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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Oct 12. 2021

에어프라이어 없는 삶

오늘의 청소 - 에어프라이어

 구매한 지 5년 된 에어프라이어 바스켓을 청소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구석 낀 기름때도 기름때지만 어느 부분은 녹이 슬어 코팅이 벗겨져 더 이상 여기에 음식을 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적당히 설거지해 생각 없이 썼을 텐데, 한번 녹이 슨 부분이 눈에 띄자 새끼손톱 가장자리에 튀어나와 걸리적거리는 작은 손톱처럼 계속해서 내 신경을 긁어댔다. 손톱깎이로 튀어나온 부분을 자르고 생활해도 좋으련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녹슨 에어프라이어 바스켓에 대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 결국 쓰레기 수거 신청을 했고, 나의 작은 주방에서 떠나보냈다. 시원 섭섭한 기분.



 

 그는 떠나보냈지만 아직 우리 집엔 전기 오븐과 전자레인지가 있다. 전자레인지는 결혼할 때 시이모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전기 오븐은 한때 제빵을 해보겠다며 야심 차게 구입했다. 한동안 전자레인지를 친구에게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사실 없어도 없는 대로 살만은 했다. 그때그때 밥은 먹을 만큼만 소량 했고, 데워야 하는 음식은 프라이팬을 이용했다. 계란찜도 전자레인지보다 뚝배기를 주로 이용했으니, 사실 우리 집에서 전자레인지는 거의 냉동밥을 데우는 용도였던 셈.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때보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면 그럭저럭 살만했기에 친구에게 전자레인지를 돌려받을 땐 뭔가 안타깝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만 더 적응하면 전자레인지 없는 삶도 가능할 것 같은데!


 에어프라이어를 보내고 생각보다 열심히 사용하는 건 전기 오븐이다. 에어프라이어가 있을 땐 제빵 할 때 빼곤 거의 사용하질 않았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용 중이다. 냉동실에 있는 빵이나 치킨을 데울 때도 쓰고, 기름을 뺀 육류 요리를 할 때도 사용한다. 전기오븐의 다양한 기능을 100% 활용하면 좋겠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대충 컨벡션 모드로 돌리면 뭐든 되겠지 생각하고 그냥 넣고 온도를 높이는 편. 이보다 더 맛있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도 나쁘지 않은데- 하는 수준이라 꽤 만족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기기에 적응하며 나의 쇼핑 목록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에어프라이어가 있었을 땐 냉동식품을 쟁여두는 게 낙이었다. 감자튀김과 치킨너겟, 버팔로 윙 같은 음식들. 바스켓에 우르르 부은 뒤 15분 정도를 방치하면 완성되는 요리들. 일부러 포털 사이트에 '에어프라이어 냉동식품'과 같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여 사람들이 인증한 냉동식품들을 찾아내 먹어보는 게 즐거움이기도 했다. 건강에는 좋을 리 없지만 입이 즐겁고 몸이 즐거운 요리들. 그 요리들로 감사하게 5년이나 살았다.


 전기 오븐을 주로 사용하게 되고 나선 냉동식품에 손이 가질 않는다. 물론 똑같이 오븐에 넣고 돌리면 에어프라이어만큼은 아니더라도 적당히 눅눅한 바삭함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남은 감자튀김을 넣고 오븐에 돌렸을 때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다) 그러나 심리적인 이유일까, 오븐에는 더 오븐의 기능을 100% 활용할 음식들을 주문하게 된다. 그래서 난 냉동생지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빵을 더 따뜻하고 더 맛있게 먹겠다는 의지를 에어프라이어가 없어진 지금에야 보이게 된 것. (제빵을 목적으로 구입했는데 제빵은 저리 가고 냉동생지만이 남았다)


 크루아상이나 에그타르트는 기본, 초코나 잼이 들어있는 빵들까지 먹고 싶은 종류나 수만큼 냉동생지를 구매해 오븐에 넣기만 하면 금세 따뜻한 빵을 즐길 수 있다. 예전엔 웬만하면 오븐을 이용하지 않고 에어프라이어에 돌렸기 때문에, 매번 한두 개 굽는 게 최대였는데 전기 오븐을 이용하니 다섯 개든 여섯 개든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또 청소는 얼마나 간편한지- 전엔 매번 바스켓을 수세미로 문질러 사이사이에 낀 기름때를 빼는 게 일이었다면 오븐은 받침을 빼내 스윽 닦아도 웬만한 찌꺼기들은 쉽게 제거된다. 오븐 만세- (이건 기름 요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어프라이어가 없어지면 더 큰 용량을 사게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한 부분이 있었는데- 전기 오븐의 활용도가 생각보다 높고 내 주방에 더 이상 물건을 들일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구매욕구를 싸악 사라지게 만들었다. 여유가 생긴 주방 한켠을 보면 진즉 버렸다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마저 든다.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아 신기할 노릇.


 에어프라이어 기능과 오븐, 전자레인지 기능까지 모두 있는 일체형 상품도 있다던데- 사뭇 궁금하다가도 이내 관심이 식는다. 그 한 개를 사려면 두 개를 팔거나 버려야 하는데- 그 수고를 하면서까지 간절히 바꾸고 싶진 않다. 내 주방에 딱 맞춘 기기를 들이면 우선 나 보기는 좋겠지만 그렇게 버려지는 멀쩡한 기기들은 지구 어딘가에서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니까. 나 아직 쓸만한데- 하면서.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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