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농촌학교 여름캠프의 추억
아이의 온갖 잡동사니는 그대로 있는데 아이만 없는 이 생경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짧은 10년 인생 중 부모는 사실 수없이 아이 곁을 떠났다 돌아왔지만 아이가 제발로 부모 곁을 떠난 것은 일곱 살, 절망이 나를 휘감고 있던 그 시기에 용감하게 엄마 대신 선생님 손을 잡아주었던 그 때 이후로 처음이다. 그 어린 날의 용기가 지금도 아이에게 남아서 '예전에도 이미 해봤어요!'라고 당당히 외치는 자신감이 되어주는 걸 보면, 내게는 덜 아문 흉터같은 그 일이 아이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순간으로 기억되는 듯 해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 어느 것도 맨정신에 진행되지 않았던 3년 전 여름과 이번 아이의 여행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함께 상의했고 미리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저런 약속들을 했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천천히 생각하며 결정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올 여행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행 하루 전날인 어젯밤, 아이는 '줄무니'를 두고 가겠다고 선언. 줄무니가 여행지에서 망가질 것이 걱정이기도 하고 (9년 된 애착옷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는 아이도 잘 알고 있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줄무니를 대체할 다른 작은 이불이나, 인형이나, 베개도 필요치 않다고 했다. 놀란 엄마가 (놀람을 감추고) 괜찮겠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 없어도 된다 필요없다고 대꾸하는 걸 보면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피어올랐다.
출발하는 아침이 되자 아이는 가는 길 차 안에서는 줄무니를 데려갔으면 한다고, 차에 놔둘테니 엄마가 챙겼다가 다시 가져와 달라고, 가방에 줄무니를 넣어 차에서 내내 끼고 있더니만 숙소에 도착해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왕복으로 꽤 먼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을 때 남아있는 아이의 물건들 중에 제일 낯선 것이 아이와 함께 있지 않은 '줄무니'였다.
다 너덜너덜하고 색이 바랜, 오래된 내 옷이자 아이의 애착이불 '줄무니'가 내게 상징하는 건, 아이의 존재가 내 삶에 들어온 이후 고비고비 넘겨야 했던 수많은 성장통의 순간들이라 하면 어울릴까. 지나고 났으니 성장통이라 부르지만, 내 삶의 가장 바닥 시간들에 아이의 줄무니가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아이 곁에, 어쩌면 내 곁에 그 줄무니가 있었다.
그냥 웃으며 '다 컸네' 하기에는 우리가 통과해온 것들이 꽤 쓰라리고 아팠다. 그럼에도, 오늘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홀가분하게 입소식에 뛰어들어간 것처럼 나도 어떤 선을 또 하나 넘을 수 있겠다 싶다. 그게 뭔가 누구도 아닌, 그냥 나를 위해서 내가 하면 되는 일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