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너머에 존재하는 것
아이의 ADHD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은 늘 망설여진다.
현재 내가 속한 사회 혹은 공동체의 문화와 정서에 따라, 물리적인 환경과 조건에 따라,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복합적으로 얽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도 나는 마음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았고 격려와 질문도 많이 받아왔다. 그리고 2년 전 한국을 떠나면서는 그 대화의 대상이 사실상 아이 당사자, 남편, 그리고 일부 지인들로 좁혀졌다.
그런데 오늘 저녁, 평소 쌓아두고 한 번에 읽음 처리로 뱃지를 지워버리곤 하던 지역 단톡방에서 ADHD가 언급된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게다가 내 기준에 꽤 위험한 방향으로 대화가 흐르고 있었다. 익명이어도 나를 드러내기 싫어 눈팅만 하던 공간이었는데 결국 '버튼 눌려' 장문의 메시지를 연달아 톡방에 띄웠다. 다행히 다른 분들도 카더라가 아닌 직접 경험들을 나눠주시면서 대화 분위기는 안전하게 마무리 되었다.
메시지의 내용들이 누구라도 마음에 불안을 껴안은 분들께는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 옮겨 둔다.
주변에서 보신 것 말고 직접 케이스는 많이 말씀 안하실 것 같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말씀드려봅니다.
여기서 지금 7학년인 저희 아이 한국에서 7살부터 약 복용했고요. 노력으로 습관으로 연습으로 고쳐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뇌가 어느정도 균형을 찾아가는 동안 정서적으로 상처받을 일이 덜하도록 시간을 벌어준다는 의미에서 진단 받은 후 바로 약물치료 결정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몰랐다고 할 정도로 adhd 티가 심한 아이는 아니었어요)
약이 다소 아이를 잡아주는 동안 아이는 학습하고 흡수하고 단체활동도 하고 배워야 할 것 배울 수 있었고요, 아동발달 시기에 이 경험을 하는 거랑 하지 못하는 거랑 나중에 힘든 정도가 달라서 저희는 다시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라 생각하긴 합니다.
이게 혼난다고 노력한다고 애쓴다고 잡히는 게 아니어서, 그리고 그렇게 꾸중 들으며 아이한테 가장 남는 건 결국 ‘나는 왜 해도 안되지‘ 하는 자괴감이어서 (아이가 좀 큰 후에 옛날얘기도 많이 해보고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약은 혈압약이나 알러지약 같은, 일상생활 무리없이 영위하게 하는 필수 보조제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다소 보수적으로 처방하고 미국은 다소 과하게 쉽게 처방하긴 하는데요, 결국 부모가 예민하게 아이의 정도를 잘 관찰하고 전문가(의사)와 긴밀하게 같이 노력하는 건 필요합니다.
저희 아이는 운이 좋아서 약을 딱 한번만 바꾸고 바로 맞는 약을 찾아서 지금까지 잘 복용 중이고 몸이 많이 컸지만 용량도 그리 늘릴 필요 없었어요. 하지만 같은 상황에 놓인 아이들마다 적절한 약의 조합을 찾는 과정이 험난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의지할 수 있는 의사 만나는 게 중요하다 싶었습니다.
아이는 7살 처음에는 따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8살 쯤에 이미 생각이 뛰어다니는 걸 좀 자리에 앉아있게 도와주는 약이라고 설명해줬고, 5학년에 정확하게 adhd 설명 해주었어요. 생각보다 그걸로 핑계대고 이런 일은 없었고 지금도 기억나는 건 아이가 ‘잘 알게 되어 속이 시원하다’ 라고 약간 후련해 했어요 저도 놀라긴 했습니다.
(작년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littlechamber/224 )
사춘기 오고 호르몬 변화 일어나고 특히 조용한 adhd 아이들 뒤늦게 알게 되면 습관을 들이거나 무너진 정서 일으켜 세우는 게 훨씬 어렵다고 들었어요. 예전엔 다 그러고 살았는데~ 하는 건 예전 시절에는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처음 처방 때 의사 선생님께서
두 분 맞벌이이신데, 아이가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알게 모르게 받아오는 정서적 상처나 학습에서의 차이 하나하나 다 보듬어서 이끌어주실 수 있느냐 아니면 그런 것 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만큼 다양성이 인정되는 안전하고 여유로운 환경을 확보해주실 수 있느냐 그게 아니라면 알게 된 이상 그대로 두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에) 방치에 가깝다고 하셨는데,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이시겠지만 저희는 이 부분에 절대적으로 공감해서 약 복용 시작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물론 첫 일년 정도는 날마다 뜬눈으로 부작용 검색하기도 했죠.
저는 오늘도 이 방에서 나온 모든 얘기들을 바탕으로 짐작하지 마시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 다 만나보시고 검사도 제대로 받아보시고 각자 상황에 맞는 처방이나 치료를 잘 활용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최소한 제가 만난 의사 선생님들은 제가 궁금해하는 만큼, 아시는 만큼 약물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셨고, 충분히 전문적이고 오래된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알려주신 것들이라 신뢰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망설임이 있다면 너무 많이 고민하기 보다 전문가 분들께 정확하게 물어보시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 자녀는 스스로 필요할 때만 약을 복용할 만큼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대해)
제가 한국서 만나던 의사 선생님도 비슷한 맥락의 말씀을 하셨어요. 어려서 치료 시작한 아이들 기준으로 중등-사춘기 정도까지는 약을 유지하는 걸 권하긴 하는데, 아이가 스스로 그 차이를 인식하고 필요에 대한 판단을 할 정도로 자라면 그 때는 조절해도 충분하다고 하셨네요. 결국 일상을 사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거여서요.
말이 길었습니다. 저 맘고생 하던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어떤 방향으로 결정하시든 전문가와 상의하고 꾸준히 관찰하며 아이 잘 도와주시면 좋겠네요.
톡방에는 뒤이어 성인 ADHD로 직접 약을 드셔 보신 분, 짧게 약을 먹고 단약하신 분, 자녀가 진단은 일찍 받았지만 늦게 약을 복용했던 경우, ADHD인 줄 짐작만 했는데 우울증이었던 경우 등이 다정한 목소리로 공유되었다. 나 또한 내 아이가 자라 어떤 성인이 될지 막연한 마음이 없잖아 있기에, 많이 감사했다.
따로 개별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은 학교나 주변에 오픈하는 걸 많이 꺼려하셨는데 아직 아이의 상태를 직시하기 어려워 하셔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은 맞다.
일부러 소문내지는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이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음을, 그 분께서도 어느 날에는 이해하게 되셨으면, 두려움을 떨치고 문제를 마주하면 사실은 그 문제가 상상만큼 험악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되시기를 감히 바래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