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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다래 Aug 05. 2021

박스를 모아보자

오늘의 청소 -박스 정리

 우리 집엔 상자가 많은 편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호군의 취미는 건담이고, 건담은 상자에 담겨오고 상자 하나하나는 몹시 소중하게 여겨져서 작은방 여기저기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앉았는데 발에 툭- 하고 걸리는 상자 하나가 있다. 뭐야, 뭐가 떨어졌나 싶어서 봤더니 호군이 숨겨놓은 아이폰 케이스. 휴대폰이랑 그 안에 든 내용물만 꺼내 쓰고 박스 따위야 버려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호군은 그 박스가 예쁘고 분명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라며 내 눈에 뜨이지 않게 숨겨둔다. 마침 그 숨겨둔 박스가 오늘 내 발 끝에 걸려 떨어지게 된 것. 잘 걸렸다 요놈. 내가 몰래 갖다 버려도 버린 줄도 모르겠지 싶어 신이 나서 박스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지?




 건담 박스 사이에서 그렇게 숨겨놓은 상자 2-3개를 더 찾아내고 내 안의 뭔가에 불이 붙었다. 오늘은 집 안에 있는 굴러다니는 박스란 박스는 모두 다 찾아내 버려버릴 테다. 제일 먼저 베란다로 향해 매의 눈으로 여기저기 훑어봤다. 상자는 보이지 않고 강아지 쉬패드가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보냉 가방이 흩어져있는 게 눈에 뜨인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강아지 쉬패드를 모아 하나로 정리하고 각각 존재감을 과시하는 보냉 가방도 하나로 포개 겹쳐놓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베란다 정리. 정리를 하다 보니 바닥에 떨어진 먼지들도 신경이 쓰인다. 걸레를 가져와 먼지와 머리카락을 훔친다.


 베란다 청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가려니 다시 뒤에 놓인 박스들이 날 바라본다. 아, 나 박스 정리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흔들어 작은방을 다시 둘러본다. 강아지 용품이 들어있는 과자박스가 신경 쓰인다. 안에 별로 들어있는 것도 없는데 뭐 저렇게 큰 박스에 넣어놨지, 싶어 박스를 비우고 강아지 용품 정리 시작. 사료는 사료끼리 구분해서 놓고 장난감이랑 칫솔, 간식은 이쪽으로 이렇게... 한참을 정리하고 과자박스 하나를 얻었다. 읭?


박스 정리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숨겨진 서랍 속에서 꺼내는 것이죠. 서랍을 열어 상자를 하나씩 열어본다. 예전 예물함으로 받은 빨간색 가죽 박스가 있어 신이 나서 열어보니 호군이 건담 재료를 이리저리 넣어놨다. 아, 이건 버리면 안 되겠네. 그럼 그 옆에 있는 노트북 박스를! 하고 열어보니 마찬가지로 건담 재료들. 그런데 이건 조립하다 남은 부품처럼 보인다. 이런 건 투명 지퍼백에 넣어두는 게 나중에 찾기도 좋겠죠- 하고 부품들을 이동시킨 뒤 박스는 가져간다. 그렇게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정리 시작. 종류별로 넣어놓은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부조화스러운 서랍 속 물건들을 이리저리 이동시켜 나름의 규칙을 찾는다. 


 그다음은 우리 간식을 넣어두는 수납장으로 이동. 수납장에 쭈그리고 앉아 박스 안에 든 1-2개 남은 과자들을 꺼내고 구석에 숨겨져 있는 과자들을 앞으로 꺼낸다. 유통기한이 지나진 않았겠지? 과자들을 이리저리 정리하다 보니 또 위아래에 널려있는 커피 도구들이며 제빵도구들이 신경이 쓰인다. 도구들을 꺼내 닦고 자리를 찾아 차곡차곡 넣어준다. 분명 난 박스를 찾아 버리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어느새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있다. 


 그렇게 박스가 엄청나게 모였습니다!라고 자랑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집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쓸고 닦고 두 시간을 넘게 정리만 했는데도 모아진 박스는 얼마 되지 않는다. 와, 내가 이거 버리려고 계속 정리한 거야?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뭐- 집 쫌 정리했으니까 됐다-!!! 정신승리.


 저는 오늘도 이렇게 강제 청소를 시행? 당했? 습니다. 

괜찮아요- 다들 이렇게 청소하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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