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청소 - 마음
몇 개월간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고선 생활의 리듬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엔 소소하게 집에 있는 채소와 고기를 조금씩 비워내며 식사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여차하면 포장이고 모르겠다 배달이다. 일을 할 땐, 몸이 피곤해서, 돈을 버는데 이 정도 쓰는 건 괜찮지 않나? 생각하며 내 소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회사를 다니면서 절약하는 사람들은 대단하구나)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금 내 소비에 죄책감을 느낀다. 벌지 않으면 그만큼 줄여야 하건만 나는 이미 포장과 배달의 편리함에 눈을 떠 버렸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세 달 동안 열심히 먹었던 배달 음식이 입에 맞았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가격에 비해 음식의 질과 양은 불만족스러웠고, 쓰레기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주로 튀기고 볶은 음식들이 대부분인지라 건강에도 좋지 않음은 물론이다. 또 음식을 준비하는 수고로움이 없어졌다 뿐이지 배달 용기며 사용한 그릇과 물컵, 수저를 설거지해야 하는 일은 계속되었다. 플라스틱 용기나 냄비를 들고 가서 포장해주십사 요청드려도 좋으련만- 그마저도 너무 힘들었다. 딱 삼 개월만.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이십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예전의 생활로 완벽히 돌아오지 못했다.
매일 아침 반복하는 다짐으론 내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만 하고 있을 무렵 내 몸무게를 알게 되었다. 하? 이거 진짜? 내 몸무게라고는 믿기지 않는 숫자. 살이 찌고 빠지는 건 언제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좀 심각했다. 살이 찌는 건 좋지만 그 원인이 매일 밤늦게 시켜먹은 배달음식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다이어트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내게 다이어트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건 분명했다.
운동은 아침저녁 하는 산책으로 충분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식단관리. 검색창에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쓰고 엔터키를 눌렀다. 쏟아져 나오는 온갖 광고들, 약 광고가 대부분이다. 약을 먹으면서까지 살을 빼고 싶은 건 아니다. 지금 쓰레기 같은 내 정신상태와 몸을 되돌릴 건강한 식단이 필요할 뿐. 이런저런 검색어를 입력해봐도 내가 원하는 건강한 식단이라는 건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다. 사실 답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난 다이어트를 위해 뭔가를 새롭게 살 생각보다 지금 가진 재료들로 균형 잡힌 식단을 꾸리길 원하는 거니까. 오히려 간헐적 단식이 낫겠다 싶었다.
오전 11시부터 7시까지- 먹는 시간으로 정하고 알람을 맞췄다. 어차피 아침은 잘 먹지 않았고, 저녁 먹는 시간이 중요하니 이 시간을 정하면 늦은 시간 과식이나 폭식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식단. 집에 있는 음식들 위주로 식단을 꾸리되 한 끼는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먹는 수준으로, 한 끼는 먹고 싶은 대로 먹되 가능한 채식 위주로 하기로 했다. 다이어트 식단으로 검색했을 때, 주로 나온 식단이 빵 한쪽에 계란 두세 개, 음료나 과일 조금 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았다. 저녁은 밥을 먹되 콩나물국이나 열무비빔밥 같은 메뉴를 택했다. 집에 있는 음식들을 조금씩 변주해 먹을 생각인데- 고기를 꺼내는 날은 가능한 밥은 피하고 굽는 대신 삶는 방법으로.
너무나도 쉽게 얘기하지만 내 다이어트의 가장 큰 허들은 호군이다. 호군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밥을 먹었던 것이 내 증량의 이유 중 하나니까. 호군이 일찍 오길 바라는 건 기대하기 어렵고 (퇴근시간만 한 시간이 넘으니) 그냥 외롭게 혼자 먹는 방법을 선택. 캔맥주 두 개를 꺼내 짠- 하고 치킨을 먹는 행복은 주말 하루면 되었다. 평일은 나의 흐름에 맞춰 하루를 보내는 게 지금 나에겐 더 필요하다.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내 몸을 위한 다이어트이기도 하고 내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 위한 다이어트이기도 하다. 대단한 것을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난 벌써 기대가 된다. 한 달 뒤엔 좀 더 괜찮은 몸과 건강한 마음의 내가 똑같이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즐겁게 시작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