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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Feb 18. 2022

즐거운 나의 집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어렸을 적, “내가 살고싶은 집”에 대해서 잡지에서 스크랩 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건축,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아주 자세히는 그 때 처음 봤던 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 꽤나 충격적이었다. 집들이 정말 너무나도 아름답고, 단정하고, 멋들어졌기 때문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즐거운 나의 집 노랫말이 귓가에 금관악기 써라운드로 들리는 그런 기분. 그 마음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런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니 정말 과연 설마 세상에 진짜 이런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야? 내 머리 위에 물음표가 오색색깔 풍선처럼 부풀어 둥둥 둥 떠다녔다.



지금보다 어렸던 그 때의 성유연은 어쨌든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싹둑싹둑 오려 붙이고는, 나중에 으른이 되면 나는야 꼭 이런 집에서 살아야지 ! 하고 다짐했다. 과제의 제목도 “내가 살고싶은 집”이었으니까. 높다란 천장의 한 쪽 벽 끝까지 책장이 있고 그 안에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고, 풍광이 좋은 커다란 통창과 그 앞에 거의 눕듯이 책 읽기 좋은 의자가 있고, 적당한 조도와 빛의 색깔 조명들이 벽지, 마루, 가구들과 썩 잘 어울리고, 눈으로 보기만 해도 폭신폭신한 침대는 가지런하고, 모든 잡동사니들은 어디론가에 모두 다 들어가있는 그런 집.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첫 번째 대학을 다닐 때는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두 번째 대학을 가게 되면서 스물두 살쯤에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것이 생겼다. 집이 아니라 방. 이라는 표현이 과연 맞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첫 번째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집은 부모님과, 방은 늘 동생과 함께 썼었으니까. 그리고 처음으로 나만의 집에 몇 년을 살면서,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은 적어도 방이 ‘몇 개’는 있는 집을 필수로 하는구나를 알게 됐다. 그것은 일상을 넘어, 인간다운 삶의 문제였다. 이 나라가 한 계절만 있는 나라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계절별로 추위와 더위를 나는 데, 미세먼지를 막는 데, 아니 그냥 사계절의 의식주를 살아가는 데 옷가지들과 이불들, 그렇게 좋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작은 도구들이 그렇게나 필요했다. 그것들은 어디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머리 맡에 있고, 머리 밑에 있고, 머리 옆에도 있었다. 머리 위에 이고 있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렴하게 산 생활도구들은 하나같이 눈에 담기에 조악스럽고 아무리 해도 깔맞춤조차 되지 않았다. 다이소에서 모오든 것들을 구매한. 그래, 바로 그 느낌.



혹서기와 혹한기는 ‘살아내는 데’에만도 힘들었다. 겨울이 되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불을 턱 밑 끝까지 당겼는데 얼굴 위로 웃풍이 지나가서 잠이 오질 않았다.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써야 겨우 겨우 잠들었다. 화장실에서는 늘 엉덩이가 시려웠다. 처음으로 ‘안전’. 아니, 안전이라는 말로 부족할 ‘삶과 죽음’과 '생존'에 대해서 더욱 많이 생각했다. 생각하게 됐다. 생각하게 되어졌다, 는 수동적 표현이 적절하다. 밤에는 어스름한 골목길이 무서웠다. 귀갓길이 늦거나 밤길에 혼자 산책이라도 나갈라치면 온 몸에 솜털들이 순식간에라도 곤두서기 일쑤였다. 1층 현관 도어락은 고장나있을 때가 많았고, 그 어떤 누구라도 내 집 문을 똑똑거리거나 부스럭거리거나 어슬렁거리는 소리가 공포스러웠다. 한 사람이 오래도록 생을 영위하는 공간의 크기는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의 크기를 결정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 시절에 알았다.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도 혼자있는 순간들을 아무리 좋아하고 꼭 필요로 하는 나로서도 그 곳은 너무나 혼자였다. 고독하게 혼자였다.



그 집에, 그 방에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더 오래도록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 때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보다 못할 수두룩한 방들을 생각한다. 고만고만한 개미집들이었음에도 대학동기들의 방에 가보면서 서로의 방에 대해 잠시 감탄하거나, 또는 얕은 위안을 얻었던 서글픔들을 생각한다. 어떤 방들에 잠시 머물렀던 사람, 오래 살았던 사람, 생애 내리 있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사람들의 간극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는 그보다 나은 방에 잠시 머물고 있는 나의 티끌같은 안도감과, 집 하나를, 아니 방 하나를 더 얻기 위해 유예해야 하거나 포기당해야 하는 삶을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을 나는 지금 가졌는가, 앞으로는 과연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는 다시 곧 어렸을 적 잡지 속에서 스크랩 해두었던 내가 살고싶은 집, 즐거운 나의 집, 꿈결 같은 나의 집을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다니지만, 몇 개는 느낌표로, 이제 몇 개는 말줄임표로, 또 몇 몇 개는 마침표들로 바뀌어있다.



어쩐지 그 때의 그 물음표는 색이 많이 바랜 것도 같다.




‘어디서’ 사느냐의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이다. 살아온 곳들, 내가 숨 쉬고 몸을 뉘였던 장소들이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누구와 함께 살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나아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집이란 건 단순히 구조물이 아닌데, 우리 사회는 집을 경제수단이나 규모, 편의, 장식 등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도 생겼다.

ㅡ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중 편집장 조이여울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를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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