었다. 심플하게. ‘낫 프리 디자이너’으로. 프리랜서의 프리는 ‘free’. 말 그대로 자유를 뜻하는 단어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프리 하지 않으니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어보는 제목.



프리랜서는 프리 한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프리 하지 않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 안 하는 치명적이고 강력한 장점이 있긴 하지만, 물리적으로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뿐이지 사무실(집)에서 일하는 건 똑같다. 아, 잠옷 바람으로도 일 할 수 있는 편안함은 있겠다. 화장 따위 안 해도 그만인 것도.

정작 프리랜서 당사자인 나는 프리 하지 않다고 느끼는 데에 반해 상대방, 그러니까 클라이언트는 생각보다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예를 들면 본인 퇴근 시간 즈음에 수정안을 툭 던져 주면서 내일 오전에 볼 수 있는지를 묻는다던지, 금요일 오후에 수정안을 주면서 혹시 월요일 오전 중에 가능한지를 묻는다던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나의 주말은 일과 함께다.

직장인에게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라는 공식이 있지만(공식적으로는 말이다) 대부분 프리랜서에겐 쉽게 반영되진 않는 편이다. 스스로 이 시간을 다스리지 못하면 개미가 되어 일만 하다가 지쳐서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프리랜서 괜히 했어’라고 하면서.

당연히 프리랜서는 프리 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프리랜서지.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못하지만 분명 평일 대낮에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다. 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북적거리는 주말에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 보지 않아도 된다. 평일에 가면 되니까. 주말마다 핫한 카페가 있다면 나는 평일 한적한 시간에 가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안 가서 그렇지.)



다행히 이번 주말은 한가하다. 심지어 금요일에도 일은 오전에만 잠깐 하고 말았다. 두어 시간 했나? 요즘 직장인으로 치면 탄력근무인 셈이다. 모든 클라이언트에게 시안은 다 넘겼으니 적어도 피드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자유다. 자유다! 자유다!... 정말 자유다... 근데 정말 자유인가?

프리랜서 생활 6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솔직히 이렇게 종종 찾아오는 자유로운 시간을 있는 그대로 만끽해본 적은 별로 없다. 바람 쐬러 어딜 나가더라도 돌아오는 길엔 항상 같은 고민에 빠진다.


이 자유가 계속되면 어떡하지




아무런 일도 없는,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즐거우면서도 늘 불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늘 따라다닌다. 그래서 이미 보낸 시안인데도 다시 한번 열어서 조금 더 만져본다던가, 끊임없이 다양한 창작물들을 리서치하며 보고 배운다던가, 이것도 아니면 괜히 다른 일거리가 뭐가 있을지 찾아본다던가 하는 일이 반복된다. 올 한 해는 이미 충분히 일했는데도.

거의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했는데도 잠깐의 비는 시간 때문에 찾아오는 불안감은 생각보다 크고 강력해서 그동안의 성과나 노력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 많은 프리랜서들이 겪는 고충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미 잘해왔는데, 잘하고 있는데, 과연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한 마음들.

토요일 오후의 한가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사실 불안함을 느낀다. 컴퓨터 부팅 한 번 하지 않아도 되는 오늘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로운 시간이 계속되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했다. 고민한다고 해서 뚜렷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프리랜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불안한 마음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마음이 아닐까. 매번 줄타기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게 프리랜서의 숙명이라면, 그때그때 찾아오는 불안감도 가볍게 이길 수 있는 강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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