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주어디가 Apr 15. 2023

나는야 빌더(Builder) 꿈나무

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를 졸업했다!

작년부터 기대하던 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가 오늘 막을 내렸다.

2023.03.13~04.14.

5주간 진행된 목조건축 수업


처음부터 목조건축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목조건축이 뭔지도 모르고 신청한 듯.

2022년 겨울, UB 짬뽕 맛집에서 짬뽕을 후루룩 먹으며 한국에 돌아가면 뭐 하고 싶냐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1.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 말고,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

2. 나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옆에 있던 써니님이 그럼 해비타트에서 하는 목조건축학교를 들어가 보라며 추천해 주셨다.


목조건축은 아무것도, 1도 몰랐고 한 달 동안 뭔가를 할 수 있겠구나..라고 아주 단순하고 깔끔하게 생각하게 생각하고 바로 신청!

한국 들어와서 별생각 없이 즐겁게만 지내다가 입학 전 해비타트에서 공지사항을 하나둘씩 전달받으면서 배경 지식이 1도 없는 상태로 입학해도 되는 것인가.. 하고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공학용 계산기와 몇몇 가지 개인물품만 챙겨서 용감하게 천안시 목천읍으로 향했다.


첫날 맨 뒷자리에 앉아(앞줄부터 나이순서대로 앉음) 58기 14명의 명단과 함께 앞에 앉아계신 형님들 뒤통수를 보며 내가 이 분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게 될 것인가 궁금해했더랬다.

5주가 지난 지금은 놀랍게도 이젠 우리 형님들 한 분 한 분의 특기를 줄줄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첫날 받은 아주 두툼한 두 권의 이론 책-

교재를 스스슥 훑어보니,

두.둥.! 머릿속이 하얘졌다.

목조건축. 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나 여기 왔구나 ㅋㅋㅋ 역시 아무것도 모르면 사람이 용감해진다.


중요도에 따라 강약조절을 해가며 약 7일 동안 이론교육(일반이론+시공이론)을 모두 마쳤다.

교육해 주시는 팀장님의 수업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으므로 질문 따위는 할 수 없었고, 건축 용어 하나하나에 익숙해지기, 그리고 구조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내가 저 책을 미리 받았으면 좀 더 좋은,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흠


어찌어찌 이론 수업과정이 끝나고, 스케치업이라는 3d 프로그램을 살짝 만져봄.

하나같이 처음 접하는 것이다 보니 어리버리하고 벙찌고 총체적 난국이다.


스케치업을 살짝 맛본 후에는 14명이 2조로 나눠서 실제로 짓게 될 6평 주택의 1/10 사이즈 모형을 반으로 쪼개어 각각 하나씩 만들어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별로 모형을 만들 때 가장 큰 멘붕이 왔었는데, 이유인즉슨 2~3명씩 벽을 나눠서 만들기로 했는데..  다 같이 뭐시기 상의도 없이 이렇게 쪼개져서 바로 각자 계산하고 재단하고 벽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ㅎ


여기저기서 이건 뭐가 이상하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고, 나는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합의되지 않은 것 같은 약속들이 막 오가고... 처음 접해본 도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봐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게 되는 신기한 마법 같은 일이 나한테만 나타난다. 그 와중에 다른 분들은 알아서 척척 해나간다.

 

문제는 단순히 내가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맡은 부분이 없으면 집 전체가 완성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껄껄

전체 결과에 영향이 없었으면, 나는 나중에 혼자 천천히 해봐야지 하고 그냥 뒀을텐데 그것도 안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른 채 벙쪄서 남들 움직이는 손만 보고 있는 나를 본 우리 조장님(a.k.a 당근이 아버님)이 괜찮다며 천천히 하나씩 이해하면서 하면 된다고 말해주셔서 간신히 정신 움겨잡음.

bottom plate에 장선을 표시하고 스터드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리 없지. 어디선가 오류가 발생하고 하나도 맞지 않는다. 으아아아아악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내가 맡은 벽과 비슷한 구조를 만드는 회장님의 노트를 살짝 참고하려고 말씀드렸는데 나의 흔들리는 멘탈과 눈빛을 느끼셨나 보다. 전직 경력을 한껏 살려서 부족한 사람에게 차근차근 하나씩 계산하는 것을 알려주셨고, 무엇보다 나는 수학식을 잘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A조와 B조는 모형을 만들어냈다.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ㅎ

이론교육 시간 동안 윤팀장님은 협동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셨었다.

집은 혼자 지을 수 없으니, 특히 해목교에서는 목조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자들이 함께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공구들을 사용하며 집을 지어야 하니 협동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한 명 한 명 실수를 경험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머리를 맞대면서 협동 비스무리한게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약 2일간 모형을 만들었을 뿐인데 우리 조 선생님들 각자의 주특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뭔가에 하나씩 두각을 보이셨고, 어려운 사람은 '잘 돌봐드려야 한다'던 그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걸...  알수 있었다. ^^



3주 차부터 교실을 나와 진짜 집짓기 시작!

이론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은 정말 다르다.

의외의 복병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는데, 나는 정확한 치수로 재단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끔 내 눈은 숫자를 자기 맘대로 읽는 재밌지도 않은 묘기를 부린다 ^^

집은 이동식으로 해목교 학생들이 얼추 만들어두고 대상자가 정해지면 집을 옮겨간 후 설비, 내/외장 마감(페인트칠, 타일 등)을 마무리한다.

알고 보니 우리가 지내던 목천읍은 벚꽃 맛집!

딱 벚꽃 개화기와 교육기간이 잘 맞물려서 약 2주간은 벚꽃 보며 산책도 하고 봄을 즐길 수 있었다.

밤에 보는 벚꽃이 또 한 분위기 하는데, 해 진 후로는 너무 어두워서 좀 아쉬움(가로등이 많이 없다)

간단한 월 하나 짜는데 뭐 이리 시행착오가 많았는지..!

하나하나 정확한 계산만으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면만 본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음.

그러고 보니 기초부터 마감까지 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완벽한 게 있었나 싶다.

이 와중에 한 가지 위안은, 지나고 보니 실수하고 바라시(수정)했던 것들이 기억에 더 잘 남는다는 것ㅎ

작업공간

초반 골조 작업과정은 목재를 재단하고 월 올리고 꼬매는 등의 힘쓰는 일이 많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파트. 그리고 마침 가장 건조하고 더운 날씨에.. 내 피부는 바짝 타버렸지 뭐야

그리고 지붕에서 일하는 건 쫄깃하고 시원하고 재밌고 다함.

바로 근처에 저수지가 있어 산책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

오고 가며 산책하는 당근이도 만나고, 캠핑의자 펴놓고 노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캔.

일 년 중 가장 좋은 때에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지낸다는 것은 꽤나 큰 행운이다-

그리고 2023년 봄은 내가 가장 잘 보냈던 것 같다! 껄껄

비 오는 날엔 목조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구입할 수 있는 NS Home과 천안 두일공구에 방문해서 목조건축에 필요한 다양한 자재들과 공구들을 둘러봤다. 이쪽 분야도 아주 신세계다.

형님들 각자 알차게 쇼핑하시고 나는 스피드 스퀘어만 구입!

두일공구에서 전동드릴세트를 사고 싶었는데 바로 결재하기에는 최소 30만 원 이상이라 우선 샤오미 전동드릴 구입하고, 차차 나의 영역을 넓혀보는 것으로 타협했다.

현관도 다른 외벽과 똑같이 시멘트 사이딩을 하려다가 포인트로 시다 사이딩 고고

마감 덮기 전 우리 조 다 같이 시공 책임 서명도 남겨보고 ㅋㅋ 그리고 이 집에 거주하시실 분은 조금씩 더 행복해지길!

B조에서 부엌 창문 앞에 붙이는 방수 석고보드를 잘 따셨길래 인스타 느낌 내봄 캬캬

A조 형님들과-


두 팀장님들과 58기(당근이까지) 다 같이!

마지막날 매력 넘치시는 총무님(a.k.a 장형)의 센스가 돋보인 단체티를 입고 마당지킴이 당근이까지 단체샷!

우리 조가 완성한 현관문과 욕조로 이어지는 부분.

눈 깜짝할 사이(약 13일)에 이걸 다 완성했다는 것이 참 신기방기하다.


함께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잘 보완해 가며 지었다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었고, 실수도 많고 바라시도 많았지만 얼굴 붉히지 않고 시기적절한 농담으로 분위기 풀어가며 즐겁게 일했다는 것. 그리고 나도 그들의 일원으로 있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우리를 지도해 주신, 백번 물어봐도 화내지 않는 도인 같은 김팀장님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 같다.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서 해비타트 봉사활동 모집하면 내 포치 차고 참석하겠다고 다짐! 그리고 해비타트 직원들이 다 그런 것인지 아니면 충남세종지회 분들이 유독 더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참 좋은 분들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게 참 멋있었다.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남아있었구나~ 하는 반가움과  나도 더 멋진 사람이 되어 받은 만큼 이자 얹어서 나눠야지! 하는 생각. 나자신아 지금 이 감정과 생각들 잊지마



이번 기수에는 나 포함 여학생이 2명이었는데, (이는 그간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5주간의 생활을 더 풍성하게 했다.


수업 내용 중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을 확인해보기도 하고, 목조건축이 맞는 것인지, 과연 이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온갖 주제 넘나들었다.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꺼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다른데 입 밖으로 꺼내 고민하고 이야기하며 나 스스로를 좀 더 알게 된 면도 있고,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참 반가웠다. 이런 대화 꽤 오랜만- 그리고 나도 순례길을 걸으며 더 치열하게 생각해 보겠다..!


이와 더불어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오신 형님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경험들이 곁들여져 아마도 내 안식년동안 실컷 생각하게 될, 정답 없는 고민의 시작이 이쯤 슬슬 시작되고 있었다.


인디언밥 형님이 어떤 책에서 읽었다면서 들려준 이야기 중에 ‘우연에 행운이 더해져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목조건축 배운 것으로 당장 집을 짓겠다, 혹은 바로 빌더가 되겠다 그런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에 어떤 것도 의미 없는 일은 없었으므로 이 경험 또한 어디론가 이어지리라 믿고 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나무집 짓는거 진짜 재밌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손발이 착착 맞아갈때의 희열과 벽 구조가 딱딱 맞아서 깔끔하게 꿰멨을 때의 뿌듯함- 그거 완전 내스타일임. 그래서 재밌는 것을 수단으로 더 재밌는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의 안타까운 기억력을 배려해 졸업하자마자 바로 기록해 보는 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