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청소 - 버릴까, 말까.
가능한 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지갑을 여는 경우가 있다. 특히 호군이 뭘 갖고 싶다고 말하면 여러 말 덧붙이지 않고 지갑을 여는 편. 마음속으론 아이구, 저거 나중에 절대 안 쓰지- 하며, 잔소리가 입 밖으로 다다다다 튀어나올 지경이지만 실제로 하는 말은,
"이거 사놓고 안 쓰면 유부 동생 하는거다. 꼭 써야 돼" 정도?
이렇게 사전에 주의를 주고 물건을 구매해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방치되기 일 수. 내가 사놓고 안쓰면 뭐라고 했어???!!! 뒤늦게 입이 터져라 잔소리를 해보지만 어떻게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호군이 뭘 사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평소에 뭘 갖고 싶다던지, 하고 싶다던지 하는 욕망의 표현이 많지 않다. 용돈을 따로 받는 것도 아니고 사치를 하거나 씀씀이가 큰 편도 아니다. 오히려 돈에 무관심한 편. 욕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호군이 뭘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 두번짼 대부분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이 건강과 관련된 것이 많다는 것. 요즘 유행하는 체지방 감소 알약을 사 먹어보고 싶어 한다던지, 허리가 아파 자세를 교정하는 보조기구를 사고 싶어 한다던지. 몸이 아파서 필요하다는데 도무지 거절할 수 없다. 병원에 가보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하루 이틀. 그냥 원하는 교정기를 하나 사고 마는 것. 물론 일주일 만에 집 안 어딘가 처박힐 것을 난 안다.
그렇게 쓸데없는 물건이 집에 늘어난 다음 도끼눈을 뜨며 당장 사용하지 못하겠느냐고 닦달하는 내게 호군은 민망한 듯 웃으며 말한다.
"당근에 팔면 안 돼?"
어머, 이거 구매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팔아. 속이 터질 지경이지만 그래, 아직 새 물건이니 우리보다 더 잘 쓰실 분이 나타나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 올린다. 그러나 구매한 지 얼마 안 된 물건일수록 본전이 생각나기 마련. 눈물을 머금고 10만 원에 산 물건 8만 원에 올려보지만 누구 하나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언젠가 채팅이 와 7만 원에 구매하겠다고 하면 냉정하게 거절. 이거 진짜, 새 물건이거든여? 그렇게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고 내가 이 물건을 올렸는지 안 올렸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무렵에서야 가격을 7만 원으로 내려보지만, 문의하는 사람은 없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가격은 떨어진다. 처음에 7만 원 문의 왔을 때 팔걸... 하고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 치워두기라도 하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언제 팔릴지 모르니 항상 오가는 자리에 박스째로 꺼내놓고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자니 바라보는 내 마음이 쓰리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물건이 눈에 보이는 동안은 새로운 뭔가를 사자는 말은 안 한다는 것 정도일까. 아무리 고가의 물건이어도 나도 안 쓰고 주변 누구 하나 필요하다는 사람이 없다면 부모님이든 주변 지인들 중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자!라고 해보지만, 우리 집에 필요 없는 쓰레기 다른 집으로 돌리는 것 같은 죄책감이 마음 한편에 남아 함부로 선물하겠다는 말도 못 하겠다. 이게 진짜 선물이 될지 애물단지가 될지 도무지 모르겠으니까.
무턱대고 버리기도 아쉽다.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생각 없이 버리는 쓰레기들이 모여 결국 내가 사는 도시를, 나라를, 지구를 조금씩 병들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앞선다. 함부로 구매하지 않고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만, 그마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 물건을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본전 생각하지 말고 가격을 대폭 낮추자. 그리고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자. 좋은 마음에 내놓는 물건이니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서 사용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발)
이 물건을 거래할 땐 호군을 시켜야겠다. 큰돈 주고 산 물건이 이렇게 헐값에 거래되는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 몇 번 사용할지 모르는 의료용품 사는 것보다 병원 가는 것을 좀 더 기꺼워할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