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이번 주는 가능한 장을 보지 않고 집에 있는 음식들로 일주일을 버텨보기로 했다. 손님이 오거나 급한 약속이 생기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 밖의 다른 날엔 절대 외식도 장을 봐서 먹지도 않으리.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일주일을 살아보겠다 다짐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은 건... 지난주에 차를 샀기 때문이다! 작년 9월에 교통사고가 나서 폐차를 시켰고, 지금이 2월이니 근 5개월 정도를 차 없이 지낸 셈이다. 승용차는 없었지만 근처에 공유차가 있어서 차가 필요한 순간엔 공유차를 잠깐씩 대여해 사용했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혹은 버스로 먼 거리는 택시를 탔다. 대형마트를 끊고 동네 마트를 이용했다. 난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호군은 차가 없는 불편함을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공유차량은 차를 반납하는 시간이 언제나 아슬아슬했고, 버스나 택시는 원하는 시간에 오지 않았고, 대형마트를 가는 건 정말 장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분전환을 위해서였으니까. 오래 참다 (오래 참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고차를 구입했고, 예상했지만 준비하지 않았던 돈을 지출했기에 살림 지갑이 궁핍했다. 어떻게든 생활비를 줄이고 싶었다.
첫째 날엔 집에 있던 감자와 스팸을 이용해 감자 짜글이를 했다. 오-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스팸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형태를 으깨니 스팸 인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짜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다음날엔 국수를 했다. 집에 있는 장국 소스를 베이스로 사용해서 자투리 야채를 썰어 넣고 계란을 풀고 김을 잘라 올리니 그럭저럭 한 상차림이 되었다. 지금 이야기하는 메뉴는 호군과 함께 먹는 저녁 메뉴.
그럼 낮에 혼자선?
첫날은 냉동실에 있는 식빵을 굽고 에그 스크램블을 해 간단하게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고, 다음날엔 강력분을 꺼내 감자빵을 만들었다. 감자빵을 만들었다고? 내가?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었지만 냉동실에 처박힌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아 마음이 찜찜하던 차였다. 밀가루를 치워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반죽을 치대고 오븐에 구워 그럭저럭 또 한 끼를 먹었다. 다시 나 혼자를 위한 밥상을 차려야 하는 시간이 돌아왔고, 나에겐 누룽지를 냄비에 담아 물을 붓고 끓일 힘도 남아있질 않았다. 고작 한 끼 먹는 건데, 너무나 귀찮다. 누룽지는 좋아하지만 먹고 난 뒤 설거지하는 게 지금 상황에선 너무나 싫었다. 내 모든 힘과 열정을 어제 감자빵 만드는데 바친 탓이다.
결국 수납장 구석에 있던 육개장 사발면을 꺼냈다. 있는 줄도 몰랐는데 수납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해 눈에 뜨이는 위치로 옮겨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붓고 3분을 기다렸다. 김치를 꺼내는 것도 귀찮아 식탁에 앉아 꾸역꾸역 먹고 있으려니 잊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아... 나 라면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 왜 지금 여기서 이걸 김치도 안 꺼내놓고 먹고 있나. 왜 때문에...?
모든 게 다 감자빵 때문이다. 감자빵 하나가 내 모든 기력을 빼앗아 나를 무기력의 상태로 만들었다. 열정 넘치게 만든 그 빵이 맛있었다면 나란 녀석 제법이라며 힘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만든 빵은 몹시 싱겁고 퍽퍽하고 딱딱했고, 난 맛도 없는 이런 걸 만들겠다고 그 난리를 쳐서 내 기력을 앗아가게 두었단 말인가... 후회가 되었다. 라면을 먹으면서 감자빵을 생각하니 몹시 화가 났다. 이거든 저거든 맛이라도 있었어야 화가 덜날 텐데!
매일 먹는 식사, 나를 위한 한 끼에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좋으니 허기를 채우고 배만 부르면 되는 쪽이다. 그래서 난 내 에너지를 식사를 준비하는데 소비하지 않는다. 이건 호군과 함께 먹는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식사 준비에 쓰는 시간은 한 시간 내외. 호군이 회사에서 출발한다고 알려주면 그때부터 쌀을 씻고 찌개든 국을 끓인다. 따라서 밥과 메인 요리,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 한두 가지가 상차림의 끝. 당연히 설거지거리도 적다. 이렇게 식사 준비에 드는 노동력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힘은 내가 쓰고 싶은데 쓴다.
책을 읽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집을 정리하거나 유부와 산책을 나가거나. 내가 좋아하고 꾸준히 하고 싶은 일에 나의 에너지 대부분을 쓰고 싶다. 호군과 함께 먹는 맛있는 저녁 식사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식사 준비를 위해 몇 시간이나 주방에 서서 가스불을 바라보는 건 에너지가 좍좍 닳는 일. 그런 내가 내 에너지 용량을 생각하지 못한 채 빵을 만들겠다고 까불었으니, 다음날까지 에너지가 바닥을 치는 건 너무 뻔해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좋아하지 않는 라면(과 떡)으로 한 끼를 넘기니 더부룩하지만 용서하겠다며 내 몸이 이제는 다른 일을 해도 된다고 허락한다. 가벼운 책 한 권을 후다닥 읽어 내려가고 책상에 앉아 글쓰기를 하는 나. 할 일을 했으니 나머지 기력으로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용량이 많이 떨어졌음을 새삼 느낀다. 봄이 오면 용량을 늘릴 방법을 궁리해봐야겠다. 나를 위한 정성스러운 한 끼도 기꺼이 준비하고 내가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일들도 빠릿빠릿하게 해낼 수 있도록.
따뜻한 바람아, 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