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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Apr 11. 2024

귀여우면 끝이야


귀여우면 끝이다,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이다.


첫 수업에서 나를 소개하는 시간에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다.” 에 대해 OX퀴즈를 맞혀보도록 했다. 일단 이 재미없는 활동을 아주 호기심 있게 열심히 맞춰보려는 눈망울부터가 다들 너무 귀여웠다. 그중 마로가 개구진 얼굴로 외쳤다.

ㅡ선생님은 딱 봐도 선생님 같아요!

ㅡ왜 그렇게 생각해요?

ㅡ딱!!!! 아주 딱 봐도 아주 그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선생님들 같은! 그런 분위기가 나요!!!

그날 하필 나는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나름 엄격 근엄 진지모드로 있었는데, 마로의 이 말에 풉 웃음이 나버렸다. 그리고 덕분에 순간 서로 다들 긴장했던 분위기가 스르륵 풀어지면서 다 같이 함께 큽 크하하하 웃어버렸다.


수업할 때 서로 유머코드가 찰떡처럼 잘 맞는 것, 표현력이 너무나 뛰어나고 창의적인 아이들 때문에 웃게 되는 것, 가끔은 내 말도 안 되는 드립에도 큭큭 낄낄 웃어주는 순간들은 정말이지 너무 소중하다. 같이 함께 입꼬리 올라가며 웃거나 때로는 소리 내어 웃어버리는 순간. 아이들은 또 너무 귀여운 게 선생님이 웃으면 또 더 크게 같이 웃어서 그게 무지 귀엽다. 학교에서 다른 걸로는 진정 웃을 일이 없는데, 이렇게 아이들 때문에 진심 웃기고, 퇴근 후에도 아 진짜 왜 이렇게 귀엽냐 하며 생각날 때는. 아, 어쩌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아이들이 귀엽기 때문인가 보다 ‘ 스스로 수긍해버리곤 한다.



뭉치뭉치 털뭉치 동물들을 애정하는 이유도 사실 그렇다. 너무 귀엽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판다는 엄마판다에게 대나무 꺾는 기술을 배우는데, 사육사 손에서 자란 판다는 인상 쓰는 법까지 배운다” 는 글을 보고도 으아! 정말 너무 귀여워 미칠 것 같았다. “그냥 꺾어버렸다가 뒤늦게 깨닫고선 배운 대로 인상을 쓰는” 판다라니. 세상의 많은 동물들도 귀엽지만 나의 사랑하는 반려견 야호도 세상 어쩜 이렇게 너무나 귀엽고 웃긴지 모른다. 매일 봐도 새롭고 짜릿하게 귀엽고 웃기는 것들이 투성이다. 특히나 귀여운 것은 한 가지만 꼽기도 어려운데, 감정에 따라 짓는 다채로운 표정들이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돌린다거나, 저 인간이 지금 뭘 하나 멀찍이 관찰하는 얼굴, 코를 씰룩씰룩거리면 그 옆에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털들은 정말이지 진짜 너무 귀엽다. 가히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나 털동물들만 귀여운 것은 아니다. 다 큰 성인들도 자세히 보면 귀여운 구석들이 꽤 있다. 침묵을 채우기 위해 아무 말을 던지거나,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되지도 않는 유머를 하는 표정들이 고맙고 귀여운 사람들이 있다. 저번에 어떤 모임에선 다들 너무 진중한 분위기였는데 한 분이 “너무 분위기가 심각한데, 우리 어떻게 고함이라도 한 번 지르고 시작할까요?”하는데 덕분에 웃어버렸다. 남을 웃기는 게 무려 직업이기까지 한 존경스러운 코미디언 분들도 가끔 통하지 않았던 유머는 돌이켜보며 이불에서 하이킥을 한다는데 상상해 보면 무지 귀엽다. 다른 사람을 비하하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누군가를 웃기려고 애쓰는 분들은 무조건 무조건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를 좋아해, 가 막 버젓이 들이대며 드러나는 게 아니라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슬쩍슬쩍 엿보이는 사람들도 참 귀엽다. 자꾸 언젠가부터 주변을 맴돌거나, 쓰윽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거나, 때론 말을 걸거나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모습들이 티 날 때.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귀여울 때가 많다. 특히 숨길 수 없는 부분은 귀라고 생각하는데 그 귀가 빨갛게 물들었을 땐 태초의 소년 소녀 같다. 누군가가 좋은데 마음이 드러나서, 어쩔 땐 너무 추운 겨울에 머리털이 짧은 사람들이 귀가 벌겋게 된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손을 소복이 모아 귀를 덮어 뎁혀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이처럼 꽃이 피는 계절에 식물의 생식기관을 보며 찰칵찰칵 좋다고 연신 카메라를 찍는 모습이라든가, 지하철을 타고 갈 때 갑자기 열차가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일제히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 창 밖에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보는 사람들도 귀엽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도 버스기사님이 급하게 버스를 정차하고 양해를 구하시곤 화장실로 뛰어가신 후, 그걸 가만히 앉아서 차분히 기다려주는 올망졸망한 뒤통수들도 귀엽다. 인파 많은 광장에 앉아있으면 다들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기다렸던 사람이 오면 반가워하며 달뜬 얼굴처럼 말갛게 번지는 웃음도 세상 이쁘다. 그리고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아기들에게나 강아지들에게 지어주는 표정들도 보고 있으면, 그런 아무 조건 없이 한 생명에게 지어주는 무해한 낯빛이 그토록 아름답다.


음,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세히 보면 다들 귀여운 구석이 하나씩 있는 것이군요. 그것이 누군가로부터 발견되어지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나 스스로는 언제 귀여울까. 나는 나 자신을 언제 귀엽게 보아줄 수 있을까? 굳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곧장 바로 떠오르진 않았다. 그러다 떠오른 것은 좋은 작품을 보고 나서 누군가에게 추천할 때. 그게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무엇이든 너무 좋은 작품들은 나만 볼 수가 없어져버린다. 이거 너무 좋다니까! 좋지 좋지! 하고 환호하고 꼬리를 흔들며 우리 함께 해요우오 하고야  만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정에 휘둘려버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늘 솔직하려 하는 나 자신. 아이유 씨가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이라 노래했듯, 늘 말이나 글로 표현할 때엔 진심으로 솔직하려 애쓴다. 태생적으로 뜨거운 사람인데 어쩔 수가 없달까. 에고고 뭐고, 오늘 아침에도 으 출근하기 싫다 싫어 겨우 몸을 일으키고선 직장에서는 역할을 다 해 열심히 불태우고, 퇴근하자마자 몸을 뉘이는 나. 하기 싫어도 어쩌나, 결국 그럼에도 또 무언가를 한 나 자신도 나름 기특하고 대견하고 귀엽게 봐주고 싶다.


그렇다니까요! 잘 보면 나도 귀엽고 너도 귀엽고 우리 모두 귀엽고 서로 다들 으쓱으쓱 참으로 귀엽습니다. 우리 서로 조금씩만 더 많이 더 자주 귀여워해 줍시다. 서로가 허락을 해준다면 이 고통체의 세상을 귀여운 생명체로 살아가며 애쓰고 참 수고가 많다고 토닥토닥 쓰다듬어도 줍시다. 나 자신도 이 정도면 뭐 꽤 귀엽지 않나! 생각해줘 버립시다. 러브 앤 피쓰는 귀여움으로부터 시작되니까.

귀여우면 그야말로 끝!!! 이니께.






글      |  성지연  2024.3.21

그림  |  애정하는 김참새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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