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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주어디가 Aug 07. 2023

남들 다 가는 거기 나도 가본 이야기 (下)

산티아고 순례길 (레온 - 끝, 묵시아/피스테라)



2023.06.03. (Sat)

Day 24. Leon - Villar de Mozarife (21km)


원래 10km를 더 가려고 계획했으나, 늦게 출발하기도 했고 칼스가 방 있다고 해서 끝까지 고민하다가 중간에 숙소로 들어감. 호스트는 친절했고, 한 방에 침대도 적어서 쾌적했지만 너어무 유럽 으르신들이 많았다. 

오늘 20km 걸었으니 내일은 아스트로가까지 30km 걸어가야 한다^^

이날 칼스랑 걸으며 그 아저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아,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됨. 그러고 내 이야기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며 길 위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꽤 큰 위로가 되었다. 레온에서부터 뉴페이스들이 보이기 시작함

 




2023.06.04. (Sun)

Day 25. Villar de Mozarife -  Astroga (31.39km)


멀리 가야 하기 때문에 좀 일찍 일어남. 초반 15km 빠르게 걷다가 한 마을 초입 카페에서 커피+크라상 먹고 쉬는데 그 쉬는 잠깐동안 햇빛 찐득하게 받으며 아주 꿀잠 잠. 다시 길을 떠나는데 이 마을에서 중세 유럽 복장을 한 마을 사람들이 다 길거리로 나와 마켓을 열었다. 볼거리는 많았지만 살 것은 많지 않았다. (앞으로 여행 다닐 땐 배낭을 메고 다녀야 할 것 같다. 물욕이 싹 사라짐) 

이날 갈래길이 많았는데 어쩌다 보니 가장 먼 길들만 선택해서 다님. 그러다 마지막에 한 도네이션 마켓을 만났다. 온갖 과일과 먹을 것들을 잔뜩 마련해서 순례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수박은 한국만큼이나 달았고, 나무그늘 아래 해먹은.. 일어나기 싫었다. 

아스트로가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었고, 쉽지 않았다. 가우디가 건축했다는 주교궁 둘러보고 케밥 먹고 8시쯤 숙소 들어갔는데 같은 방을 쓰는 3명이 벌써 불 끄고 누워있어서 나도 강제취침.ㅎ



2023.06.05. (Mon)

Day 26. Astroga - Focebadon (25.19 km)


어제, 오늘 진짜 걷기 어려운(싫은) 힘든 날-  오늘은 13km만 걷고 중간에 쉴까 했는데 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걷느라 25km다 걸음.

미처 몰랐는데 오늘 코스는 꽤 높은 언덕을 지나야 하는 날. 그리고 비가 내리다 그치다 .. 계속한다. 폰세바돈은 언덕 아니고 산 꼭대기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우비도 입기 싫어서 그냥 비 맞고 올라갔다. 그리고 나한테 냄새가 나는 것인지 뭔지 똥파리가 겁내 꼬임 -_- 그래서 더더더 짜증 남.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함)  힘든데 왜 목적지가 빨리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짜증으로 중간에 소리 지르면서 올라옴. 비 맞으며 한참 올라가다 알베르게 도착하니 딱 비 그침ㅎ 아오 씻고 빨래하고 저녁으로 순례자 메뉴 고기 엄청 먹음.


오늘의 이 힘듦과 짜증을 생각해 봤다. 이 길이 끝난 후에도 난 그냥 똑같으면 어쩌지, 나는 별로 바뀔 게 없을 것 같음.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어디까지 갈지, 어디서 자야 할지, 그리고 뭘 먹어야 할지..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많이 지쳤다. 이제는 당진 집에서 그냥 뒹굴거리며 넷플릭스나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도 곧 길 위에서 내 바닥을 보는 일이 곧 오려나- 일기도 쓰기가 싫은가 보다. 아 글씨 쓰기 귀찮음. 매일 술만 느는 것 같고, 살은 많이 안 빠지는 듯- 내일 도착지까지 거리랑 숙소도 봐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음 ㅠ


(+밥 먹고 일기 쓰고 빨래 걷어서 들어가려는데 같은 숙소에 있었던 yj언니 처음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무지개 봄)






2023.06.06. (Tue)

Day 27. Foncebado - Molinaseca (19.33 km)


YJ언니랑 이야기 하면서  내려가는 길. 산 내려가다 만난 인스타 갬성 카페에서 귀염둥이 강아지도 만나고 맛있는 케익도 먹으며 슬금슬금 거북이처럼 감. 그리고 언니랑 헤어지고 나서는 곧 비 올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신나는 노래 들으며 후다다닥 내려감. 몰리나세카에 내려가니 굵은 빗방울 막 떨어져서 오늘은 여기서 시마이! 그만 걷자. 



2023.06.07. (Wed)

Day 28. Molinaseca - Villafranca del Bierzo (32.12 km)

하루종일 계속 졸리다. 카페에서도 좀 졸고, 가는 길 잠깐 들른 성당에서도 앉아 있다가 쿨쿨 잘뻔함. 맘 같아선 어디 자리잡고 누워서 계속 자고 싶다. 하루종일 비 맞으면서 추적추적 걷다가 결국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목적지 도착. 내가 걸은 날 중에 가장 늦게 도착한 날이었다. (이날 걸은 길에 주인이 없는 체리나무가 짱 많았다. 평소 같았으면 신나게 따먹었을 텐데 그럴 에너지는 없어서 한주먹만 먹음ㅎ)


도착해서 보니 여기가 스페인 하숙을 찍었던 마을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알베르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뭐 그리 지쳐 보였는지 지금 정말 알 것 같다) 그리고 알고 보니 나는 30km를 넘게 걸은 것이었더랬다. 대충 지나가다가 평 좋은 알베르게를 들어갔는데 뒤늦게 들어온 내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방 하나를 혼자 배정해 주셨다. 와우! 오늘도 하루치의 소소한 위로를 받았다. 매일매일 뭐든 작은 위로가 하나씩은 있다. 그럼에도 아직 감사하지 못하는 나.. 난 왜 여기에 있는가.. 아주 많은 생각이 드는 시기다.

다 귀찮고 내일 아침에는 어디까지 가야 하나.. 이거 생각하는 것도 다 귀찮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착할 거고 나는 할 수 있다! 





2023.06.08. (Thu)

Day 29. Villafranca del Bierzo - O Cebreiro (27.7 km)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계속 오고 있다. 그래서 난 더 느지막이 움직임. 

알베르게에서 거의 마지막에 나왔고, 가는 길에 커피마실 곳 없나 둘러보는데 칼스가 뒤에서 아는 척을 해온다. 비슷하게 움직였나 보군- 계속 겹치는군. 어제 다리를 안 풀어서 그런지 오른쪽 다리 근육이 아파서 초반에는 다리 절면서 걸음 -_- 그러다 한 카페가 나와서 들어갔는데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에 드럽게 맛없고 비싼 스페인식 오믈렛과 커피를 줌. 그래서 후다닥 먹고 와이파이 사용해서 데이터 충전하고 바로 나옴. 계속 슬금슬금 올라가다가 좀 조용한 카페가 있어서 거기서 다시 자리잡고 앉아 콜라 마시면서 일기 쓰고 있는데 칼 또 만남. 왜 이런데 숨어있냐고ㅋㅋ 그리고 토니라고 순례길을 걸으며 그림을 그리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이미 2시쯤 O cebreiro를 향해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는데, 왜 그 구간이 힘든 곳이라고 하는지 알았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높은 언덕도 더운 날씨도 아닌 바로 길 위에 있는 말인지 소인지 모를 질펀한 똥이 길비온 산길을 점령하고 있는 것과 똥파리들. 웩 

그래도 오세브레이로 마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아주 장관이었다. 뮤니시팔 알베르게 체크인 했는데 나중에 보니 칼은 옆침대 배정받음. 그리고 이 알베르게에서 아는 사람 많이 만남. 메뉴델디아 먹으면서 윤주랑 통화하고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함. 




2023.06.09. (Fri)

Day 30. O Cebreiro - San Cristovo do Real (26 km)


아침 7:30분에 일어났는데 비내림(알고 보니 안개가 더 많았음) 

채비를 마치고 마을에서 아침까지 먹고, 8시 30분 넘어서 슬슬 출발. 내려오는 길 곳곳에 풍경 너무 멋있었고, 어제 윤주랑 통화한 대로 나는 여기 왜 왔을까 고민하고, 하루종일 비 오고- 또 여기 왜 왔을까 고민하면서.. 그래도 결국 하루 걸을 할당량은 다 채웠다.

숙소까지 가는 길에 비가 엄청 거세게 와서 우비를 썼는데도 속옷까지 다 젖음. 찻길을 따라 걷는 루트였는데 차도 많이 없고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옆에서는 강물이 거세게 흐르고 있길래 미친 사람처럼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면서 걸으니 속 후련해지면서 기분전환에 아주 그만이었다. 

거센 비를 맞으며 인적 드문, 온갖 풀들로 가리어진 길을 헤쳐 지나는 모험 끝에 아주 작은 마을에 위치한 보석 같은 알베르게 찾아냄. 

오늘 이 알베르게 나 혼자임. 그리고 숙소에서 1km 떨어진 곳에서 먹은 저녁메뉴도 아주아주 만족스러움. 기분 좋게 배부르고 알딸딸 취해서 다시 1km 걸어 돌아오는 길 내가 짱이라고 혼자 노래 부르면서 오는데 집 2층 창가에 한 언니가 흐뭇하게 나를 보고 있었음. Buenos noches 말해주고 집으로 후다다가 옴.


새로 리모델링한 것 같은 작은 성 혹은 수도원 느낌인데 나 혼자 쓰고 방에 온풍기까지 있어서 빨래 아주 잘 마르고 조용하고 기분 좋음. 피스테라까지 걸어갈지 차 타고 갈지 아직 고민 중.

지나가는 길 어떤 마을 아저씨가 자기 체리나무를 돌보다가 내가 지나가는 것 보고 체리 따주셨는데 체리에서 아저씨 향수맛이 더 강하게 남




2023.06.10. (Sau)

Day 31. San Cristovo do Real - Sarria (18.72 km)


갈리시아 지방은 가축들도 많고 찐 시골 바이브가 넘쳐서 똥 냄새가 엄청나다. 

사모스는 생각보다 더 작은 마을이었다. 수도원 투어도 하고 여유 넘치는 시간 보내고 다시 걷기 시작.

사리야 도착 4~5km 전에 숲 속에 한 시골집에서 미국에서 온 수잔 아줌마를 만났다. 잠깐 쉬는 동안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누다 까미도 이야기도 했다. 그중에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 등등을 나누다 눈물 한 방울 흘림. 수잔 아줌마의 인간미로 또 한 2시간 정도 나에게 생기를 주심. (그리고 지금도 가끔 연락 주심)


사리아는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마켓은 있음. 샴푸랑 로션 과일 등등을 사고 씻고, 빨래하고, 수박 좀 먹고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다. 내일이 무슨 날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꽃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거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현금으로 100유로 인출하고 그 이후로 카드가 안보임.  



2023.06.11. (Sun)

Day 32. Sarria - Portomarin (22.04 km)


사리아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짱 많아졌다. 다들 새 운동화 신고 가방도 깨끗하다.ㅎ 그리고 나는 아침에 뭐 이리 걷기가 싫은가.. 한참을 느기적거리며 걷다가 중간에 커피 한잔 수혈하고 신나는 노래 들으며 걷기 시작.

어쩌면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일 수도- 이런 내 마음 상태가 나타난 것인지 카드가 도통 없다는 것을 포르토마린 알베르게 도착해서 알아냈다. 다행히 어제 좀 찾아둔 돈이 있긴 한데.. HA.. 망연자실

기분에 잠식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컨디션 관리하자.  이제 도착지까지 100km도 남지 않은 상황에 나는 어떤 행운을 기다려야 하는가. 

길 한복판에서 저렇게 누워서 자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은 저 멀리서부터 아주 놀랄 수밖에 없답니다



2023.06.12. (Mon)

Day 33. Portomarin - Pontecampana (29.43 km)


카드 잃어버린, 버리고 다니는 나의 안일함을 반성하고자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대략 6시 40분쯤 출발. 그리고 거의 30km 걸어서 미리 예약해 둔 알베르게 도착.

그동안 걸으면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강했나 보다. 힘 빼고 경쾌하게 걸어보기로-

그리고 이 알베르게에서 김해 언니들을 만났다. 이 작은 알베르게에 한국인들이 있을까 했는데, 무려 4명이나 만났다. 문자 그대로 엄청 재미있는 언니들이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꺄하하하하

조금 비싸고 건간강 저녁을 먹고, 내일 같이 걷다가 ATM 기계에서 현금을 인출하기로 했다 후후후

하루종일 비 와서 빨래 못함. 결국 속옷없이 바람막이 잆고 걸음ㅎ 



2023.06.13. (Tue)

Day 34. Pontecampana - Arzua (24.07 km)


김해 언니들과 함께 출발. 가다가 커피도 마시고 점심으로 뽈뽀랑 폭립도 먹음. 가는 길에 ATM 기계 발견해서 450유로 바로 인출!! 까미노 천사들이십니다. ^_^

아르주아 도착해서 옷 싹 다 빨고 건조하고, 김해 언니들과 함께 감바스에 라자냐 샐러드 등등 같이 먹었는데 음식도 아주 맛있었다. 특히 한국 밥 느낌의 라자냐 너무 맛있었지모야! 다 같이 앉아서 한참 이야기하며 눈물 나게 많이 웃었네. 언니들하고 이렇게 잘 맞을지, 재미있을 수 있는지 이전까진 몰랐는데 늠나 내 스타일임. 저녁 먹고 방에서 쉬고 있는데 앞 침대에 있는 베지테리안 여자아이가 자기 밥 많이 했다고 같이 먹을래? 해서 앞에 가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눔. 

그 친구도 갭이어 하고 있는데 나와 다른 건 그 친구는 아직 10대..ㅎ 어린 게 부러운 거 보니 나 나이 들었네.





2023.06.14. (Wed)

Day 35. Arzua - Pedrouzo (19.51km)



오늘은 쫌만 걸을 생각에 느지막이 출발. 온 도시와 길에 안개가 쭉 깔렸다. 갈리시아 지방에선 아침마다 안개가 잔뜩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을 보면, (비록 영국 배경이긴 하지만) 영화 오만과 편견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아주 생뚱맞지는 않을 수도.. 그리고 디즈니나 지브리 등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보이는 모든 풍경이 허구가 아니라 걍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었다. 

까미노로 스페인이나 유럽의 작은 도시들에 대해 막연하게 궁금했던 것을 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나는 도시보다는 시골이다. 


나는 딱히 달라진 것은 없지만, 분명 이 길을 걷기 전보다는 더 강해졌다. 그리고 길 위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듣고 만났다. 이제 25km 정도 걷고 밤에 누우면 발바닥이 욱신거린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고, 감정이 한창 동굴 속으로 빠질 때에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3.06.15. (Thu)

Day 36.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19.88 km)




2023.06.16. (Fri)

Santiago de Compostela





2023.06.17.~19. (Sat~Mon)

Muxia




2023.06.19. ~ 20. (Mon~Tue)

Fisterra


순례길이 다 끝난 후에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의 순례길은 여기까지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나 혼자 가끔 안주거리로 꺼내봐야지.


극강 T의 순례길 다이어리를 보니 대부분 그날을 기억할만한 일정 위주로 기록을 해놨길래 하루하루 내가 느꼈던 감정들 위주로 옮겨봤다. 그리고 내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해 둔 글이 있어 그 글을 빌려와 순례길 여정을 마무리해본다. 끝!




가끔은 작별의 말을

미리 적어둬야만 할 것 같아요.

나에게 다녀간 모든 것들을 위해 

담백한 감사 인사를

어딘가에 꼭 남겨야만 할 것 같습니다.

언제 떠나는지와는 별개로요,

누가 떠나는지와도 별개로요.

전하지 못한 인사만큼 아쉬운 건 없으니까요.

미리 몇 자 적어봅니다.


나에게 다녀간 모든 분께.

어떤 게 우리를 작별로 이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이별하며 사는 존재잖아요.

그러니 슬퍼 마시길.

어떤 형태의 이별이든 그건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생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나눴던 이야기를요.

그 놀라운 인연의 순간을요.


나는 다감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정은 아니었지만요. 

잘 웃고, 울고, 환희하고 낙망했던 순간들에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봤나요?

좋지 않은 마음만은 아니었기를

난 당신과 모든 감정을 나눠서 충만했습니다.

우리의 별거 아닌 일상이 좋았습니다.

맛있는 걸 나눠먹고 실없는 농담을 하고 

좋은 일 앞에서는 와락 웃어버리고 

나쁜 일 앞에서는 와락 서로를 안아버린 

모든 순간이 좋았습니다.


나는 곧잘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가 닿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말하고 싶어요.

행복했습니다. 행복했어요.

당신도 행복하셨죠?

작별의 말이 긴 이유는, 헤어짐이 아쉬워서

자꾸만 나꾸만 더 쓰게 되어서일까요?

그러나 이건 예정된 이별이었고

담아도 담아도 부족한 마음은 차라리 한 문장으로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덕분에 사랑했다고요

부디 안녕하시길, 

기꺼이 생을 나눠준 당신께- 


@ssuk_essay_toon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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