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월드]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늘, 정세랑 작가님이라고 말했었다. 정세랑 작가님의 책 중 가장 먼저 만났던 작품이 바로 <피프티피플>이다. 첫 번째 봤을 때 잠자기 전 침대에 엎드려 조금만 보다 자려던 것을, 앉아서 보다가, 결국엔 새벽 두 시까지 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감히 이야기해보자면, 정세랑 작가님의 이름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정. 세. 랑. 스타카토처럼 경쾌하지만 지긋이 눌려 울려퍼지는 음들이 좋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가깝고 일상적이면서도 너른 넓이와 깊이감, 개인적인 사유와 사회적인 시선을 동시에 놓치지 않고 있는 책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앞으로 정세랑 작가님 책은 무조건 모조리 다 보겠다! 는 다짐도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들은, 보고 나서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싶게 하는 작품들이다. 피프티피플을 보고나서, 이 책 정말 완전 대박 엄청 너무너무너무 재밌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지인들에게도 선물하고 독서모임에도 추천하고 북쉐어링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책을 갖고 갔다. 선물받거나 추천받은 사람이 좋았다고 하면 어찌나 얼쑤 절쑤 신이 나고 뿌듯하던지.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강력한 팬클럽 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 정세랑 작가님에게는 마구마구 팬심이 생기고 나의 활동 반경 내에서 나름의 적극적인 팬클럽 활동을 하게 했다. 정말 좋아! 어때요, 좋지 좋지? 하고 자꾸 말하고 다니게 됐다.
더불어 좋은 작품들은 더 나아가 독자나 청자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게 하는 영감과 용기를 준다고 생각한다. 정세랑 작가님의 책들은 내 이야기도, 내 삶의 한 조각도 이렇게 쓰일 말들이 있을 것 같다는 긍정성을 갖게 했다. 의미없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그것대로 의미있게 될 수 있겠다는, 그래서 어쩌면 삶에서 의미없는 순간이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했다. 또한 내 안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더 관심이 생겼다. 뉴스에 나오는 어떤 일조차도 상관없거나 먼 일이 아니라는 생의 감각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한 명, 한 명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놓치지 않고 세밀한 관찰력으로 들여다본다면, 누구에게도 쓰일만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거라는 소설가의 눈에 감탄하고 경탄했다.
정세랑 작가님이 쓰시는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 점점이 있는 듯 보여도 분절적이지 않고 결국에 이어져있다는 것도 좋았다. 우리들은 다, 때로는 아득한 섬처럼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깊은 바닷속 심연으로 들어가면 산과 산, 계곡과 능선으로 이어져있는 것처럼. 우리들은 서로 다 크고 작든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연대의식이 아닐까 하는 것도. 나는 지금 다른 사람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아주 작게라도 선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고 느끼게 했다.
창비에서 주최하는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작가님과의 만남에도 당첨이 되어서 간 적이 있다. 그날 정말 어찌나 좋았는지 실제로 당첨되어보지 않은 로또가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것마냥 좋았었다. 그래도 아무래도 글이라는 것은 작가님들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좋은 것, 가장 재미있는 것들을 씨실과 날실로 뽑아내어 엮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 여타의 작가와의 만남 같은 자리에서는 대부분이 기대보다는 실망하기 마련이었다. 그래 역시 작가님들은 책으로만 뵙는 게 가장 좋을지도 몰라, 하고. 그런데 정세랑 작가님은 아니었다. 실제로 뵙고 나서도 더욱더 좋아진 작가님은 정세랑 작가님이 유일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 덕질 아카이빙(글리프)라는 잡지책이 있는지도 몰랐고 ! 아니 이런 게 있었단 말이야 ! 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팬심으로 읽었다. 그것도 ‘월드’라니. 너무도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정세랑의 세계라니 생각만 해도 그저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하는 마음에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 잡지는 읽어내려 갈수록 역시 ‘작가 덕질’이라는 것에 알맞게 팬클럽 활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맞아 맞아, 그럼 그럼 ! 오오 당연하지 ! 끄덕끄덕. 오호. 이런 게 있었단 말이지,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모든 글들이 물론 다 공감가고 너무 좋았지만 유독 마음에 와닿았던 챕터는 트위터 정세랑 봇 운영자 인터뷰였다. 정세랑 봇은 나부터도 예전부터 알고 팔로우도 하고 있었기에, 그런데 정세랑 봇 운영자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운영자님까지 멋있게 느껴지며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또 무한 반성도 되기도 했다. 나도 이렇게 좀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덕후가 되어야하는데 하고 말이다.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 나오는 “좋은 예술을 생산하며 간소하면서도 이타적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 장기적으로 내가 누렸던 행운들을 갚고 싶다.”라는 구절에 공감했었는데, 여기서 내가 누렸던 행운 중 한 가지에 정세랑 작가님을 만나서, 동시대에 함께 할 수 있었음은 분명히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일하시는 정세랑 작가님 덕분에 신간도 너무나 빠짐없이 감사히 잘 읽고 있으며, 이미 본 책들도 여러 번 읽으면 읽을수록 역시나 또 새롭고 재미있다. <보건교사 안은영> 또한 책을 여러 번 보았음에도 드라마로 나온다고 했을 때, 과연? 했지만 작가님이 대본을 직접 집필하셨다는 이야기에 역시 !!! 그래서 이렇게나 재밌구먼 하고 기꺼이 누렸고 즐겁고 행복했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세상 환하게 반갑게 반짝반짝한 눈으로 정세랑 작가님이라고 말할 수 있음을, 정세랑 작가님이 왜 좋은지 물으면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음을, 책 너무 너무 좋다고 추천하고 선물하고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언제라도 나누며 찰랑찰랑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망할 세상도 영차영차 하다보면 우리 함께 살아볼 만 해! 하는 긍정성에 햇빛을 쬐일 수 있음을, 언제나 정세랑 월드에 기꺼이 발을 담그고 풍덩 풍덩 들어가 물들고 물들일 수 있음을 앞으로도 오래도록 감사할 것이다.
정세랑 작가님,
제가 아주 아주 많이 많이 사랑합니다.
대의명분 없이도 다정하게 능력있는 여성, 내가 되고 싶고 될 수 있는 여성, 정세랑 월드가 계속되기를 애타게 바라는 이유다.
ㅡ글리프 (1) 정세랑 [월드], 123p
작가 덕질 아카이빙 글리프 : 정세랑 [월드]를 읽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