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0일, 폭설이 쏟아진 밴쿠버 공항에 내린 기억이 벌써 2년 전이다. 그 해 여름 다소 충동적으로 캐나다 이사를 결정한 후 4개월만에 나와 아이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출국했고, 배우자는 짧은 주기로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다가 지난 여름 드디어 완전히 밴쿠버로 입국했다. 우리가 떨어져 지낸 기간은 꽉 채워 1년 반. 그 18개월 동안 많이도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면 돼요?"
각 개인이나 가족마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정해진 답은 없다. 4개월 정도 세 식구가 완전히 붙어 지냈는데, 모처럼 배우자만 한국에 가 있게 되자 (그래봤자 2주) 처음에 아이와 둘이 정착하던 시기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기억이 아쉽게 더 희미해지기 전에 회고 겸 기록을 남긴다.
이사 300일을 기념하여 후기를 쓴 적이 있다.
https://maily.so/becoming.cora/posts/2nznpl9mrp5
똑같이 할 것과 다르게 할 것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
한국에서 출국 전 신차 구매
: 입국 후 내 소유의 깨끗하고 안전한 차량을 가장 빨리 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이상적으로 원하는 기종이나 옵션, 컬러 이런 것 모두 내려놓고 무조건 무난하고 작고 저렴하고 출고 빠른 걸 선택해야 한다.
12월 (학기 중) 입국 후 학교 적응, 거주지 구함
: 비수기이기 때문에 렌트 경쟁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아이도 반년 정도는 트라이얼 느낌으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혹시 시행착오가 생겨도 조금 여유롭다. 계절이 점점 좋아지기 때문에 점점 행복해진다.
가능하면 일정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다
: 이건 내가 운이 좋았던 케이스인데, 현지 여건이 어렵다면 한국에서 원격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들고 있는 게 낫다. 정착과 일 양쪽 다 잡느라 사지가 찢어지는 것 같더라도, 그래도 그게 더 낫다.
다시 돌아가면 다르게 할 것
초기 1-2년 세금 신고는 전문가를 통해서
: 한국과 캐나다 세금 관계가 섞여 있을 때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혼자 하지 말 것. 좋다는 세금 신고 플랫폼도 소용 없다. 난 영어가 어렵지 않은 편임에도 이건 5년까지도 맡길 생각 하고 있다.
한국행은 무조건 대한항공으로 (에어캐나다는 북미 노선만)
: 맞다. 대한항공이 더 비싸다. 대신 비싼 값을 확실하게 한다. 좌석도 넓고, 수하물도 2개 포함이고, 기내 서비스도 압도적이다. 대한항공을 에어캐나다처럼 저렴하게 예약하려면... 9개월 전에 부킹하면 된다. 공홈에서 아주 일찍 예약하고 혹시 변경해야 하면 수수료 내는 것이, 임박해서 사는 것보다 싸다.
부피 있는 가구/생활용품은 아무것도 안 가져온다
: 이게 사람마다 가장 의견이 갈린다. 내 결론은, 와서 살게 될 집의 컨디션을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뭘 들고 와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집에도 2년째 뜯지도 않은 해외운송 박스 몇 개, 머리아프다.
여기에 새로 추가하고 싶은 하나가 '한국에서 사오면 좋을 것들' 이다.
이달 초 급한 일처리를 위해 짧게 한국을 다녀오면서 짐가방 하나 가득 사온 것은 죄다 올리브영과 다이소 품목들이었다. 여기 사시는 분들마다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르시던데, 내 기준으로 캐리어를 가득 채울 만큼 돈을 쓰게 만든 나름의 구매 (혹은 비구매) 이유를 정리해봤다.
1. 보관 부피를 줄이는 생필품은 한국 제품이 효율적인 게 많다
- 예를 들면 발포 형태로 된 세제, 과탄산이나 구연산, 베이킹소다, 고체 치약 등등
2. 간편 섭취를 위한 건강 기능 식품은 한국 제품이 더 낫다
- 예를 들면 엑기스나 분말 형태의 식품이라면 한국 제품이 1회 섭취량 개별 포장이 너무 잘 되어 있다
3. 약국에서 구입 가능한 의약품들은 최대한 성분을 확인해서 현지의 대체품을 찾아두는 게 낫다
- 예를 들면 비판텐, 마데카솔, 후시딘 같은 연고류, 기침 콧물 약이나 아토피나 알러지에 바르고 먹는 약 등
4. 문구류,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제품들은 한국 제품이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게 맞지만, 부피를 생각하면 굳이 한국에서 구매하지 않아도 괜찮다
- 아예 없지 않은데 한국처럼 많은 옵션과 흐뭇한 가격에 가성비 품질이 아닐 뿐, 쟁여놓고 쓰지 말고 필요한 것 하나씩만 사서 쓰면 됨
5. 일본 제품을 구매한다면 한국 마켓 플레이스에서 사는 것이 조금 더 저렴하다
- 의외로 같은 한국 제품은 아마존에서 구매할 때 유리한 경우가 있는데, 일본 제품은 왜인지 안 그렇더라
사실... 두고 온 것들을 생각하면 항상 아쉬운 것만 찾을 것 같아서, 무조건 현지의 환경에 내가 맞춘다! 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기도 하다. 어째서 한국의 서비스와 제품들은 그토록 싸고 쉽고 간편하고 여기는 그렇지 못한가에 휘말려 있으면, 어째서 여기서는 내가 좀 헤매고 서툴러도 대부분 기다려 주는가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딴 얘기지만, 집 보수할 수 있는 손기술 이것 저것 있으면 정말 좋다. 누구는 '여기 사람 불러 맡기는 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 하고, 누구는 '여기는 직접 할 수 있는 도구와 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둘 다 맞는 말인데, 그래도 나는 인건비를 제품보다도 저렴하게 깎아먹는 사회보다는 사람 시간과 노력이 비싼 줄 아는 사회에 좀 더 마음이 간다고나 할까.
다음 편은 오기 전에 몰랐다가 지내면서 알게 된 시행착오 이야기로 이어집니다.