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참여를 준비하면서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기록을 남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급히 메모를 하는 것처럼, 좀 더 길고 맥락이 필요한 생각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쓴다.
무언가를 쓰고 그려서 기록에 남기는 일을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방학 숙제로 주어지는 그림 일기 쓰기를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동안 순정 만화에 빠졌을 때는 문방구에서 파는 스프링 연습장 몇백 권을 낙서로 해치우는 걸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버지 회사에서 쓰고 남은 이면지를 끈으로 묶어 몇 개씩 안겨주곤 했다.
그 때에도 만화 주인공의 금발과 빛나는 눈동자를 따라 그리는 것보다, 그 안에 담긴 스토리에 매료되어 비슷한 줄거리의 단편 만화를 혼자 얼마나 많이 그려댔는지 모른다. 그림은 대충, 하지만 대사와 등장 인물들 간의 연결은 참으로 신중하게. 언젠가 좋아하는 만화가의 스토리 작가로 응모하겠다며 시작부터 끝까지 줄거리만 써 놓은 것도 노트 하나 가득이었다.
나의 독서가 만화에서 소설로 넘어가면서 나의 기록물도 자연스럽게 그림이 빠진 글짓기로 이어졌다. 중학교 때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밤새 끄적여 온 연재 소설(당시 내가 읽고 있던 하이틴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을 돌려가며 읽었다. 방송 작가가 꿈이라는 친구와 단짝이 된 뒤로는 당시 대유행하던 캐주얼한 스타일의 시, 아니면 감성 일러스트를 흉내내어 사랑 타령 노랫가사를 수없이 지어댔다. 교복 입던 시절 내 손편지는 여자든 남자든 눈물 짓게 만들었고, 하다못해 시험공부 조차 손으로 써내려가며 해야만 입력이 쏙쏙 되는 타입이었다.
그렇다고 뭔가 규칙적으로, 항상 같은 시간 혹은 같은 노트에, 매일 매일 식사를 하고 잠을 자듯이 일기나 글쓰기를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생각날 때, 하고 싶을 때, 뱉어내고 싶은 무언가가 내 안에서 요동칠 때 일기로, 메모로, 낙서로 하염없이 기록을 남겼다. 중학교 때부터 결혼 전까지의 글씨들은 그렇게 크고 작은 수첩들로 몇 박스나 남아 있었는데, 이후에도 이삿짐으로 이고지고 끌고 다니다가 2년 전 캐나다로 이사하며 결국 버리고 말았다. (아주 아까운 몇 권은 남아 있다)
오래된 버릇은 지금까지 남아서 내 글쓰기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바로, 절대 꾸준하지 않다는 것. 몇 년 전부터 이 세상에는 매일 무언가를 반복하는 작은 습관의 힘이 대대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많은 분들이 이러한 습관 형성을 통해 삶의 여러 부분을 회복하고 오래된 가치들을 발견하고 중요한 성공의 단계를 올라서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내가 그러한 커뮤니티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끌기도 하면서, 다른 분들이 취향과 본업 외의 즐거움을 찾는 데 도움을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 자신은 단 하나의 반복 습관도 들이지 못했다. 말하기도, 사진 찍기도, 공부하기도, 책 읽기도, 운동하기도, 심지어 일기쓰기 조차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 찰랑 찰랑 차오르다가 툭 터져나와야 글이 써진다. 그럴 땐 밤을 새고 날이면 날마다 무얼 써내기도 한다. 다만 ‘그 때’ 가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나온다. 하루키 혹은 다른 좋은 작가님들이 말씀하시는 ‘일단 쓴다, 무조건 쓴다’ 는 나에게 도무지 해당되지 않는 원칙이라는 걸, 몇 년에 걸친 실패와 중단의 반복 끝에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들이고 잘 설계해서, 구조를 잡고 여러 번에 나누어 써야 하는 글을 쓰는 일이 가장 어렵다.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 정말 충동 구매처럼 감정적인 행동의 결과물인데, 길고 중요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런 충동 구매보다는 오래 계획한 프로젝트처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가득 넘치기 시작한, 혹은 반짝 스쳐가는, 혹은 오래 묵혀둔, 혹은 꼭 기억하고 싶은 무언가를 맥락을 담아 기록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
내 글쓰기의 방해 요소 양대 산맥은 내 공간의 부재와 내 시간의 부재, 이 두 가지이다.
음악을 했던 나는 꽤 오랫동안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보장 받는 일상을 누렸다. 오히려 연습실에서 혼자 죽기 살기로 나 자신과 씨름해야 하는 게 힘들어서, 동료들과 함께하는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 때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이 그렇게 넘쳐나는 게 얼마나 복에 겨운 것인지 미처 몰랐다.
결혼하는 순간 그리고 아이를 낳는 순간 내 공간과 시간은 가정의 공공재가 되었다. 회사로 탈출해봐도 직장인의 근로 시간은 조직에서의 공공재나 다름 없었다. 내가 찾아낸 유일한 집중의 시간은 늘 한밤중이었는데, 그조차도 숨죽여 눈치를 보거나 다음 날을 위한 시간 제한에 쫓길 수 밖에 없었다. 충분히 이야기에 빠져들어 헤엄칠 수가 없으니 글도 되다 말았다. 아니면 꼴딱 밤을 새우고 며칠을 생체 리듬이 흐트러져 고생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코로나 시기를 맞았다. 대면으로 하는 모든 사업들이 기울던 그 때, 수많은 숙박업소들은 생존을 위해 ‘비대면 투숙’ 혹은 ‘당일 반나절 투숙’, ‘호텔로 출근’ 등의 아이템을 쏟아냈다. 감염자가 나와 오피스 전체가 재택 명령을 받은 날, 나는 노트북을 들고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그리고 홀린 듯 프로모션 중인 호텔 하나에 전화를 걸어 6시간 사용을 예약했다. 이 돈을 이렇게 쓰는 게 맞아? 생각하며 객실로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이 바로 그토록 원하던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을.
캐나다에 이사한 지 얼마 안된 우리 세 식구는 요즘 두 개의 방과 한 개의 거실을 전부 공유하며 살고 있다. 여전히 내 공간과 시간은 공공재이고, 잠시 확보되는 집중의 시간은 언제나 중단될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가끔 충동적으로 SNS에 글을 써내기도 하고 기록하고 싶다 생각한 메모들은 산재해 있지만, 작정하고 글 하나를 완성하려면 대책없이 오래 걸리는 이유다.
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알려주는 글을 좋아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본 적 없는 타인의 인생 뒷면이든, 내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든, 배운 적 없고 접할 일 없는 새로운 산업의 어려운 지식이든 간에, 몰랐던 것을 일깨워주는 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깨움이 ‘다정한’ 시선을 통해 글로써 거듭났을 때 나는 그 결과물을 좋은 글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백과사전이나 도감을 읽을 때조차도 온도의 차이를 느낀다. 비문학 경영서도 자주 읽는 편인데 차갑게 통찰하는 글을 읽으면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단하다’고 하지 ‘좋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한줄 한줄 이야기가 냉정하지만 다정하게 들릴 때, 처절하더라도 다정함이 느껴질 때 나는 그걸 좋은 글이라고 말하게 된다.
모임 과제로 제출한 글을 기록으로 담아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